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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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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붉어졌다고?
-뻔쩍~~ 뻔쩍~~!!!
-빵!! 빵!!!

걸프하버쪽에서 스탠모어 베이 로드로 버스를 회전하는 순간이었다. 뒤에서 경찰차가 따라오며 위급 상황을 알려왔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났나? 싶어 버스를 도로 한 쪽으로 비켜주며 속도를 줄였다. 웬걸, 경찰차는 버스를 비켜서 추월해 가지 않고 계속 버스를 뒤쫓아왔다. 버스 뒤에 바짝 대며 경적을 울렸다.

‘버스 운전에 잘 못 한 게 없는데 무슨 일이지?’

앞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 버스를 세웠다. 경찰차도 서더니 젊은 경찰이 버스로 다가왔다. 앞문을 열자, 경찰이 올라타며 승객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이어 운전사를 향해 강한 시선을 쏘았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운전하는 데 문제 있습니까? 조금 전, 이 버스에서 내린 여자 승객이 신고해 왔습니다. 버스 운전사가 이상하다고. 운전사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서 혹시 안전사고라도 날까 염려해 알려왔습니다.
-아니요. 전혀 문제없는데요. 정상입니다.
-그래요? 그럼 손목 좀 내밀어 보세요.

경찰이 내 손목에 두 손가락을 대며 맥박을 체크했다. 순간, 얼떨떨했다.

-맥박이 좀 빨리 뛰는데, 감정상 뭐 문제 있는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운전하는 데 지장 없습니다. 버스가 지연되는데요. 어서 가야 합니다.

가슴이 뜨거워진 순간 
경찰이 잠깐만 더 기다리라면서, 회사 매니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바로 알려주자 경찰이 즉시 매니저와 통화를 시도했다. 한참을 상황 설명하면서 버스 운전사 메디컬에 문제 있느냐고 물었다. 매니저가 노말이라고 대답했다. 

경찰 휴대폰으로 들려오는 매니저 목소리를 들으며 안도감을 느꼈지만, 의아함은 떨칠 수가 없었다. 경찰이 내게 조심해서 운전하라며 보내주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여자 승객이 경찰에게 신고를 다 하고. 버스운전 3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잖아?’
생각은 하면서도 가슴에 뜨겁게 차오르는 묵직한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참 별일도 다 있네. 내 얼굴이 붉어졌다고?’
마음을 진정해가며 늦은 시간을 보충하려고 애를 썼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마침 윗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살짝 눌러 껐다. 다시 울렸다. 무시하고 그대로 버스를 몰아 종점에 이르렀다. 승객들을 보내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고국에서 온 전화였다. 카톡에 메시지가 떠 있었다.

-오빠! 엄마, 조금 전 돌아가셨어요. 여긴 중환자실인데, 편안히 눈 감으셨어요. 
‘아~ !!!’

눈앞이 하얗게 뭔가로 뒤덮여 버렸다. 
‘오랜 병고로 고생 많이 하신 어머니! 하늘나라 가시기 전 둘째 아들 못 볼 것 같아 뉴질랜드에 다녀가셨나.’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뜨거워진 순간이 괜한 게 아니었다.

Bereavement Leave
간신히 남은 운전을 마치고 회사 데포로 버스를 몰았다. 매니저를 만나러 룸에 들어섰다. 내 말에 앞서 매니저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숨을 돌리며 상황을 이야기하는 내 목소리가 떨렸다. 순간, 매니저가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 돌아가신 것에 유감을 표합니다. 부디 천국에 가시길 빕니다.
물병을 따서 주며 마시라고 내게 내밀었다. 이어 휴가 양식을 가져다 뭔가를 써나갔다. 나더러 마지막 부분에 사인하라고 볼펜을 건네주었다. 부모 형제 배우자 자녀가 세상을 뜰 경우 주는 장례 참석 휴가, Bereavement Leave였다. 

세상에, 회사에서 휴가를 줘도 한국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 코로나 정국이 끝나지 않아 뉴질랜드나 한국이 비자를 내야 입국이 가능했다. 2주가 소요되는 비자도 걸림돌이었지만, 양국간의 의무사항인 자가격리 2주가 더 큰 장애물이었다. 양국에 오가는 직항 비행기도 없었다. 전혀 상상도 못 해본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확실히 실감했다. 여긴 한국이 아닌, 남태평양 뉴질랜드 섬나라라고.

‘부모가 돌아가셔도 못 뵙는 신세라니~’
퇴근하며 고국에 전화를 걸었다. 여동생이 받으며 오히려 위로를 해줬다.

-오빠, 너무 걱정 마셔. 울 엄마 87세로 잘 사시다 가셨어. 비록 몇 년간 병상에서 고생을 많이 하시긴 했지만. 오빠랑 언니랑 작년, 재작년에 엄마 위급할 때 다녀가셨잖아. 여기 일은 남은 가족들이 잘할 테니 거기선 언니랑 기도하셔.

주변에서 오래전부터 어머니의 병고를 알고 많은 기도와 정성을 보내주었는데, 그 모든 걸 안고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 작년에는 아버지께서 90세로 세상을 뜨셨다. 어머니와 같이 노년에 병고로 참 많은 고생을 하시다 가셨다. 이제 두 분이 하늘나라에서 만나 뵙게 되었다. 

서둘러 집에 도착했다. 자욱한 촛불 향내에 가슴이 움찔했다. 아내가 묵주기도를 하고 있었다. 거실에 만들어 놓은 소박한 제대에 촛불이 타올랐다. 옆 화분에는 하얀색 난 꽃이 핀 상태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이민 오기 3년 전, 1993년 좋은 때였다. 함께 앉아 연도를 바쳤다. 뉴질랜드에 이민 오고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거치며, 성당에서 뜨겁게 활동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1순위가 부모님 전교라 여겨졌다. 

이후, 여러 도움으로 어렵사리 어머니는 정식으로 교리 공부해서 로사로 세례를 받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요셉으로 대세를 받았다. 노후에 병고로 병상 생활을 오래 한지라 성당은 거의 못 다니셨다. 

이제 편히 쉬셔요
입관과 발인 장례식 상황을 페이스톡으로 보며 함께했다. 코로나 사태로 국가 간 직접 만나지 못하고 화상 회의를 통해 일을 진행하듯이 했다. 그나마 위안을 삼은 건, 고국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과 딸이 엄마 아빠를 대신해 모든 일정에 참여해 열심히 거드는 모습이었다. 조문 영상과 카톡을 계속 실시간으로 보내왔다. 중환자실 병원, 장례식장 어머니 영정 대, 조문객들, 친지들, 입관식…

장례 리무진과 버스가 고향 집에 도착했다. 큰 조카가 영정사진을 들고 어머니께서 지냈던 집, 방 구석구석을 돌았다. 이어서 한우 농장에 도착해 섰다. 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음매~! 하고 우렁차게 목청 돋우는 누런 황소의 울음소리가 복숭아 과수원과 뒷산을 삼켜버렸다. 마지막 선산으로 향했다. 드디어 입관식. 마련된 가묘 옆에 파놓은 흙이 상기된 내 얼굴처럼 아주 붉었다. 어머니를 안장하고 흙으로 다 덮자 봉분이 도톰하게 올랐다. 

떠 놓았던 파란 떼를 다시 입혔다. 아버지와 나란히 두 봉상이 자리를 굳혔다. 이민 오기 3년 전 사진처럼 두 분이 웃으시는 느낌이었다. 묘 앞에 제사상을 차리고 모든 가족들이 절을 했다. 한 번, 두 번. 정성 들여 무릎을 꿇었다. 

아내와 나도 선산이 아닌 뉴질랜드 가정 제대 앞에서 무릎 꿇고 절을 올렸다.
‘어머니, 이제 편히 쉬셔요. 아버지와 함께 하늘나라에서 잘 계셔요.’ 

백동흠
<수필가>
2017년 제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대상 수상
A.K.L. Transport  근무

글 카페: 뉴질랜드 에세이문학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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