계절 없는 꽃들을 무수히 피워내다-코비드19 록다운 견뎌내기

계절 없는 꽃들을 무수히 피워내다-코비드19 록다운 견뎌내기

 

계절 없는 꽃들을 무수히 피워내다

-코비드19 록다운 견뎌내기

오소영

 

 

코비드19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휴가를 주었다.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없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아연할 뿐이다. 여행도 마음대로 못하고 감옥처럼 집 안에만 있으라는 조건부 휴가를 좋아할 사람들이 누가 있겠는가. 그렇더라도 싫다고 보채는 사람들이 없으니 이건 도대체 무슨 이변이람.

소리도 형체도 없는 코비드의 무서운 힘이고 위협이며 괴물 같은 악행 때문이다며칠 정도라면 침대에서 느긋하게 뒹굴며 누적된 피로를 푸는 데 괜찮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갇혀서 지내야 한다는 게 있을 수나 있는 일인가. 기가 찰 노릇이었다.

사람은 자유롭게 몸을 움직여 무엇인가를 하며 살게 되어 있는 게 아니던가. 어쩔 수가 없다. 이제 집 안에서만이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는 방법밖에는 도리가 없다.

내 나이 팔십 대 중반에 이런 변고는 처음이다. 얼마간 남았을 인생, 친구들 만남이 최고의 건강 관리이며 낙이었다. 그게 허용이 안 된다며 발을 묶어 놓았으니 죽음이나 다름이 없다.

우리는 록다운 훨씬 전부터 그렇게 감금이 되다 싶게 살고 있다. 삶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우두커니 앉아 그냥 죽을 수는 없는 일. 나름의 살길을 찾아내야 했다. 드디어 발견. 무료하고 우울함을 금쪽같은 시간으로 바꿔버린 이야기를 하련다.

 

느리게 아침 일을 마친 다음 젖은 손을 닦으며 커피 한잔을 준비한다. 햇빛 따사로운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밖의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한다.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상쾌하다. 계절을 재촉하는 낙엽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다가 흩어진다. 바닥에 깔린 푸른 잔디 사이로 고개를 내민 야생화가 가녀리게 웃으며 팔랑댄다. 늘 있는 그대로의 풍경인데 한가롭게 앉아서 보니 이상하게도 느낌이 새로웠다.

큰맘을 먹고 빌린 책을 조용히 펴들었다.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 시간은 있었어도 책을 읽을 엄두는 잊고 살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갖는 진득한 독서 시간이었다. 잡념 없이 집중이 되는 것도 별일이었다. 세월을 거슬러 젊었을 때의 착각을 하게 했다. 텅 비었던 머릿속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읽고 돌아서면 금방 까먹게 되는 퇴폐해진 뇌가 안타깝긴 했다. 하지만 읽는 순간만이라도 영혼이 맑아지는 기분이어서 참 좋았다. 메말라 버린 감성에 촉촉한 윤활유가 되어주니 즐거웠다. 그동안 열아홉 권을 독파했으니 나로서는 대단한 기록이었다.

눈 아프다고 허리 비틀린다고 멀리했던 거는 꾀병이었나.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극한 상황에서 체득한 좋은 경험이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열독을 했더라면 좀 더 윤택한 마음으로 살지 않았을까. 마음이 정화된 맑은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여생은 어찌 마무리를 해야 할까? 새삼스럽게 진지한 생각이 드는 것도 책 속에서 얻은 교훈 덕이었다. 


독서와 함께 충분한 일광욕이 끝나면 오후에는 식탁으로 다가간다. 식탁은 내 책상이기도 하다. 두툼한 컬러링 북이 벌써 삼 분의 이쯤 채워져 있다. 꽃을 피워내는 나만의 독창적인 세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은 어떤 꽃들이 어떤 빛깔로 태어나려나?’

혼자서 늘 하는 말이었다어느 계절에 피는지, 무슨 꽃인지도 모른다. 흔히 본 것 같기도 하지만 생판 낯선 꽃들도 있다.

색깔 없이 모두 하얗게 형체만 있는 것들이 어서 예쁜 옷을 입혀달라고 보채는 듯하다한 켠에서는 고요하고 차분한 멜로디가 새소리와 함께 흘러나온다. 귀로는 감상하고 손으로는 그리며 마음은 그지없이 평화로워진다.

깊은 산속 선방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세속의 일을 까맣게 잃어버린 혼자만의 우주. 자연 속에 깊숙이 묻혀서 꽃 세상과 어우른다. 꿈을 꾸듯 손이 움직여준다.

갖가지 꽃에 잘 맞는 빛깔을 선택하는 게 조금 신경이 쓰인다. 그만한 머리 안 쓰고 되는 일이란 없기에 조급해하지 않았다.

흔하게 빨강을 주황색을 또는 노랑도 있고 보라색도 있다. 꽃들의 다양한 색깔을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단색으로만 끝나지 않고 여러 번 덧칠하는 기술도 터득하게 되었다.

그림 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 마음 가는 대로 그리는 것뿐이다. 팔십 대 중반의 늙은이가 침침한 눈에 돋보기를 걸치고 들여다보려고 하면 인내심이 필요했다. 손가락 관절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그렇지만 우두커니 앉아서 잡념 속에 빠지기보다는 이쪽이 훨씬 좋다.

많은 꽃이 하나하나 아름답게 피어날 때마다 즐거움이 솟아난다. 그지없는 애정으로 다시 들여다볼 때의 보람은 바로 행복이었다.

아기자기한 꽃밭에는 키다리 꽃도 있지만 앉은뱅이 앙증스러운 꽃들도 있다. 더러는 화병에 꽂혀서 선반에 놓인 것도 있다. 그런가 하면 화분에 심겨 넉넉한 탁자 밑을 장식해 주기도 했다. 짐차에 한가득 실린 꽃들은 비좁게 끼어 앉아 빨리 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듯도 하다.

분위기 있는 자리에 놓으면 좋을 수반에 담긴 꽃들은 연꽃이던가. 옆에는 반쯤 입을 벌리고 내일을 기다리는 봉우리도 있다. 화려한 날개의 나비들은 왕자처럼 꽃의 시녀가 되어 있고 작은 벌들이 모여든다.

큼직한 사기꽃병에도 꽃이 피어 있다. 서랍장 위에도, 선반에도, 주방에도, 가리지 않고 피어서 분위기를 내준다. 커다란 궤짝에 담긴 푸짐한 꽃 무더기는 누구에게 선물을 할까. 새조롱에 담은 꽃은 현관문에 걸어둘까나.

유리병에 홀로 외로운 방울꽃은 차탁 위에 놓아야지. 풍뎅이도 어김없이 알록달록 꽃옷을 입었다. 암수가 각기 다른 옷을 입었는데 결혼식이라도 하는 건지.

공중에서 아래로 주렁주렁 늘어진 탐스러운 열매, 꽃들. 구슬로 줄을 늘여 호롱불을 달았다. 저녁 차일 밑에 잔칫집 분위기가 영락없다. 꽃비늘 옷을 입은 물고기도, 화려한 공작새도 파티에 손님으로 초대를 받았다. 모두가 꽃 옷을 입어야만 했다.

내 영혼도 그 꽃들 속에서 마냥 화려하고 로맨틱했다. 마음속에 고운 옷을 걸치고 그들 잔치에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무념무상에 빠진다. 떨리는 손끝으로 신들린 듯 참으로 열심히 꽃을 피워냈다. 수백 송이? 아마 더 될 것이다.

옆집 노인의 앞뜰에 줄기차게 피워내던 꽃들이 사라진 지 오래다. 시커먼 흙밭에 서 있는 작은 석상들이 외롭다. 언제쯤 꽃들이 피어날지.

방 안에만 갇혀 있는 할아버지가 내 꽃 세상을 본다면 얼마나 부러울까. 내 마음 밭에 핀 꽃들은 계절이 바뀌어도 시들지 않아서 좋다. 영원한 나의 벗들.

 

그 놀이에서 깨어나는 건 4시쯤이다. 건강의 균형을 맞추려면 운동도 해야 하질 않는가. 아침의 스트레칭만으로는 부족했다. 부지런히 운동화를 찾아 신고 밖으로 나간다. 텅 비어있는 길을 부지런히 걷는다. 멀지 않은 곳에 공원이 있어 거기까지 걸어간다. 하루빨리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묵주를 돌린다. 넓게 펼쳐진 파란 잔디밭을 바라보면 눈의 피로가 풀리는 걸 깨닫는다. 전에는 열댓 바퀴도 돌았는데 이젠 다섯 바퀴가 한계다. 오가는 길까지 합치면 4km가 된다.

온종일 쪼그려 앉았던 허리와 다리가 1시간 걷기로 쭉 펴져 날마다 그렇게 걷는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시간표대로 어김없이 살아가고 있으니 잘 견디고 있는 것인가.

3단계를 거쳐서 2단계로 조금 완화가 된 상태다. 그렇더라도 내게는 별로 해당 사항이 없는 게 사실이다. 큰불은 껐지만 불씨가 남아 있어 계속 조심을 해야 한다고 한다.

노인들은 앞으로도 계속 모임이나 단체 활동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외로운 세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몹시 안타깝다. 가족보다 더 가깝게 교감이 되는 친구들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모두 너무 보고 싶고 그립다. 언제쯤이나 마음 놓고 옛날로 돌아갈는지.

내 꽃 그림이 얼마쯤 남았다. 그게 끝날 때쯤이라도 해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이 게시글에 달린 댓글 총 2
jinie 05.21 11:4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글이네요~^^
나명균 05.13 18:44  
어르신 못뵌지 오래되었네요.
잘 이겨내시고, 건강하십시오.
아름다운 마음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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