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단 한번, 단 한 사람(2)

한번, 단 한번, 단 한 사람(2)

뉴질랜드타임즈 댓글 0 조회 201 추천 1


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253회) 


729c5d678bd415ddb014e3650ba08a65_1618368971_9038.jpg
 

딸과 아들도 독립하면서 순탄한 생활이 이어졌다. 아들은 수도 웰링턴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딸은 오클랜드 시티 카운슬에 다녔다. 손주들이 찾아오면 시크릿가든에서 즐겁게 보냈다. 계속 그럴 줄 알았는데, 또 큰일이 터졌다. 


65세 때 엘리자베스가 두 번째 쓰러졌다. 옆에서 잘 챙겨주었던 딸이 42세 나이에 저세상으로 떠나갔다. 뇌출혈이었다. 밤에 자다가 그만 영원히 눈을 감았다. 그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해 거의 실성한 사람이 되었다. 


가장 소중한 남편과 딸아이를 잃고 나서 삶의 이유를 부정하기까지 했다. 하늘에 울부짖었다. 딸아이를 보내고서 집에만 칩거했다. 세상에 거리를 둔 자가격리의 봉쇄 생활이었다. 


오직 뒤뜰에서 흙만 파고 일구었다. 종일 애먼 잡풀만 뽑기도 했다. 계절이 바뀌며 자연이 주는 치유력에 의지해 현재를 가까스로 붙잡았다.


언젠가 우리 내외에게 이런저런 자신의 지난 일들을 털어놓은 게 생각났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위에서 부르면 아무 소리도 못 하고 그냥 가는 게 인생이잖아. 그 날은 아무도 몰라. 알려고 조바심낼 일도 없어. 언제라도 부르면 서슴없이 가야지. 걱정 말고 오늘 현재를 살아가는 여생에 마음 두자고. 허둥대지 말고 안달복달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야.”


한참 엘리자베스를 생각하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아지 도니가 목줄을 끌어당긴 탓이었다. 건너편에 검은 고양이가 고개를 내밀다 잽싸게 도망갔다. 컹컹 짖으며 무섭게 쫓아가는 도니 힘에 딸려 엉겁결에 내 발걸음도 빨라졌다. 


한참을 뛰다 보니 고양이는 나무 담장을 뛰어올라 넘어가 버렸다. 그제야 도니 목줄 힘이 느슨해졌다. 담장 너머의 집은 마침 공사 중이었다. 2층을 넓히기 위해 스캡폴딩으로 견고한 지지 틀을 세워둔 상태였다. 방을 한 개 더 만드는 연장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공사 중인 집 앞에 있는 시내버스 서는 곳 벤치에 앉아 헐떡이는 숨을 잠재웠다. 쉬어가는 김에 이것저것 생각했다. 엘리자베스는 아일랜드에서 나는 한국에서 이민 와 살아온 세월과 일들이 서로 직조되어갔다. 


내 인생 후반전은 칡 나무 덩굴처럼 물리고 엮여있었다. 고국 자동차 회사에서 13년간 일하다 뉴질랜드에 이민 왔던 시절이 반추되었다. 40세 나이에 돌연 이민을 선택한 결단은 호기로웠다. 입사 동기였던 동료가 과로사로 유명을 달리했다. 


충격이었다. 대혼란 패닉에 빠졌다. 25년 전 당시, 인생은 80이라고 하던 때였다. 나이 40이 된 순간, 문득 80 인생의 하프라인에 선 느낌이 강하게 나를 움직였다. 


현실 점검을 우선 해봤다. 나 혼자 사는 인생도 아니고, 커 나는 두 딸이 눈에 밟혔다. 나와 아내의 후반전 인생도 고민되었다. 직장 생활해가며 아이들을 외국에 유학시키는 것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인생 후반전을 똑같이 뛰기엔 힘에 부쳤다. 


남에게 보이는 나보다 내가 나를 바라보며 살길 원했다. 여백이 필요했다. 단순해야 여백이 깃들 수 있었다. 공간도 그렇고 시간도 그랬다.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공간, 시간, 인간에 왜 사이 간(間)이 들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걸 잊고 산 세월을 보완하기로 했다. 사이 간(間)을 찾아 후반전 인생을 살기로 마음 굳혔다.


여러 날 아내와 상의하고 준비했다. 결단은 단호했다. 나나 아내나 아이들도 호기심 많고 여행을 좋아하는 타입이라 다 함께 움직였다. 뉴질랜드 이민은 급물살을 탔다. 


자동차 회사 생활은 현장중심으로 기름 냄새 속에서 이어졌다. 말 그대로 너무 기름진 생활이었다. 신차 설계, 차량 실험, 대량생산, 품질 검사, 현장 교육, 차량 판매까지 13년을 한 직장에서 보냈다. 자동차를 만드는 일을 5월 가정의 달에 마감했다. 


평소 마음속에 간직한 일이 있었다. 나무 냄새 맡으며 목조 주택을 짓는 일이었다. 뉴질랜드에서는 각광받는 일로 하우스 빌더라는 직업이 있었다. 이민을 준비하면서 수소문해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 인연을 맺었다.


뉴질랜드에 첫발을 디딘 6월은 한겨울이었다. 계절이 반대인 나라 뉴질랜드는 또 다른 책이었다. 오클랜드 공항에 내려 시린 땅을 밟고 푸른 하늘을 한없이 올려다봤다. 우선 공기가 청량하고 맑았다. 울컥했다. 공간이 듬성듬성했다. 시간은 여유로웠다. 인간도 여백을 띠었다. 


삶의 터를 옮기면서 기본 구색을 갖추는 일들이 걱정되었다. 영어가 잘 안돼 어려움이 따랐다. 조심조심 하나씩 풀어나갔다. 먼저 집 구하기에 전력을 쏟았다. 


우선 애들 학교 가까운 근처 집을 알아보았다. 첫 보금자리가 바로 엘리자베스의 집 1층이었다. 6개월을 그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적당한 집을 물색하기로 했다. 정착에 필요한 여러 일을 서둘러 처리했다. 


은행에 가서 우선 내 계좌를 텄다. 5년 된 중고 승용차도 한 대 구매했다. 두 딸 학교도 찾아가 등록시켰다. 초 중고를 다 걸어서 다닐 거리였다. 부족한 영어는 아는 교민이나 교우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늘려갔다. 


먹고 살 일자리, 집 짓는 팀에 합류해서 보조 일부터 목수 일을 배워갔다. 한 달쯤 일했을 때였다. 고국에서 목조 전원주택 한 채 주문이 들어왔다. 고국에 전원주택 붐이 일어날 때였다. 


뉴질랜드 산 통나무 재료를 대형 컨테이너 두 개에 담아 선적해 고국에 보냈다. 뒤따라 팀원 4명이 건축 장비를 들고 고국에 입국했다. 경기도 여주 산기슭에 자리한 곳이었다. 


3개월 일정 계획으로 건축일에 박차를 가했다. 불도저로 땅을 고르고 팠다. 딱 됫박을 뒤집어엎어 놓은 형태였다. 네 변에 나무로 지지대를 만들어 바닥 프레임을 만들었다. 


콘크리트 믹서차가 와서 시멘트를 부었다. 며칠간 양생시켜 바닥공사를 다졌다. 팀원 중 두 명은 뉴질랜드에서 목조 주택 전문대, 폴리텍을 나온 목수로 여러 채 집을 지어본 경험자였다. 


한 명은 고국에서 한옥을 지어본 경력에 황토방까지 만들 줄 아는 목수였다. 난 희망 사항이 하우스 빌더로 집 짓는 경험은 없었다. 옆에서 거들어주는 보조 역으로 움직이는 동선이 가장 길었다. 


백동흠<수필가>

2017년 제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대상 수상

A.K.L. Transport  근무

글 카페: 뉴질랜드 에세이문학 운영 

 

저작권자 © ‘뉴질랜드 정통 교민신문’ 뉴질랜드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게시글에 달린 댓글 총 0
 
 
 

애드 프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