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 노래

가난한 사랑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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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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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삶을 노래하는 시인 신경림의 시다.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 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는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대학생이 된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 아웃 백(스테이크 하우스)에 갔다. 그녀가 5살, 언니가 8살 되던 해 엄마가 죽었다. 빠듯했던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식당일을 나가 돌아오던 길에 차에 치었다.


일용직 노동자, 소위 노가다꾼인 아빠는 딸 둘을 혼자 키우기 위해 피눈물을 흘렸지만 대가는 크지 않고 그냥 세 식구가 죽지 않고 살 정도였다.


초등학교 짝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집 벽에 곰팡이가 피지 않을 수 있단 것을’ ‘신선한 과일이 준비되어 있을 수 있단 것을’ ‘집에 미끄럼틀을 놓을 수 있단 것을’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뭔지 모를 설움이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언니는 집이 가난했기에 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집안을 위해 상고를 갔다. 전교 1등 등 중학교 시절을 ‘공부 잘하는 아이’로 보낸 그녀는 지역에서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고등학교에 진학해 첫 시험에서 전교 2등을 했다. 학원 하나 안 다니고 나라에서 보태주는 돈으로 문제집 사서 야금야금 혼자 공부해 전교 2등을 했다는 자부심이 컸다.


하지만 아빠가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나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고, 그녀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엄청 울었다. 그때 언니가 꼬옥 안아주면서, 어떻게든 언니가 돈 벌어올 테니 너는 공부해서 개천에서 용 한번 제대로 나 보라고 했다. 언니가 너무 고마웠고 너무 미안해서 죽을 지경으로 공부했다.


아빠가 싸준 기름 범벅 김치볶음밥을 싸 들고 수능장으로 갔고 집에 돌아가 가채점을 한 결과 국어 2점짜리, 지구과학 2점짜리에 x표가 쳐져 있는 가채점표를 붙들고 온 가족이 목놓아 울었다. 아빠가 언니와 그녀에게 그렇게 가자고 조르던 아웃 백 한 번 못 데려다준 못난 아비 밑에서 잘 커 줘서 너무 미안하다고 엉엉 울었다.


그녀는 2020학년도 연세대 의대 정시에 넉넉하게 합격했다. ‘현역 정시 연의’라는 여섯 글자는 참 대단했다. 근 세달 열심히 과외 해서 번 돈으로 밀린 월세 300만원을 갚고도 400만원이 남아 그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친 언니와 아빠에게 반반 나눠줬다.


아빠가 아웃 백을, 그것도 4인 랍스터 세트로 사주셨다. 언니와 그녀가 스파게티와 스테이크와 랍스터까지 먹는 모습을 본 아빠가 울었고 그녀랑 언니도 또 울었다. 울면서 4인 세트의 모든 음식을 다 먹었고 배가 찢어지게 부를 때까지 음식을 먹어본 것은 처음이다. 그녀는 자신의 노력으로 아빠와 언니에게 아웃 백에 가서 4인 랍스터 세트를 시켜먹을 수 있는 인생을 선물해 주겠다고 결심했다.


가난은 세상에 대한 증오와 미움을 배태한다. 미움과 증오는 추운 겨울 바다 살얼음 같은 밀물이 되어 가슴 속을 차오른다. 가난은 사방이 곰팡이 핀 벽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외롭고 서러운 거다. 가난은 내가 나를 버릴 수 있기에 두려운 거다. 증오 미움 두려움 외로움은 한숨과 눈물 속에서 슬픈 춤으로 흔들린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가난이 그토록 외롭고 두려워도, 가난이 아무리 증오와 미움으로 헐떡거려도, 아낌없는 따뜻한 사랑 앞에서는 꽃피는 봄날에 눈 녹듯 하릴없이 녹아내린다는 것을. 하여 상처투성이의 외로움과 한숨과 눈물이 믿음과 소망의 강물 같은 평화가 된다는 것을. 사랑은 기적을 낳는 거다. 그래서 사랑을 위대하다고 하는 거다.


사족이다. 가난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조금 외롭고 불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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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_세 손녀 할아버지(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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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글에 달린 댓글 총 1
OceanwildNZFP 2020.07.28 09:05  
마음에 울림이 생기는 그런 글이네요 잘 보고갑니다..

애드 프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