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화의 상담 이야기] ‘상처 없는 삶’, 그런 삶은 이 세상에 없다

[정인화의 상담 이야기] ‘상처 없는 삶’, 그런 삶은 이 세상에 없다

뉴질랜드타임즈 댓글 0 조회 128 추천 2


정인화의 상담 이야기(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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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여정 속에서 상처 없는 삶은 없다.
상처를 피하지 않고 이겨내려 애쓰면
조금씩 강해지는 마음을 통해 아픔이 줄어들 것 같다.
상처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행복이란 느낌도 받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부터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원만한 인간관계와 우정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상담을 직업으로 해 왔다고 하면, 사람들을 나를 깨어있는 사람이나 남들과의 관계를 잘 맺을 거로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 좋아하는 상담원만큼 싫어하는 상담원도 

스무 해 넘게 한 상담센터에서 같은 일을 하는 많은 상담원을 만났다. 경력, 나이, 환경, 문화와 교육 등이 다르다 보니 나를 좋아하는 상담원만큼 나를 싫어하는 상담원들도 있었다. 늘어나는 경험만큼 겸손해 보이지 않는 나의 태도가 껄끄러운 관계를 더 힘들게 하는지, 멀어지는 동료들을 원망 섞인 눈으로 쳐다본 적이 많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모두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두세 사람이 거리를 두거나 안 좋아하는 기색을 하면 그들 때문에 잠을 설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다수의 사람은 잊어버리고 나도 그들처럼 관계가 좋지 않은 두세 사람에 집착하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 날에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잠이나 실컷 자고 싶다고 짜증을 부리면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한두 상담원이 나하고 일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한 날이었나 보다. 그룹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앞에 키가 큰 두 남녀가 다정하게 걷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과의 거리가 줄어드니 환한 웃음을 머금은 남자가 눈에 익어 보인다. 아는 사람인지 기억을 더듬었다. 전에 상담했던 이십 대 후반의 K였다.


“남들이 자신을 좋아했으면 원이 없겠다” 

오 년 전에 상담실을 찾았던 그는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얼굴의 소유자였다.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던 그와 한 이 년 동안 상담 관계를 맺었다. 뉴질랜드에서 제법 알려진 연예인이란 직업을 가진 아버지를 가진 K는 늘 불안했다고 털어놓았다.

우상처럼 떠받들었던 아버지와 비슷해지려고 그는 아버지의 행동을 자주 따라 했다. 어린아이다 보니 어른들은 그를 귀엽게 봐주었지만, 아무 소리도 안 하는 아버지가 그의 행동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몰라서 항상 눈치를 봤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남들이 자신을 좋아했으면 원이 없겠다”고 상담 중에 종종 이야기했던 게 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키가 큰 남자가 내 앞에 서서 자기를 기억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K였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삼십 대 중반에 들어선 그는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환한 웃음은 무엇인지는 몰라도 편안해졌다고 느끼게 하였다. 옆에 있는 여자는 동생이며, 그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중이란다. 묻지도 않는 말을 하면서 나하고 보냈던 시간을 자주 생각하며 그때 내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고마워한다고 덧붙인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게 인간의 본능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에도 없는데 K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마워하는지 궁금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특별한 말을 해 준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상황을 공감해주면서 적당한 경계를 지키는 선에서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한다.


‘다음에 또 만나면 꼭 물어봐야지.’

차를 세운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가슴이 뿌듯해져 온다. 상담을 하면서 성공한다는 기분을 늘 느끼지는 못한다. 그렇더라도 과거에 입었던 상처를 피하지 않고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볼 때는 감탄, 감동, 존경스러운 마음이 내 가슴 속에서 인다. 그것과 비슷한 벅찬 느낌이 그와 헤어진 뒤에도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남들과 관계를 맺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 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기억은 추억이 되어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우리에게 자주 찾아온다. 그러한 관계를 모든 사람과 맺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하다가 나 자신의 태도를 돌아본다. 늘어나는 경험만큼 동료들이 힘들어할 때, 그들을 포용하고 귀를 기울여 들어주려 노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오지랖 넓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를 하려고 한 것 같다.


빅토르 프랭클, 나치 포로수용소에서도 살아남아 

충고는 상대방이 틀렸다는 사실을 전제한다고 하니까 내가 말하려 했었던 본질인 관심과 걱정은 들리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식으로 일하든 상관없이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고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그들의 몫이라고 여기면서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쪼잔한 성격을 탓한다.

앞으로는 동료 모두가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생각을 접고 충고라는 포장된 말로 그들의 약점을 건들지 말아야겠다. 상담센터에서 일할 때는 전문가로서 주고받아야 할 최소한의 예의에만 신경을 써야겠다.

무슨 말과 행동을 하든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나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과 즐겁게 지내고 나의 능력을 늘리는데 에너지를 쏟아부어야겠다.

인생이란 여정 속에서 상처 없는 삶은 없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받는 상처를 피하지 않고 이겨내려 애쓰면 조금씩 강해지는 마음을 통해 아픔이 줄어들 것 같다. 상처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행복이란 느낌도 받겠다는 생각이 든다.

빅토르 프랭클은 로고테라피를 창시하고 실존주의 상담 치료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는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절망을 견디고 버텨서 그 무서운 나치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상담, 물줄기 두 개가 만나 더 커다란 물줄기로 

K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하지만 그의 고마워하는 마음을 전달받을 때 느꼈던 뿌듯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살아가기 힘들 때, 이러한 느낌과 기분이 나를 붙잡아주고 어려움을 견디는 힘을 준다고 생각해본다.

많은 사람은 상담치료사가 남의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주기만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피상담자인 모르게 상담치료사가 도움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무심코 고맙다는 말을 던졌던 K의 말이 나에게 희망을 북돋아 주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긴 상처를 견디고 달랠 수 있게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담은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 더 커다란 물줄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보고 싶다. 위험해 보이는 그 과정에 과감하게 뛰어드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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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화 _심리 치료사
021 0262 3579
junginhwa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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