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단 한번, 단 한 사람(1)

한번, 단 한번, 단 한 사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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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2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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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집 앞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췄다. 강아지 도니를 데리고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나선 길이었다. 도니가 마스크 쓴 일꾼을 보고 멍멍 짖었다. 


오클랜드 아일리쉬 애비뉴 153번지 이층집, 나무 우편함에 세월의 그림자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커피색 웨더 보드에서 풍겨 나오는 집 기운이 고혹적이었다.


열흘 전쯤, 엘리자베스가 오클랜드 병원에서 코로나 확진 치료를 받다 세상을 떠났다. 95세였다. 기저 질환 상태라 코로나에 삶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확진자로 운명한 터여서 병원 빈소에도 못 갔다. 온 국민은 록다운 격리 생활 중이었다. 


마음이 착잡했다.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초기 6개월간 엘리자베스 집 아래층에 세 들어 살았던 인연이라 안타까웠다. 같은 골목에 오랜 세월 지낸 추억이 아스라했다.  


아들, 딸, 아내 그리고 나 네 명의 영어 가정교사가 되어주었던 엘리자베스였다. 하늘로 가는 길에 배웅도 못 하게 만든 코로나 시국이 야속했다. 


이곳 섬나라 뉴질랜드는 코로나바이러스 대책으로 록다운 봉쇄 명령을 일찍 내렸다. 모든 국민이 4주간 집에서 머무는 집콕, 비상 봉쇄 생활을 해야 했다. 동네 산책 정도만 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뉴질랜드에 오가는 항공편과 선박까지도 입 출국이 전면 금지된 상태였다. 


어제 오클랜드 시티 카운슬로부터 온 메일을 보고서야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다. 애완견을 가진 집에 당부하는 안내 메일이었다. 록다운 기간 중에 강아지와 가능하면 집 주변 산책을 해보길 권유했다. 


집에 너무 오래 있다 보면 우울증 같은 게 올 수도 있다고 염려했다. 장난감 놀이를 하게 인형이나 놀이 물을 찾아 주라 고도 했다. 코로나 사태로 사람이 죽어가는 마당에 강아지 걱정까지 해주는 나라가 엉뚱하다 싶었다. 멋쩍게 씩 웃었다. 


목줄을 챙기자 도니가 천방지축으로 날뛰었다. 얼마나 학수고대한 외출이었냐고. 3주간 집에만 있다가 바람 좀 쐴 겸해서 목줄을 매서 데리고 나왔다. 한산한 동네 길이 숨죽인 듯 적막했다. 


엘리자베스 집 왼편 울타리에 하와이 무궁화로 불리는 하이비스커스 꽃이 만발해있었다. 매우 이국적이었다. 선홍빛 립스틱을 한 꽃송이들이 윤기 나는 초록 잎 속에서 돋보였다. 


뉴질랜드에 살다 보니 이 꽃을 볼 때면 고국의 무궁화가 생각났다. 엘리자베스가 애지중지해오던 하이비스커스는 제 계절을 만난듯했다. 바깥세상이 격변한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계적 대 유행병인 코로나 사태로 WHO가 팬데믹을 공표한 시국이라 세상은 암울했다. 2020년 4월은 티어스 엘리엇의 말만을 되새김질할 뿐이었다. 그 말이 유효했다. 참 잔인하고 혹독했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 내려왔다. 노아의 홍수 심판도 아니었다.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과도 달랐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었다. 스마트 폰에 실시간으로 뜨는 코로나 상황판을 보면 가슴이 막혔다.


 4월 말 기준으로 코로나 사망자가 천문학적이었다. 전 세계 215개국에 사망자가 24만 명이라니. 미국만도 6만 명, 한국은 220명, 뉴질랜드가 15명으로 오름 추세였다. 세상에 이런 전쟁도 없다. 확진자는 부상자이고, 사망자는 전사자가 아닌가.


마스크를 쓴 일꾼 둘이서 엘리자베스의 물품을 꺼내 밖에 내놓고 있었다. 그녀가 평소 사용했던 것들이었다. 천이 낡은 소파도 나와 있었다. 이민 초기에 엘리자베스로부터 영어공부 배울 때 앉았던 소파였다. 


한쪽 다리가 송곳니처럼 뻐드러진 침대도 보였다. 등나무 줄기로 엮어 만든 책상과 의자도 낡은 고물 취급을 받았다. 그 외 여러 물건들이 계속 나왔다. 매트리스, 신발, 모자, 가방, 옷, 이불, 지팡이, 보행기, 장신구, 인형, 소지품들이 민낯을 드러냈다. 


종합 쓰레기 담는 빨간색 철제 빈에 물품들을 쏟아부었다. 쓰레기 업체에서 가져다 놓은 거대한 철제 빈은 허기진 잡식동물처럼 닥치는 대로 집어삼켰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냉엄한 각성의 칼날이 번쩍거렸다. 소독 방역상 수긍은 가면서도 가슴이 먹먹하게 시렸다. 눈시울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 결국 모든 게 떠나는구나.’


살아생전 애지중지하던 물건들마저 주인 없다고 천대를 받는 것 같아 망연히 바라만 봤다. 내가 안 돼 보였던지 일꾼 한 명이 검은 마스크를 들어 올리며 귀띔해주었다. 


웰링턴 사는 아들이 와서 엘리자베스 귀중품과 문서들은 미리 챙겨갔다고 했다. 나머지 물건들은 다 버리고 소독 청소까지 해줄 것을 당부했단다. 코로나 확진자로 세상을 뜨자 환자가 사용한 물건이 신속히 폐기 처분되었다. 방역 당국의 지시에 쓰레기 수거 업체는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멍하니 일꾼들과 물품들을 지켜보다가 목울대로 치밀어오는 연민에 함몰되어갔다. 인간적 친분 감정은 사회적 봉쇄조치에 꽁꽁 얼어버렸다. 엘리자베스의 인생 책 서두, 프롤로그가 PPT처럼 한 장씩 넘어갔다. 나의 뉴질랜드 이민사도 병행으로 펼쳐졌다.


엘리자베스는 영국 아일랜드 시골에서 태어났다. 더블린에 올라와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던 남편을 만났다. 딸 아들 낳고 순조롭게 살다가 뉴질랜드에 이민을 왔다. 


오클랜드에 자리 잡고 허름한 집을 구했다. 앞터가 넓었다. 남편은 목수 일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왔다. 남은 시간을 활용해 앞 터에 새집을 짓는데 몰두했다. 수입이 되는 만큼 자재를 사 오고 공사를 이어나갔다. 무려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새집이 완공될 무렵 짐을 옮기고 낡은 집을 헐어냈다. 엘리자베스 가족이 2층에서 살았고 1층은 남에게 세를 주었다. 뒤뜰에는 엘리자베스가 좋아하는 시크릿 가든을 만들어 주었다.  


남편 그레이엄이 ‘한번, 단 한번, 단 한 사람’이라 말하며 아내에게 헌사한 선물이었다. 로맨티시스트였다. 엘리자베스가 가꾸어놓은 정원을 보면 타샤 튜더의 정원이 클로즈업되었다.


그레이엄은 뉴질랜드에 정착하고 20년 뒤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새집 지붕 작업을 하다가 그만 실족해 운명한 거였다. 엘리자베스가 50세 때였다. 그녀는 남편 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졸도해 버렸다. 


앰뷸런스에 실려서 남편 시신이 있는 오클랜드 병원으로 갔다. 완전 패닉 상태였다. 독립한 아들 딸아이의 부축으로 간신히 남편 장례를 치르고 다시 쓰러졌다. 그때, 패닉이란 단어를 가장 뼈저리게 체감했다고 했다. 


세월에 의지해 사고의 여진이 무뎌지며 다시 일어섰다. 1층에 사는 세입자들을 가족처럼 대하다 보니 여러 도움도 받았다. 남편이 지어준 집에서 남은 여생을 그가 말한 ‘한번, 단 한번, 단 한 사람’으로 살아갔다.



백동흠<수필가>

2017년 제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대상 수상

A.K.L. Transport  근무

글 카페: 뉴질랜드 에세이문학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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