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임수의 열린 상담이야기] 다문화사회 생존법, 우리 이제 뻔뻔해지자

[김임수의 열린 상담이야기] 다문화사회 생존법, 우리 이제 뻔뻔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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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수의 열린 상담이야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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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공포증, 영어 공포증

“영어 때문에 자신감이 자꾸 떨어져요. 사람들이 뒤에서 내 영어를 흉보는 것 같아서 괴롭습니다.”


놀라지 마시라. 이곳 뉴질랜드에 어릴 적 이민 와서 초, 중고등학교 및 대학교를 졸업한 후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고백이다. 


진정 영어의 문제일까? 분명 아닐 것이다. 물론, 익숙지 않은 영어표현도 있을 것이고 특정 그룹에서 사용하는 은어나 속어(slang)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의 직무수행에 큰 지장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험이 자신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상황은 다분히 심리적인 부분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주류사회의 시각에서 본다면 (일단, 백인과 영어가 중심이라고 전제를 하자) 우리는 소수그룹의 이민자에 불과하다. 많은 이민자들이 백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열등감(white complex)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백인 콤플렉스가 현실에서 발현한 사례를 나누고자 한다. 바로 나의 경험담이다. 


40대 중반 늦은 나이에 학업을 마치고 운 좋게 이곳 국립병원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부서의 동료 100%가 백인들이었는데 모두들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유독 내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한 20대 백인 여성이 있었다. 


그가 나에게 특별히 까칠하게 한 것도 아니고 성격이 모난 사람도 아니었는데 나는 늘 그가 불편했다. 그 이유는 그의 재기발랄한 젊은 영어를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그와 짝을 지어 환자를 만날 때 그의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허둥댔던 적이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당황한 그의 눈빛이 결정타가 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나의 백인 20대 여성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슷한 또래의 여성과 근무를 할 때에는 늘 전전긍긍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공포(fear)는 불안(anxiety)이 구체화되어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포가 내 안에서 작동하는 방식(mechanism)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나의 공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문제의 근원을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의 경우 내 마음의 깊숙한 곳에서 자식뻘 되는 젊은 여자에게 무시당할 것이라는 공포가 작동했던 것이다. 아시안 중년 남자가 흔히 가지고 있는 위계(hierarchy)에 대한 위협이 기저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누가 주류(mainstream)이고 누가 주변인(the marginalized)인가.

이민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늘 주눅든 감정을 가지고 살아간다. 주류사회에 대한 무의식적 열등감이 그 주된 이유일 것이다.  


변두리 인을 영어로는 The Marginalised라고 한다. Margin이 끝자락이니 중심에서 밀려나 심리적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을 통칭한다. 하지만 무엇이 주류이고 무엇이 변두리인가. 우리는 주변인인가. 인간이 모두 평등할지 언데 왜 우리는 주눅들어서 혹은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가는가. 


우리 스스로를 주변인이라고 느끼는 순간 자신의 존재는 그렇게 규정된다. 물론, 인구수나 영향력으로 봤을 때 우리가 분명 소수 그룹에 속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훼손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아니 되어서도 안 된다. 


몇 달 전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과정 어록이 나에게 큰 위안과 격려를 주었다. 그는 투박하지만 당당한 영어로 전 세계에 선언을 했다. ‘이제 주류와 비주류, 메인과 로컬의 경계는 없다.’ 그의 영화가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언어와 인종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감동을 주기 때문에 그의 발언에 깊은 공감을 하는 것이다.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는 더 뻔뻔해져야 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는 1.5 혹은 2세대 젊은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을 한다. “학창시절에는 내가 아시안이라는 것이 약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회에 나와보니까 그것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다고 느낍니다. 어떻게 마음먹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렇다. 뉴질랜드와 같은 다문화사회에서 다양성은 단순히 인종의 비율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다양성이 제공하는 장점은 타문화에 대한 존중, 개인 가치관과 세계관의 확장, 개인의 성숙 등 이루 열거하기가 힘들다. 이것은 기업의 생산성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다양성을 배제하는 배타적인 조직은 성장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가. 나의 지론은 이것이다. 뻔뻔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윤리적, 법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철저히 뻔뻔해져야 한다. 영어를 못해도 당당하고 뻔뻔해져야 한다. 영어를 못한다고 ‘I am sorry’ 할 필요 없다. 왜 내가 미안한가. 영어 못하는 것이 그렇게 송구스럽고 죄스러운 일인가.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왔으니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은 삶의 편의성을 개선하기 위함이지, 영어를 못하는 것이 나의 잘못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타 인종을 대할 때 우리 스스로 겸손을 내세울 필요도 없다. 자존감 없는 겸손은 자기학대의 교묘한 포장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모든 인간이 모두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서로의 나약함에 공감하는 것으로 족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삶의 모습은 인종과 언어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라는 것이 뭐 특별한 것이 없는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아시안, 파케하, 마오리, 퍼시픽아일랜더 모두 불안함에 떨고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연약한 존재들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피부색과 언어를 넘어서는 보편적 인간성을 믿고 서로를 존중하며 도와야 한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뉴질랜드의 법과 제도는 다양성을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로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다름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의 힘을 믿도록 하자.


다름이 자랑이 되고 강점이 되는 뉴질랜드 사회. 이것이 우리의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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