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ecking Bar

Wrecking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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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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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거렸다 

오늘은 일찍 일을 마치는 날, 오후 1시에 퇴근했다. 여유로운 날이었다. 앤디가 퇴근하다 차를 세웠다. 실버데일 비즈니스 지역, 중간쯤이었다. 샵 앞에 내다 버린 팀버 팔레트가 실해 보였다. 거대한 공산품 박스 아래 바쳐주는 나무틀 받침 지지대, 팔레트는 유용한 목재였다. 팔레트 목재를 한두 시간 뚝딱거리면 가든 지지대 하나는 건질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집 앞 가든 턱이 눈에 어른거렸다. 차 뒷문을 열고 팔레트를 실으려니 들어가지 않았다. 딱 5센티쯤 걸렸다. 어떡한다? 통째로 못 실으니 해체가 필요했다. 


차 부트를 열고 연장을 꺼냈다. 먼저 망치가 손에 잡혔다. 다음에 새로운 장비가 나왔다. 대못 빼는 데 편리한 도구, wrecking bar가 첫선을 보였다. 흔히 일본말로 부르는 빠루. 지난주에 건축자재상, 버닝 웨어하우스에서 샀던 걸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야무지게 짜인 팔레트를 해체하는데 무난해 보였다. 몇 개의 큰 받침대 위에 여러 쪽의 나무판이 단단히 박혀있었다. 새 연장을 나무와 받침대 틈새에 끼우고 확 젖혔다. 60 센티 크기의 쇠뭉치, wrecking bar의 위력이 대단했다. 맞대놓은 두 지점을 벌리는 지렛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뚜~두~두~뚝! 소리를 내며 분리되었다. 


뚜~두~두~뚝!

평소 $35이던걸, 그날 세일해서 $21에 샀는데 안성맞춤이었다. 예전에 길 가다 버려둔 튼튼한 팔레트를 보고도 아쉽게 지나갔던 게 생각났다. 팔레트 크기가 크고 너무 단단히 못이 박혀있어 손을 못 댔다. 아쉬웠던 일을 대비할 연장이 눈에 뜨여 바로 살 수 있었다. 세일까지 하는데 안 살 이유가 없었다. 뚜~두~두~뚝! 계속 작업을 이어갔다. 여덟 쪽의 나무 판과 세 개의 받침대가 분리되었다. 뒷좌석과 바닥에 헝겊을 깔고 모두 실었다.


실버데일에서1번 모터웨이를 타고 오클랜드 집으로 달려오는 앤디 입에서 휘파람이 나왔다. 바다 낚시가서 큰 스내퍼 한 마리 낚아오는 기분이었다. 코로나 정국으로 세상이 조용할 때는 집에서 뚝딱거리는 소일거리도 취미활동 대체재였다. 새 목재를 사려면 생돈까지 들 일이었다. 샵에서 내다 버린 것도 치워주는 셈이었다. 남이 불필요한 것을 유용하게 쓰니 서로 좋은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앤디가 집에 도착해 차에서 팔레트를 내려놓았다. 작업복을 갈아입었다. 햇살 바른 앞뜰이 작업하기 딱 좋았다. 팔레트에 남아있는 못을 빼내고 가든 지지대를 만들 셈이었다. 못 뿌리를 망치로 두어 번 톡톡 쳤다. 렉킹바를 못 머리에 대고 젖히니 못이 툭 빠졌다. 렉킹바가 지렛대 작용을 하여 일이 수월했다. 장비 하나가 바뀌니 여러모로 손쉬웠다. 일할 맛이 났다. 두꺼운 나무에 박힌 못을 작은 망치나 장도리로 빼내려면 힘들고 꽤 더뎠다. 쓸모 있음의 대비가 큰 팁이었다. 외식한 끼 한 값을 새 연장과 바꾼 것치고는 제법이었다. 


걸리적거리는

세상에는 말없이 자기 몫을 착실히 해내는 이가 많다. 그들은 지기 공과를 생색내지 않는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하다가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소매 걷어붙이고 나선다. 렉킹바처럼 진면목을 발휘한다. 걸리적거리는 못 같이 불필요한 것을 뽑아내는 렉킹바. 그 유용성이 참 든든하다. 


렉킹바가 본연의 역할을 해야 좋은데 그렇질 못한 경우가 있다. 작년 고국 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물리적으로 막는 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다. 선거제 개혁법안인 패스트 트랙 충돌과정에서 속칭 빠루가 난데없이 튀어나왔다. 국회의원실 문을 걸어 잠근 채 점거하자 이를 열기 위해 장도리, 망치와 함께 동원되었다. 한국 국회의 낙후된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빠루 출현을 두고 서로 네 탓이라고 물리적 공방을 벌인 여야 국회의원들의 수준이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렉킹바가 싸움 질 하는데 공격용 연장이나 무기로 사용된다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 국회의원들도 여야 모두 힘을 합쳐 국민의 안녕과 안전을 위해 지렛대 역할을 하면 오죽 좋을까. 국민의 위협이 되거나 걸림돌이 되는 못 같은 법안은 젖혀 뽑아냈으면 속이 후련하겠다. 


빠루는 일본 말 잔재라서 듣기도 거북스럽고 영 마뜩잖은 말이다. 우리나라 말로는 노루발 못뽑이라고 하는데 이도 영 생소하고 어설프다. 영어로 렉킹바(Wrecking Bar)로 쓰인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Soft & Smooth

세상일을 하는데도 버팀목과 지렛대 역할을 해주는 게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가?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왕가레이로 이사한 이민 동기, 테디가 생각났다. 앤디에게는 테디가 버팀목과 지렛대 역할을 해줬다. 테디 자신에게는 좀 불편하고 힘들어도 지렛대 역할을 자청했다. 앤디가 혼자 끙끙거릴 때 말없이 다가와 해결사 역할을 해줬다.


테디가 이사 가기 전, 좀 근사한 키위 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테디와 저녁 식사를 했다. 입에 살살 녹는 미디엄 스테이크 요리를 들었다. 곁들인 벨루토 로소 레드 와인 맛이 볼에 붉게 물들었다. 흥건한 저녁노을 기운이었다. Soft & Smooth 맛이었다. 뉴질랜드에 같은 시기에 이민 와서 오클랜드에 함께 살면서 고마웠던 일을 앤디가 이야기했다. 테디가 예의 좋은 미소로 한마디 했다.


-부끄럽게끔 웬 말이랴. That’s my pleasure~

-Pleasure라. 역시, 키위 마인드 다 됐네. 

-나도 그런 말, 키위한테 배웠거든. 내 옆집에 사는 키위 할아버지가 나한테 한 것을 그대로 자네한테 써먹은 거지.


상대가 버팀목이 필요할 때, 즉시 무릎 꿇고 엎드려 자기 등을 밟고 일하게 해주는 역할.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버팀목이 불현듯 앤디 머리를 스쳐 갔다. 이런저런 생각하며 두어 시간 뚝딱거리니 튼튼한 가든 지지대가 완성됐다. 가든에서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아주는 가든 테두리 받침대를 설치했다. 일을 마치고 앤디가 멀찌감치 떨어져 가든을 바라다봤다. 손에 든 렉킹바를 꼭 쥐었다. 묵직하고 든든했다. 거친 테디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하는 느낌이었다. *


백동흠<수필가>
2017년 제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대상 수상
A.K.L. Transport  근무

글 카페: 뉴질랜드 에세이문학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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