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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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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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부자가 아니라고 

뉴질랜드 10월 둘째 주 토요일 오전,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살랑거렸다. 웨이도 테스도 이런 시간이 참 좋았다. 워크워쓰, 스넬스비치에서 낚싯줄을 드리운 채 이 얘기 저 얘기가 흘러나왔다. 몇 달 만에 갯바위 낚시를 나선 터라 가슴이 후련했다.


-He's not rich for no reason.

쪽빛 남태평양을 응시하며 테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옆에 앉아 낚시 미끼를 끼우던 웨이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무슨 소리, 그가 이유 없이 부자 된 게 아니라고?

-주변에서 그를 부자로 여기기에 왜 그런가 생각해 봤어.

-그를 생각하면 딱 생각나는 게 하나. 선뜻 밥값을 잘 내지.

-내 말이 그 말이야. 말처럼 쉽지 않잖아. 부자 마인드가 딱 배였어.


없는 사람, 테디 이야기가 둘의 입을 복닥거렸다. 동갑내기지만 미더운 친구였다. 그런 그를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다. 고국에 계신 그의 아버지가 위독한 이유였다. 코로나 사태 전에 들어간 뒤로 계속 고국에서 머물러있었다. 아버지가 하던 사업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옆에 없어도 좋게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부자였다. 달리 부자가 따로 있나? 가진 돈 많다는 부자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오~예! 입질이 시작됐네.

-그려. 이제 손맛을 볼 시간이 됐지.

웨이가 낚싯대를 바짝 움켜쥐고 작업모드로 들어갔다. 미끼와 고삐의 줄다리기 게임이 서서히 진행되었다. 슬로우 퀵, 밀당의 맛이란 게 낚시가 주는 쾌감이었다. 


한 번씩 이렇게 씻김굿을

-우와! 월척이네!!

바닷가로 끌려오는 물고기가 서서히 몸통을 드러내며 난리부르스를 췄다. 펄떡대는 힘이 장사였다. 햇살에 은빛 뱃살이 반짝거렸다. 웨이 얼굴이 벌게졌다. 팔뚝에 온 힘을 다해 끌어올렸다. 테스가 얼른 그물망 뜰채를 가져다 댔다. 


-이놈 좀 보게. 이 세계는 죽어도 못 살겠다네. 

-팔짝팔짝 뛰는 힘이 높이뛰기 선수를 능가하는구먼.

족히 2kg은 되어 보이는 스냅퍼였다. 얼마 만인가. 낚싯줄 드리운 지 두 시간 만이었다. 작은 고기 몇 마리를 대신해서 나온 듯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테스가 바통을 이어받아 작업을 시작했다. 예전 스시집 경력 10년이 녹슬지 않은 솜씨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인 횟감이 구미를 돋웠다. 출출한 뱃속에서 꼬르륵 신호를 보내왔다.


-신선한 횟감으로는 죽여주네. 큼직큼직하니 풍성하구먼.

-자, 이놈을 겨자 간장에 찍어 상추에 얹고 크게 한 입~

주거니 받거니 화이트 와인도 한 잔씩 들이켰다. 한 주일간 작업 현장에서 쌓였던 고단한 감정이 사르르 녹아 넘어갔다. 목수 일이나 운전이 몸과 맘을 쓰는 일이라 한 번씩 이렇게 씻김굿을 해줘야 탈이 없었다. 


-아까 나왔던 말 이어서 생각해봤네. 누가 부자인가.

-맡은 일에 고수처럼 몰입해 일하고, 쉴 땐 재미난 일에 빠지고, 맘 맞는 이랑 맛있는 것을 먹는 사람. 어떤가?

-하하하~ 명답이네. 대자연을 친구삼아 그 기운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지.


바로 불러 밥먹을 친구

횟감에 손이 가는 속도가 차츰 줄어들었다. 얼추 올챙이 배처럼 포만감으로 차올랐다. 후식으로 골드 키위를 잘라서 한 입 넣었다. 시큼했다. 너무 잘 익은 맛이었다. 다시 웨이가 이야깃거리를 끌어왔다. 


-예전에 말이야. 내가 택시 운전 할 때, 고국에서 여행 온 사람을 태웠어. 뉴질랜드가 심심해 보인다고 하더구먼. ‘이런 데서 성공한 사람 있어요?’ 하고 뜨악한 질문을 하는 거야.

-그 친구 눈에는 뉴질랜드 자연이 안 보였구먼. 그런 친구는 라스베이거스 같은 게임판 나라로 여행을 가야지. 번지수 잘못 짚었구먼.


-내 말이. 어이가 없어 역질문을 보냈지. ‘어떤 게 성공한 거요?’ 답변이 가관이데. ‘뭐 건물도 갖고 있고 집이라도 몇 채 갖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참, 뉴질랜드를 잘 못 알고 온 사람이구먼. 우리야 고국에서 여기 돈 벌러 왔나. 인생 후반전, 자식들 서구 교육 기회도 주고 우리도 새로운 자연 선진국에서 살아보려고 왔지.

-그래, 내가 말을 받아 다시 보냈지. ‘자기 좋아하는 일을 현업으로 가진 사람, 생각나면 바로 불러 밥먹을 친구를 가진 사람. 자기 취미생활을 하며 즐겁게 사는 사람. 이런 평범한 사람으로 사는 세상이 뉴질랜드랍니다.’


웨이나 테스가 뉴질랜드에 이민 오며 남태평양에 던져놓은 게 무엇인가를 되짚어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학력, 경력, 배경, 명함, 재력 등이 아니었냐고. 그런 거 안 따지고 별로 이야기 안 해서 남의 이목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고.

-뉴질랜드 버스 회사의 한국인을 들여다보면 대단하지. 예전 다 한가락씩 했던 사람들인데 전혀 내색 안 해. 박사, 목사, 서울대 예일대 출신, 이탈리아 유학 성악가, 소설가, 신문사 사장, 한의사... 나이 먹어서도 현역이 좋다는 사람들이지. 현재 지금 여기를 제대로 느끼고 살아가는 마인드가 부자지.


빈손으로 보내는 법 없이 

-그렇지. 나이 들어가며 이제 이 세계에서 잘하면서 선업을 쌓아야 저 세계에서도 잘 사는 것 아닌가. 어이, 이야기가 산으로 갔네. 자 한잔 마무리하고 다시 낚싯줄 담가보세. 지금부턴 집에 있는 사람 몫으로 잡자고.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 팔순 어른, 레오 할아버지가 생각나네. 몸이 좀 안 좋은데 횟감을 좋아하시는 분이거든. 옛날에 그분이 어부셨는데, 많이도 잡아다 주변 사람들 먹였지. 내 제안인데 지금부터 잡는 것 중 가장 큰 것은 그분 몫으로 드리는 게 어떤가.

-벌써 선업을 쌓자는 말씀? 당근이지.

스넬스 비취는 야박하지 않았다. 웨이가 세 마리, 테스가 두 마리 월척을 하도록 허락했다. 멀리 오클랜드에서 찾아와 준 두 가장을 빈손으로 보내는 법 없이 풍성한 먹거리를 들려 보냈다. 


1번 모터 웨이를 타고 내려오다 업퍼하버에서 빠졌다. 팜트리가 열병해있는 동네로 들어섰다. 레오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니 린 할머니가 텃밭에서 상추를 뜯고 계셨다. 웨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린 할머니, 레오 할아버지 잘 계세요?

-응, 오늘 웬 쌈이 좀 먹고 싶다네. 입맛이 좀 돌아왔나 봐. 


‘부자가 따로 없으셔. 여기 계셨네.’

-He's not rich for no reason.’*

백동흠<수필가>
2017년 제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대상 수상
A.K.L. Transport  근무

글 카페: 뉴질랜드 에세이문학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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