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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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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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란 무엇일까? 부부란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이 말하는 향기로운 부부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제법 고상한 인품의 소유자라고 알려진 사람들은 부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주옥같은 말들을 한다. “부부란 반쪽의 두 개가 아니고 하나의 전체가 되는 것이다. 부부는 가위이다. 두 개의 날이 똑같이 움직여야 가위질이 된다.  


부부는 일체이므로 주머니가 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 부부란 피차의 실수를 한없이 흡수하는 호수이다.” 등등 수없이 많다. 옳은 말들이다. 한데 하나같이 형이상학적인 언어의 유희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한 여자와 부부라는 틀 속에서 살아 온지 47년이 지났다. 부딪히고 깨지고 꿰맴을 되풀이하는 세월을 살면서, 주위의 살아가는 부부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부부란 이런 것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2살 때 아버지는 세상을 등졌다. 나는 자라면서 어머니나 아버지가 서로에게 행동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다만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진을 항상 방안 벽에 걸어두었다. 지금도 뚜렷이 기억한다. 


우리 형제들이 머리를 나란히 하고 잠든 단칸 셋방에서 남대문시장 옷 가게에서 얻어온 일거리로 밤늦도록 재봉질을 하던 어머니가 벽에 걸린 아버지의 사진을 올려다보면서 중얼거리던 혼잣말을. “나가 이 새끼들 당신 보란 듯이 키울 거요…”


생각해보면 내 어머니는 아버지를 존중하고 존경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어머니에게서 아버지의 험담이나 단점을 들어본 기억이 전혀 없다. 한 인간으로서 어찌 흠이나 흉이 없겠는가? 그러나 내 어머니는 살아생전 당신 남편에 대한 서운했던 것들을 자식들 앞에서 말한 적이 없다. 어쩌다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면 정의롭고 강인하고 자랑스러운 것들뿐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 말씀처럼 그렇게 바르고 뛰어난 사람인지는 확언할 수도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라다 보니 정말 그렇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건 어쩌면 삐뚤어질 수 있었던 방황 속에서도 나를 똑바로 붙잡아 세울 수 있었던 나의 자존심이었는지 모른다.     


내 어머니는 한글을 몰랐다. 신문에 쓰여진 광고 문구를 더듬더듬 혼자 소리 내 읽으셨을 때 문득 들은 내가 “와~ 어머니, 글 읽으시네~”라고 하자 쑥스러운 듯 빙그레 웃으시던 모습이 내 가슴속에 눈물처럼 고여있다. 흔히 하는 말로 글도 읽을 줄 모르던 내 어머니는 걸핏하면 남녀평등이라고 떠벌리는 많이 배우고 많이 안다는 여인네들보다 더 지혜로웠고 더 현명했다. 


나는 아들 내외와 함께 산다. 부끄럽게도, 아들이 결혼할 때 집 칸이나마 장만해 독립시켜줄 여력이 내겐 없었다. 그렇게 아들 내외와 함께 산 지 20년이 넘었다. 그러다 보니 세월 따라 가정생활은 아들 내외가 이끌어간다.


저간에 집을 옮겼다. 집을 팔고 사고 가격을 설정하는 모든 것들을 아들 부부가 의논해 결정했다. 새로 구입한 집을 며느리가 주도해 대대적인 손질을 했다. 거의 1개월 넘게 공사를 했다. 며느리가 세세하게 주문을 했지만, 뒤에는 아들이 있었다. 아들 부부는 밤이면 새로 구입한 집을 찾아가 공사의 내용과 방향을 의논했다. 그들은 서로가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의견을 접목했다. 그들의 대화는 늘 매사 부드럽다.


새집에 따뜻한 쉼터가 만들어졌다. 식당 옆쪽에 자리한 작은 데크를 다듬어 소파와 탁자와 의자를 준비해 쉼터를 마련한 거다. 그 쉼터의 이름이 ‘승이네’다. 영어로는 Andy’s Bar다. Andy는 승이의 영어 이름이다. 나는 집 지킴이 멍멍이하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디오게네스’처럼 햇빛바라기도 한다. 저녁에는 이따금 아들 부부 지인들이 찾아와 소주 맥주를 마시며 살아가는 얘기들을 나눈다.


승이네 라 이름 짓고 명패를 만들어 쉼터 기둥에 건 사람이 며느리다. ‘승’이라는 이름은 제 남편 이름 끝 글자다. 아무렇지도 않은 소소한 행동 같지만, ‘승이네’라는 명패 속에서 남편을 자랑하고 존중한 내 어머니의 그림자를 본다. 


부부란 무엇이냐고? 존중하는 것이다. 철학적이고 남녀평등을 주창하는 거창한 정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소시민으로서, 지난한 세월을 건너온 한 무지렁이로서 느낀 대로 말하는 것이다. 설령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뛰어나지 못하고 부족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존경(尊敬)은 아닐지라도, 존중(尊重)은 해야 한다. 그것이 부부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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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_세 손녀 할아버지(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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