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출입’_시인 박목월

‘우리의 출입’_시인 박목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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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yleys, 그레이스 정의 ‘일상의 습작’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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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으신 권사님한테 연락이 왔다.

아침마다 묵상하는 QTin이란 아침 묵상 책을 서울서 주문했는데 챙겨 주고 싶으니 주소를 알려 달라 하신다.


하버 브리지 혼자 넘는 일을 3.8선 경계를 넘는 듯한 부담으로 느끼는 많은 시니어 중의 한 분이신 이 권사님은 참으로 쿨한 생각을 하신 것이다.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하느니 우편으로 보내 주시겠다고.


그런 감사의 전화에, 나름 동방 예의 지국의 딸인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노스쇼어 갈 일이 자주 있으니 가는 길에 데본 포트로 얼른 들르겠다 말씀을 드렸다.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그리 하겠느냐며 반가워 하신다.


전화를 끊고 뵈러 가는 그 며칠 내내 새벽 예배 후 혼자 큐티를 하시며 책을 함께 주문하기까지 날 떠올리며 기도해 주셨을 모습이 떠올라 참으로 마음이 봄바람에 흩날리는 벗꽃 송이 마냥 기쁘고 기쁘게 한들거렸다.


친한 권사님께서 소개해준 이 권사님은 집을 알선해 드리며 알게 되었는데 나의 소속이 쿠메우이면서 타카푸나 쪽 집을 보여 드릴 때마다 하버 브리지를 건너오는 나에게 너무 미안해하셨다.


집을 사는 과정이지만 한 번에 바로 결정 하지 못하고 여러 집을 둘러 보아야 함에 늘 미안해하셨다. 아니라며 이건 제 직업이라 말씀드리며 마냥 마음 편히 찬찬히 보시라 설명을 드려도 늘 미안해하시며 함께 집을 보던 때가 벌써 작년 이맘때 즈음이지 싶다.


업무가 늦게 끝나 파김치가 된 몸을 누이다 문득 오전에 선물 받은 큐티 책이 떠올라 설레는 마음으로 큐티책을 꺼내 목차를 훑어보았다. 에스겔, 데살로니가 전서.


그런데 감사히 받아온 큐티책의 목차에 이어 박목월 시인의 글이 나를 먼저 맞는다. 


우리의 출입_박목월 


대문을 나선다.

먹고 마시는 것을 

위하여.

바쁜 걸음으로 

대문을 나서는 이를

긍휼히 여기소서.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를 

몇 개의 은전과 바꾸고

지쳐서 어깨가 축 늘어져 

문을 들어서는 이를

긍휼히 여기소서.


주림도 갈증도

당신이 베풀어 주신 것


주여.

우리의 출입이

당신으로 말미암아 

당신에게로 돌아 가는 것,


당신이 열어 주심으로

문이 열리고

당신이 닫아 주심으로

문이 닫기는 오늘의

우리들의 출입.


설사 몇 푼의 은전으로

오늘과 바꾸는 


측은한 출입 속에서도 

우리들의 우편에서

그늘이 되고

우리들의 영혼을

지켜 주소서.


낮의 해가 

우리를 상하지 말게 하고

밤의 달이

우리를 해치지 아니하도록

우리들의 영혼을 지켜 주소서.



여러 번을 곱씹으며 읽는 이 시구들이 내 마음을 밀물과 썰물이 되어 보듬고 사그라든다. 학창시절 외웠던 박목월 시인의 시구들을 떠올리며 10대의 소녀 감성에 다가왔던 박목월 시인의 시와는 또 다른 무게로 40 끝자락 아줌마 감성을 깊게 터치해 온다. 


난 주체 주체할 수 없는 감흥에 떠밀려 남편을 향해 ”자기~ 박목월 시인이 독실한 크리스천 이었어?” 시대와 공간을 총망라하는 만물박사 남편에게 물어보니 언제나 나와의 대화에 목말라 하는 남편의 대답은 오늘도 장르에 제한이 없이 이야기가 꽃을 피워댄다.


“ 그럼 !!! 박 목월 시인도 그렇지만 그 부인도 대단했지. 신실한 크리스천에 부인의 인내로 멋진 시들이 탄생했고 더군다나 40대에 20대 대학생과 사랑에 빠져 제주도로 도피 행각을 벌였을 때 그 부인의 일화는 엄청 재밌고 유명해” 라며 말을 이어 간다.


내용의 요약인즉슨, 전쟁 피난 중에 가족과 떨어져 대구에 있던 시인 박목월은 거기서 알았던 여러 해 연하의 여인을 서울로 상경해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 시 만나게 된단다. 로맨스에 빠진 모든 이들에게 있을 법한 운명적인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 둘은 박시인의 교수직과 가정을 뒤로하고 제주도로 도피 행각을 한단다.


나라도 전쟁 후라 궁핍할 시대에 시인과 여대생의 그 당시 제주도 생활은 둘이야 달콤했었어도 참으로 궁핍했었으리라. 그런데 여기서 박목월 시인의 부인 진가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이 둘을 찾아 제주도로 간 박목월 시인의 부인은 그들의 궁핍한 모습에 겨울옷과 생활비를 건네며 조용히 돌아왔다 한다.


전쟁통에 남편과 떨어져 자식들과 고생하며 이런저런 삶의 풍파를 호되게 겪었을 박목월 시인의 부인이 사랑에 인생을 걸고 집 나간 40줄의 남편을 보러 제주도행 배를 타고 찾아가는 여정이 나의 맘속으로 슬며시 밀고 들어 온다.


동서고금 가방끈의 길이를 떠나, ‘남자들의 철없음엔 대책이 없구나’란 생각이 드니, 뜬금없이 내 맘속에 신이 나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 남편이 고맙기까지 하다. 이런 부인의 행동에 미안함을 느낀 두 사람은 헤어질 것을 결심하고 박목월 시인은 가정으로 돌아왔다 한다.


전쟁의 참혹 속에 시인의 감성을 흔들고 간 박목월 시인의 중년의 사랑과  남편의 사랑을 지극히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가정을 성숙하게 지킨 부인의 더 깊은 사랑 이야기로 쿠메우 농장 “은총의 가든”의 봄밤은 빗소리와 함께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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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정     

・ 뉴질랜드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 베이리스(노스 웨스트)부동산 에이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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