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화의 상담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를 써야 할 때인가

[정인화의 상담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를 써야 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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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화의 상담 이야기(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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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19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한국 드라마보다 훨씬 재미있다. 그런 드라마를 보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혼란스러운 경우도 종종 있다. 내가 듣고 자랐던 이야기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미국 것이면 똥도 좋다”부터 “영어를 잘하는 미국 거지도 부럽다”’라는 말을 어른들한테 듣고 자랐다. 알게 모르게 가져왔던 미국에 대한 동경이 한 나라의 지도자가 내뱉은  “코로나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해 살균제를 주입하자”라는 말에 무참하게 깨져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말에 책임을 못 지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남들을 비난하는 그 지도자를 보면서 재미있다기보다는 가슴이 아파진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삶을 경험하고 성숙한다.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현실이 아니다. 이야기와 현실을 구분하고 그 이야기를 현실에서 풀어나가야 잘 살 수 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못살았던 나라 중의 하나였을 때, 많은 사람이 초콜릿을 얻어먹으면서 미국에 대해 구원자로서의 환상을 키웠다. 그 환상은 사람들 사이에 퍼졌고 어떤 이들은 그 이야기를 믿기 시작했다. 힘 있는 자들은 그 이야기를 강요하거나 이용하여 미국에 대한 환상을 우리의 정신 깊숙이 집어넣었다.

하지만 현재의 미국은 내가 들었던 나라가 아닌 것 같다. 코로나바이러스를 대하는 미국의 태도를 보면서 혼란스럽다. 환상과 다르게 우왕좌왕하는 그들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다. 실망스러우면서도 예전에 가졌던 동경을 깨지 않기 위해서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변명까지도 찾으려 노력해본다.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현실을 보려고 한다. 별로 좋지 않은 경험일 경우에는 아픔이나 두려움 때문에 현실을 바로 보지 않고 미래로 도망치거나 과거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상담자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을 현실에서 검증하고 그 이야기를 그들 스스로 새롭게 편집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D가 생각난다. 그는 키가 크고 우아하게 생긴 육십 대의 전문직 여성이다. 바쁜 남편과 정신 질환 문제로 고생하는 아들 사이에서 무엇을 할지 몰라 힘들어했다. 국가 봉쇄 기간에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회의가 너무 크게 밀려와 그 아픔을 피하려 약물을 과다 복용해 응급실에 실려 갔다고 한다.

D는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주관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강조하며, 자신을 스스로 하나도 쓸 데가 없는 사람이라 비하한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믿음이 어디서 왔는지 과거의 믿음이 현재도 유효한지 체크해 보려는 생각은 안 한다. 병원에서 만난 어떤 사람이 자신을 너무 잘 이해해줘서 고맙고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자신을 이해하면서 삶을 영위하는 것보다 자기를 구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처럼 들린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D는 안다. 하지만 그는 용기가 부족해서 현실에서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를 붙잡고 있다고 인정한다. 고개를 돌리지 말고 문제를 쳐다보면 더 자유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아직은 준비가 안 되었다는 그를 이해하고 싶다.

이야기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많은 피상담자가 두려워한다. 더는 다치고 싶지 않은 바람 때문에 그들은 가지고 있는 이야기 상자 열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그들은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결국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은 알기에 노력은 한다. 같은 곳을 계속 걷다 보면 길이 되어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다닐 수 있듯이 D와 함께 과거 이야기의 편집이라는 전략을 통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삶의 균형이 여기저기서 무너져버렸다. 그 무너진 삶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미국만큼이나 가장 눈에 띄는 게 우리 한민족이다. 자랑스럽게도 한국은 미국의 정반대에 서 있다. 나 중심의 세계가 아니라 나와 네가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우리는 창의적이거나 주체적으로 사는 대신에 종속적으로 살면서 질문보다는 정해진 대답을 잘 찍어내는 선진국 문턱에서 허덕이는 민족이라고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는 삶 대신에 남이 원하는 것을 잘하는 노예 같은 삶에 길들여졌다고도 들었다.

이런 민족이 지도도 없이 어디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서 성숙한 시민 의식을 보이면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과거에 가졌던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더라도 믿고 따르는 습성 때문에 어떤 이들은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이용해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그들이 만들어내고 강요했던 이야기를 다시 점검하며 편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자.

그런 과정에서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을 모색하는 민족으로 기억하자. 남이 좋고 싫어하는 것을 아는 공감을 할 수 있는 민족으로 말이다. 상대방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똑같은 의미로 남들이 나를 알려고 할 때 사랑받는 느낌을 받는다. 공감을 통해 사랑을 아는 민족으로 이야기를 만들자. 공감과 사랑을 할 줄 아는 민족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서로가 단합하면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위기를 잘 넘기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길로 나갈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D는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줄 사람을 기다리면서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이해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한국 사람이 세계를 선도하는 이야기를 써나가면서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듯이 인생의 주인공으로 고쳐 쓰는 D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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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화 _심리 치료사 

021 0262 3579
junginhwa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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