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늘 불안할까?–감정 돌보기

우리는 왜 늘 불안할까?–감정 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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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수의 열린 상담이야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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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기쁨의 감정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이 줄어들지 않는 상황에서 불안감과 두려움에 짓눌려 살고 있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걱정과 불안, 두려움, 공포의 감정을 없애고 행복하고 편안한 감정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사실, 불안함과 두려움은 우리 생존의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왜냐하면, 외부의 위협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내부의 경고 및 대응기제가 불안과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평상시 감정은 약간의 긴장감과 불안감이 70% 이상이라고 한다. 이것은 인류 진화의 산물이다.


따라서 불안과 공포가 극단적인 감정의 상태로 일상생활이 힘든 정도의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놀라울 정도의 복원력으로 이에 적응하고 또한 생존을 위한 각종 방책을 제공하므로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기쁨과 흥분의 감정은 어떨까. 이 같은 감정들은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지속시간이 짧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 그리 오래가지 않음을 경험했을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이 비정상적으로 오래 지속하는 것이 위험한 만큼, 흥분된 상태와 기쁨의 감정이 너무 오래 지속하는 것도 문제를 야기한다. 

 

만약 감정적으로 흥분이 되면 뇌에서 아드레날린, 도파민, 세로토닌 등의 각종 호르몬이 분출되는데, 이 같은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출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 신진대사의 밸런스가 무너지게 된다. 무엇이든 과하면 좋지 않은 것이다. 


감정, 생각, 그리고 행동의 순환

감정을 수용하고 해석하고 저장하는 기관인 우리의 뇌는 대략 1.3kg 정도 크기이지만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기억을 저장하고, 우리의 감각을 해석하며, 온몸의 신경을 지배하고 있다. 뇌는 몸과 마음의 총사령부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컴퓨터와 작동원리와 흡사하다. 기억 저장소는 하드드라이브에 해당하고 사물과 정보를 인지 분석하고, 논리적 판단을 하는 전두엽의 활동은 CPU(중앙연산장치)와의 역할과 비슷하다.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는 감각과 감정이 인간을 기만한다고 믿었다. 오로지 생각(사유)만이 존재의 의미를 확인시켜준다고 주장했다. 데카르트의 말대로 육체와 이성을 분리할 수 있고, 오로지 인식과 사유만을 통하여 인간 실존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을까? 


감정, 이성(생각), 그리고 행동의 사이클을 우리가 완벽히 이해한다면 통제할 수 있다면 인간사 번민과 괴로움의 대부분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너무나 나약하고 불안전한 존재이다. 우리의 사고(사유)의 체계라는 것이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함정이다.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올바른(최적의)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감정의 영향을 너무나 지대하게 받다. 


우리 안에 켜켜이 쌓여 있는 감정들을 보자. 어릴 적 무서웠던 기억,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 당시 주변의 상황(contexts)들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또렷이 남아 있다. 설령, 하드드라이브의 주소체계가 고장이 난다고 해도(치매가 오는 상황) 감정은 그대로 거기에 있다.


다만, 감정을 부르고 저장하는 방식이 헝클어졌을 뿐이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그러나 평상시 억눌려 숨어 있는) 감정의 편린들이 시도 때도 없이 뛰쳐나와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고 행복하게도 한다. 


감정과 친해지고 감정을 돌봐야

좋든 싫든 우리는 감정의 총연합체이다. 

우리의 문화에서는 감정을 비이성적인 충동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이것을 표현하기보다는 억누르도록 배워 왔다. 유교적 가치 충, 효, 예가 도덕적, 윤리적 표본이 되었던 시절, 갈등이 야기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암묵적인 사회질서의 규범이었을 것이다. 


슬픔에 복받쳐 우는 어린아이에게 울지 말라고 협박을 하고, 크리스마스 때에는 ‘울면 안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 라는 캐럴을 들려주며 ‘뇌물(?)’로 세뇌시키기까지 했다.   


이렇듯 어릴 때부터 감정을 억누르고, 숨기는 데 익숙한 우리는 감정과 친해지는 기회를 원천 차단 당했다. 자신의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이를 말과 몸으로 표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 나누며 공감받는 것. 이 과정이 내적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우리는 왜 늘 불안할까?’

불안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불안한 감정을 회피하고 숨기고 묻어두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들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깊숙이 묻혀 있을 뿐이다.

이것들이 나중에 나올 때에는 훨씬 더 추악한 모습일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Unexpressed emotions will never die.

They are buried alive and will come forth later in uglier ways. (Zigmund Freud)


수천 년간 우리 인류의 선지자들과 위대한 사상가들은 인간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해법을 제시해 왔다. 그들의 공통적인 해법은 내적 충만함의 추구이다. 내적 충만함은 자기 성찰을 통하여 성장한다. 자기 성찰의 첫 출발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이를 돌보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숨겨진 감정들을 불러내서 대화를 나누자. 이제, 나의 새로운 스토리를 써 나가자.  


감정의 고삐가 풀려나와 이것에 압도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설 수도 있다. 용기를 내시라. 내 안에서 함께 동고동락해온 감정이라는 오랜 친구들.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웃고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허물은 없어지고 백년지기를 만난 듯 반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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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수_아시안패밀리서비스 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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