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임수의 열린 상담이야기] 이혼한 부부, 원수가 아닌 친구로 가능할까

[김임수의 열린 상담이야기] 이혼한 부부, 원수가 아닌 친구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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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수의 열린 상담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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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방문하여 친구들 모임에서의 일이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부인들의 안부도 함께 물었다. 대학 때 캠퍼스커플이었던 친구의 부인들은 모두 친구 사이다. 한 친구가 ‘이제 자기네 부부는 그저 전우애로 산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부인을 ‘산전 수전 공중전을 함께 겪으며 30년 동안 사선을 함께 넘나든 전우’라고 소개한다. 나는 이것이 그의 애틋한 사랑의 표현이며 인생의 험난한 고개를 함께 넘어온 것에 대한 부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놀랍지 않다. 이미 그 부부의 닭살 애정행각은 친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한바탕 웃었지만 ‘전우애’라는 숭고한 말에 모두 숙연해졌다. 


부부간의 ‘전우애’, ‘정’, ‘사랑’, 혹은 ‘애증’ 또는 ‘원한’. 

현재, 뉴질랜드에 사시는 한국 중년 부부들 안녕하신가.


중년 부부들이 겪는 갑작스러운 환경변화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중년의 나이가 되면 몸과 마음이 당황스러운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부부관계도 이 시기에 큰 변곡점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중년 부부의 삶이 젊은 부부 혹은 노년의 부부의 그것과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결혼 이후 유지해 왔던 삶의 패러다임(paradigm)이 크게 바뀐다는 점일 것이다. 아이들의 성장과 독립을 통한 가족관계 다이내믹의 환경적 변화와 더불어 갱년기(남녀 공히)에 발생하는 몸과 마음의 신체적 변화는 부부의 관계를 재조명하게 해 주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한동안 미디어에서 관련 기사가 넘쳐났었다. 드라마의 세세한 줄거리는 모르지만, 중년 부부간의 믿음과 배신 등 치열한 감정의 충돌이 주요 소재인 것 같다. 


우리네 평범한 부부생활은 이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겠지만, 고국을 떠나 타국으로 이민 와서 살고있는 이민자 중년 부부의 세계는 조금은 특별한 면이 있어 보인다.


뉴질랜드식 사고방식과 가치관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자의식이 강하며 한국식 위계질서를 답답해한다. 이들이 부모 둥지를 떠나 독립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 전통적 한국 정서를 가진 부모들과의 충돌이 잦아진다. 특히 아빠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권위가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한탄한다.


이 예민한 시기에 남편이나 아내가 서로의 공허한 마음에 함께 공감하며 서로를 위로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간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이민 1세대 부모들은 이런 공감과 배려에 익숙지 않다. 


또한, 이민생활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문화적응력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생물학적으로 모성 DNA가 강한 여성들은 낯선 환경에서의 적응력이 높다. 반면, 나이가 듦에 따라 남성호르몬이 감소하는 남성들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이민사회에서 정서적, 물리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고 있는 중년남성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기 몸의 변화를 감당하기에도 버거워지고 침대 옆의 ‘존재’로 인해 밤잠을 설치기 시작하면, 서로의 공간을 분리하는 절충을 시도하기도 한다. 자기만의 공간에 정착하여 편리하게 살아가는 이른바 ‘따로 또 같이’의 삶을 시작하는 것도 이즈음이다. 


자녀들과의 단절, 중년의 공허함과 노년의 준비에 대한 불안감 등이 한꺼번에 쓰나미로 몰려오는 이 시기에 부부간의 간극이 너무 벌어져 이별을 선택하는 부부도 있다. 세계 최고의 이혼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만큼이나 뉴질랜드의 한국인들에게도 이혼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어른들끼리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감정의 실타래를 단칼에 해소하는 방법이 이별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를 한다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자녀들이 겪는 슬픔과 상실감, 자책 그리고 분노는 피할 수 없다. 또한, 개중에는 정신적, 육체적인 학대 등의 폭력이 수반되어 불가피하게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부부도 있다. 이 경우, 피해자의 안전과 웰빙이 최우선이며 가해자의 치료와 재활이 수반되어야 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혼 후에도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가능한가

그렇다면 이혼의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의 문제는 별개로 치더라도 당사자 간 현실적인 사후 대처 방안은 있는 것일까? 


올해 초에 친하게 지내는 지인과 차 한잔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특별한 친구 부부와의 저녁 식사’ 얘기를 들었다. 상대가 남편의 전 부인(ex-wife) 부부이니 특별하기는 특별하다. 짐작하시겠지만 그녀의 남편은 키위이다. 그녀의 가정은 전형적인 Blended Family (서로의 자녀를 데리고 재혼하는 가정)이다. 뉴질랜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의 형태이다. 이 가정의 자녀들을 보면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우애가 깊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우리의 문화와 정서가 그렇게 쿨(?)하지 못해서일까.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 장면을 우리 한국인들의 삶 속에서 상상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과거 감정의 앙금을 극복하고 서로의 행복을 응원하는 관계로까지 승화시킨 그들의 인간적인 성숙함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결혼 기간 내내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이혼한 후에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 모순적인 문구는 결혼의 패러독스(the paradox of marriage)와 부부관계의 딜레마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부부관계는 물론이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이상적 형태는 물리적 정서적 공간을 넘어 서로 건강하게 연결되어 있는(Connected) 것이다. 연결(connection)은 현재 진행형이나 애착(attachment)은 과거 지향형이거나 미래 구속형이다. 과거나 미래에 구속되지 않고 현재 이 순간 건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의 인간관계는 훨씬 더 편안해질 수 있다.  

 

어차피 자기 인생 자기가 사는 것. 

평생을 함께 해로하며 사는 것도 자기 인생. 중도에 서로 다른 길을 가도 자기 인생. 함께 있어도 좋고, 헤어져 살아도 좋은 관계. 서로에게 얽매이지 않고 건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그런 편안한 관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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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수_아시안패밀리서비스 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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