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dy Bear hunt

Teddy Bear h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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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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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아내와 함께 동네 산책을 나갔다. 강아지 도니가 앞장섰다. 석양 녘 기운으로 온 동네가 발갛게 물들어갔다. 도니가 컹컹 짖었다. 웬일이지? 눈을 들어 앞을 살폈다. 앞집 우편함 위에 곰이 한 마리 앉아있었다. 옆집 창가에도 귀여운 곰 돌이 둘이 손을 흔들었다. 어떻게 알았지? 도니가 테디베어 사냥에 나선 듯 천방지축이었다. 어린아이처럼 곰 찾기 놀이를 시작했다. 찾았어요. 여기도 곰 한 마리, 저기도 곰 두 마리… .


온 세상이 코로나19 사태로 팬데믹(Pendemic) 단계로 들어갔다. 악성 전염병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필수 요건으로 받아들였다. 뉴질랜드도 4주간의 Lock down이 공표되면서 자가격리, 봉쇄에 돌입했다. 관공서나 은행 상가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학교도 방학했다. 바깥세상이 텅텅 비어버렸다. 집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친구들과 놀거나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테디베어 사냥(Teddy Bear hunt)놀이. 영국 아동문학 작가 마이클 로젠이 곰사냥을 떠나자고 제안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소식이 가벼운 위로를 준다. 가족과 함께 산책하며 이웃집 집 창문이나 현관 등에 놓인 곰 인형을 찾아내는 놀이다. 호기심을 갖고 숨은 보물찾기처럼 즐겁게 거닐며 찾는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도 테디베어 사냥놀이에 동참했다고. 웰링턴에 있는 자신의 집 창문에 곰 인형 두 마리를 갖다 놓았다. 이 놀이는 해시태그와 SNS를 통해 온 세상에 퍼지고 있다. 


욕망의 전차

2020년 4월 5일, 일요일 현재. 스마트폰에 뜬 코로나19 실시간 상황판이 전쟁통 소식으로 도배를 했다. 실시간으로 발표되는 확진자, 사망자 소식에 온 세상이 우울하다. 전 세계 확진자가 126만 명에 사망자는 6만9천 명. 한국은 확진자가 1만 명에 사망자는 180명. 뉴질랜드에서도 확진자가 1천 명에 사망이 1명이라니. 이런 전쟁도 없다.


21세기 세상은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의 전차처럼 질주해왔다. 함께 편승한 사람들도 쉼 없이 저마다의 인생길을 내리 달려왔다. 급브레이크에 굉음을 내며 욕망의 전차가 우뚝 섰다. 앞만 보고 무작정 달리기만 했던지라 대 혼란이 벌어졌다. 


어쩔 수 없는 멈춤과 쉬어감을 명령받고서야 정신을 좀 차리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를 되돌아보고 이웃에 마음을 두게 되었다. 온 세상을 하나로 넓게 보게 되었다. 공간(空間), 시간(時間) 그리고 인간(人間)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사라졌던 사이 간(間)을 성찰하는 때임을. 


많이 가진 것이 꼭 부유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나 보이는 것에 올인하는 물질문명의 허상도 다시 살펴볼 때가 되었다. 어쩌면 단순함이 가장 부유함일지도 모른다. 단순해야 여백이 많다. 공간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듬성듬성 성긴 것이 있어야 통한다. 그동안 너무 촘촘한 스케줄에 빽빽한 공간에서 좀 답답하지 않았던가.


마음의 거리

일상이 무너지고 시간이 정지되고 공간이 제약을 받게 되었다. 누구든 만나고 싶으면 전화해서 만났다. 음식을 들면서 즐겁게 담소도 나눴다. 그 음식점이 추억의 장소로 바뀌었다. 빙 둘러앉아 사람 사는 흥건한 이야기에 기운을 얻었던 만남의 장이 유폐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Lockdown이 진행 중인 요즘. 오클랜드 거리와 광장이 한산하고 조용하다. 사람 간에 사회적 거리 두기로 밋밋한 세상이다. 우리 살아있는 세대들에겐 전무후무한 현상… . 겉으로 보기엔 물리적 거리 두기가 만연한데, 속내로 느껴지는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코로나19 속에서도 사회 유지를 위해 일하는 직업군에 대한 시민들의 응원이 따뜻하다. 대형 시내버스에 한 명의 승객을 태우고 오레와 걸프하버를 돌다가 눈길을 주고받는다. 가족이 나와 산책을 하다가 발길을 잠깐 멈춘다. 할머니 손을 잡고 가던 어린 손자가 손을 흔든다. 


마스크 쓰고 약국 앞에 늘어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한 명씩 들어오라는 약국 직원에게 목례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도 마음의 거리는 좁혀진다. 사람이 소중함을 느끼는 따뜻한 세상으로 집을 지어간다. 머잖아 팬데믹 먹구름이 걷히고 새파란 하늘이 점점… . 


안코라 임파로

큰맘 먹고 예약해둔 4월 밀포드 사운드 트랙 여정도 취소해야 했다. 모임에서 5월 나눔을 갖기로 예약해둔 북쪽 알지스베이 모텔, 1박 2일 일정도 지워졌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어이없이 제한되고 금지되었다. 아직 덜 배운 탓인가? 평생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일이다. 세상모르고 살아왔던 터에 더 배워야 할 때임을 깨닫는다.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는 이탈리아어가 이 시국에 화두로 떠오른다. 안코라 임파로(Ancora imparo).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벽화를 4년에 걸쳐 그렸다. 페인트가 묻은 몸은 피부병이 생겼다. 목은 잘 굽혀지지 않았다. 하프처럼 등은 휘어졌다. 수천 피트의 넓은 천장에는 300여 명의 성경 인물이 올랐다. 그림 완성 후, 그림 한쪽에 적은 글이 바로 안코라 임파로(Ancora imparo다. 고된 그림 작업엔 오직 현재 지금만을 생각한 고뇌가 역력하다. 


물질문명 세상에서 황금을 좇아 살아왔던 날들이 멈춰 섰다. 이 시점에 딱 대면하는 계율은 황금이 아닌 지금이다. 아비규환의 전쟁 통에도 훈훈한 미담과 위로의 사연이 있어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곰 한 마리를 찾았다고 마냥 즐겁게 컹컹 짓는 도니를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잔잔하지만 지금의 일상이 주는 작은 평화. 발 디딘 지금 여기를 다시금 내려다본다. 평범한 것이 주는 위안과 안정감을 새롭게 깨닫는다. 지금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지금의 연장선이 삶이다.


여행의 개념이 바뀌었다. 비행기 타고 멀리 해외 여행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면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부족해도 지금 고마운 마음이 있는가?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


백동흠<수필가>
2017년 제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대상 수상
A.K.L. Transport  근무

글 카페: 뉴질랜드 에세이문학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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