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r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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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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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속 갓난아이 

-어! 자네 손주 사진이야?

-손주는 무슨? 그냥 가슴속에 품고 다니는 애 사진이지. 


워크워쓰 바다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마치고 나오는 참이었다. 테스가 음식값을 계산하려고 지갑을 펼쳤다. 지갑 속에 갓난아이 사진이 웨이 눈에 꽂혔다. 평소 테스가 손주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터라 웨이가 궁금해서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럼 웬 갓난아이 사진이지? 혹시 조카 손주인가?

-뭘 그런 걸 자꾸 물어? 하나 있는 아들 녀석이 장가갈 생각은 않고 사업한다고 맨날 바쁘다는데.


푸호이 강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구석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웨이가 롱 블랙 잔에 뜨거운 물을 조금 부었다. 테스는 라테잔에 설탕 한 숟갈을 타서 휘저었다. 아직 코로나19 경보 2단계 상태라 카페는 한산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뉴질랜드 10월은 여름 날씨를 뒤로하고 연이어 비바람 치는 겨울을 달고 다녔다.


-언제부턴가 우리 부부는 마음을 바꿨어. 아들더러 장가가라는 말을 닫았지. 한때는 조급한 생각도 들고 마음이 쓰여 채근했지만.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라 어린애가 아니잖아. 엄연히 자신 세계가 있는데. 


-나름 계획이 있겠지. 요즘 애들 세상 보는 눈이 우리하고는 천지 차이잖아. 하고 싶은 일에 푹 빠져 살고, 세상 여행도 멀리 다니고. 그렇게 못 살고 일에만 매어 보낸 우리 젊은 날이 참 빨리도 지나가 버렸어.


현대 레이드물

테스가 지갑을 다시 열어 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 갓난애 사진, 사실은 우리 아들 돌 사진이야.

-오~ 그랬구먼. 지금은 건장한 청년 실업가!


테스가 씩 웃자 웨이도 따라 미소 지으며 장단을 맞췄다. 추석이라고 고국은 부산한 모양인데, 뉴질랜드 시계는 여기대로 흘렀다. 오전 근무라 일찍 마치고 늦은 점심이라도 함께하는 여건이 다행이었다.


고국에 살면 거기대로, 뉴질랜드에 있으면 여기대로 살게 되었다. 아이들 세대와 어른 세대는 천지 차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Territory, 독립국 영역 인정이 필요했다. 그게 공존하는 세상사였다. 자신을 알라고 말한 소크라테스의 말도, 자신 territory를 알라는 이야기려니 싶었다.


-요즘, 난 웹 소설에 푹 빠졌네. 딴 세상이던데.

-정말? 대단한 뉴스구먼. 어떤 장르에 꽂히던가?


-판타지 말고, 무협도 아니고. 현대물이지. 전개가 시원시원해. 소위 레이드 헌터 물이야.

-현대 레이드 헌터 물? 딴 나라 이야기를 하는구먼. 젊어지는 약이라도 먹은 것 같아. 


테스가 즐겨 읽는 전자책, 현대물 웹 소설을 신나고 박진감 넘치게 이야기했다. 웨이가 멍하니 넋이 나갈 정도였다. 테스의 제스쳐와 입 놀림에 얼음 아이가 되어갔다. 


-맞아. 내 생각에도 힘이 불끈불끈 솟아. 그동안 스트레스받는 고국 정치 뉴스에 에너지 소모 많았지. 한때는 필요하겠지만 끝도 없어. 언제나 정쟁의 대상이거든. 검새, 국개의원, 기러기의 기득권이 국민 세금을 축내며 벌이는 암투장이잖아. 속이 고구마처럼 답답했어. 


-우와! 자네 세상 보는 시각이 초탈한 것 같아. 나도 고국 정치 뉴스엔 신물이 났지. 특히 언론의 시각은 방향을 잃은 난파선 같아. 국민을 볼모 삼아 입맛대로 폭주하거든. 정론지가 사라졌어. 750만 재외 동포들이 바라보는 기대도 깡그리 무시해버리지. 좋은 머리와 에너지를 제대로 쏟으면 고국은 정말 세상의 탑 모델국가가 될 텐데 아쉽지. 


농어낚시 달인

아서라, 정치이야기 그만하기로 웨이와 테스가 입을 모았다. 웨이가 화제를 바꿨다. 최근 눈여겨본 고국 한국기행 이야기였다. 농어낚시 달인, 고수의 품격 75세 나이가 인상적이었다고.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군도 아름답대. 14살부터 60여 년 닦아온 농어낚시 달인이야기야. 파도치는 바다로 통통선을 몰고 가 바위 절벽 가에서 낚아 올리는 농어잡이 고수, 그 포스가 가슴에 쌓인 스트레스를 깡그리 씻어가 주더구먼. 하도 시원해서 세 번을 돌려봤네. 마치 내가 낚시해서 펄떡펄떡 뛰는 농어들을 낚아 올리는 기분이더구먼. 


-듣기만 해도 내 속이 확 뚫리네. 몰두하는 일에 나도 좋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으면 금상첨화 아닌가. 내 영역에서 고수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신선한 에너지를 팍팍 쏟아줄 수 있으면 잘 사는 것이지. 살아있는 전설 같구먼. 나도 한번 봐야겠네. 


빙의라도 한 듯 웨이의 얼굴에 농어낚시 달인 기운이 물씬 풍겨났다. 계속 북채를 쥐고 신나게 이어가는 웨이의 입담에 테스가 얼쑤 추임새를 띄웠다. 커피잔을 옆으로 치우고 톡 쏘는 콜라와 L&P를 시켜 마셨다. 속이 아싸했다. 뉴질랜드에서 맞는 추석 한나절이 시원하게 쿨쿨 넘어갔다.  


-‘이거 미치면 딴 것 못혀!’ 농어 낚시 달인의 외침이 인상적이었어. 농어를 두 마리씩 낚시로 연거푸 낚아 올리며 쏟아낸 그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네. 신들린 모습이었지. 우리보다 10년은 연배인 분이 저렇게 활달하게 살아가는데. 후배들도 자기 테리토리에서 몰입거리를 찾아 즐겁게 살라고 외치는 것 같았어.


웹 소설 한편

-100번 맞는 말이네. 자기 테리토리에서 몰입거리를 찾아 즐겁게 사는 일. 명언일세. 이번에 웹 소설을 대하며 나도 세상 인식이 180도 바뀌었지. 우리는 매일 밥을 먹고 살지않은 가. 순수문학이 집밥이라면, 웹 소설은 군것질이나 간식 같은 것이래. 웹 소설 문학을 소위 스냅컬쳐라고 부르는 걸 이해하게 됐지. 


-우와! 자네 웹 소설에 필이 꽂혔구먼. 하여튼 듣기만 해도 재미있어. 사실 나도 여지껏 웹 소설을 좀 등한시했지. 모르니까 그런게지. 웹 소설 한편 읽어보지도 않았으니까.


-순수문학은 인간의 고통과 감동을 끌어올리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청새치를 잡아 올리는 이야기 같아. 한없이 기다리고, 물린 상태에서도 끝없이 밀고 당기는 이야기지. 반면에 웹 소설은 즐거움과 통쾌한 재미를 선사하는 이야기고. 자네가 이야기한 농어낚시의 달인, 고수의 통쾌한 손맛을 다루는 것과 같지. 


- 아~ 그런 비유를 하니 쏙쏙 귀에 들어오네. 그려 바쁜 세상에 집밥만 먹고 살기는 어렵지. 일하다가 짬짬이 간식도 필요하지.  


-순수문학은 새드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은은한 여운과 위안을 주는 편이고. 웹 소설은 거의 해피엔딩으로 끝맺어. 복잡 고단한 현실에 활력을 주어 좋지. 


웨이와 테스의 추석맞이 만남이 공감 이야기로 질펀하게 농익어갔다. 한국 추석 휴무와 뉴질랜드 평일 일상, 순수문학과 웹 소설, 헤밍웨이와 농어낚시 달인, 독신과 갓난아이… 


다 고유의 테리토리였다. 바다 레스토랑에서 강 카페로 추석 햇살이 고루 퍼져갔다. 하늘에서 (헤밍)웨이와 (소크라)테스가 자신들의 이야기와 이름을 맘대로 갖다 쓰는 둘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


백동흠<수필가>
2017년 제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대상 수상
A.K.L. Transport  근무

글 카페: 뉴질랜드 에세이문학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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