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단 한번, 단 한 사람(3)

한번, 단 한번, 단 한 사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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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2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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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7월부터 9월까지는 한여름이었다. 계절이 반대인 뉴질랜드는 한겨울로 밤 온도는 뼛속까지 스미는 추위였다. 뉴질랜드에 남은 가족이 눈에 시도 때도 없이 어른거렸다. 정체성이 흔들렸다. 밤마다 안부 통화를 할 때면 가슴이 먹먹했다. 


여권 비자 기간이 3개월이라 그 안에 집 공사를 마무리하고 돌아가야 하는 일정에 빈틈을 보일 수가 없었다. 작열하는 고국의 여름 땡볕 아래서 구슬땀을 말로 흘렸다. 집 공사를 시작하며 한 달간 적응 기간이 논산 훈련소 훈련병처럼 팍팍했다. 


불과 두 달 전, 5월에는 고국의 자동차 회사에서 기술자였다. 사무실에 자리 잡고 현장을 둘러보는 일만 했던 나는 180도 다른 체험으로 빠져들었다. 반바지에 반소매 작업복 그리고 야구모자를 쓴 채로 동분서주했다. 주로 내 일은 통나무 목재를 전동 톱으로 잘라 목수들한테 수급하는 일이었다. 


써큘러 쏘라 부르는 전동 톱의 굉음은 귀청을 울리고 때렸다. 작업 귀마개, 이어 머프를 쓰고 하다가도 목수들이 외치는 나무 사이즈 주문을 들으려면 벗어야 했다. 


일에 속도를 내려다보니 이어 머프 쓰는 걸 등한시했다. 목수들은 나무토막에 목수 연필로 필요한 나무 사이즈를 적어 던졌다. 서둘러 자르다 보면 잘 못 잘라 허탕을 치는 경우도 있었다. 다시 잘라 올리려면 식은땀이 났다. 


해뜨기 전부터 일을 시작해 노곤할 정도의 작업 후 새참을 먹었다. 해가 지고 땅거미가 몰려올 때까지 엎드려 톱질에 망치질을 했다. 일을 마치고 연장을 챙길 때면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아팠다. 


간신히 일어서다 우연히 들어오는 광경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전원주택의 형체를 갖춰가는 품세가 옹골찼다. 뿌듯한 보람 같은 게 차올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예술가들 땀을 이해할 것 같았다. 


임시 마련한 농가 숙소에 돌아와 샤워하고 밥 먹으면 바로 통나무처럼 쓰러져 곤한 잠에 떨어졌다. 주일에는 평소 다니던 성당에도 못 나갔다. 근처 산간 지대에 교회나 성당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공사 일정을 맞추기 위해 집중적으로 공사 일에 매달리는 게 우선이었다. 


한 달이 지나자 내 얼굴과 팔다리는 뿌리의 킨타쿤테처럼 새까맣게 탔다. 작열하는 땡볕과 한증막 무더위 속에서 종일 일 하다 보니 몸이 탈진상태에 이르렀다. 


고된 노동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내 체력의 한계를 체감했다. 화이트 칼라에서 블랙 칼라로의 전환은 혹독한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다. 이론과 실제, 꿈과 현실은 냉엄했다.


일하다가 인근 동네 사람이 아들딸 데리고 걷는 것만 봐도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저렇게 사는 것이 가족 행복이지 싶었다. 성공과 행복을 찾자고 생고생하는 내 모습이 한없이 작게도 느껴졌다. 초라해진 자존감이 웅성거렸다.


가끔 통화하면 아내는 걱정 말라고 나를 위안시켰지만,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다. 집 공사를 해가면서 조그만 수첩에 작업공정과 방법, 작업 용어를 메모하고 스케치했다. 


집에 오면 잠자기 전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대학 노트에 다시 정리했다. 한 권에 이어 두 권까지 채워졌다. 부족한 것은 목수들에게 물어가며 보완했다. 건축 공정 핸드북이 그나마 작은 위안을 주어 껴안고 잠을 자기도 했다. 


어느 날 아침, 귀에 심한 통증이 느껴져 일어날 수가 없었다. 동료 목수가 소리쳐 깨우는 목소리조차 거슬리게 울렸다. 깜짝 놀란 목수들이 봉고 트럭에 태워 나를 읍내 병원에 옮겼다. 


의사가 오른쪽 귀를 검사 경으로 체크했다. 고개를 흔들었다. 정밀 특수 검사에 들어갔다. 오른쪽 귀청에 심한 손상이 갔다고 나무랐다. 귀청이 나갈 정도로 웬 혹사를 했냐고. 가슴이 녹아버릴 것 같은 패닉에 빠져버렸다. 황소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이게 내가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주일날 성당도 못 가면서.’

몸은 통나무처럼 쓰러져가고, 마음도 검불처럼 흐트러졌다.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다니면서 며칠 안정을 취했다. 남은 목수 셋이서 한 달 내로 집 공사를 마무리해야 했다. 


산간 동네에서 인부를 구하려 해도 쉽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도회로 나가고 나이 든 어른들만 농사를 짓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이어 머프를 다시 쓰고 일을 거들어야 했다. 뉴질랜드에 있는 가족에겐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한 달만 잘 버티며 일하면 가족 품으로 갈 수 있다고 다짐했다. 말수가 줄어들었다. 작업 노트 두 권에 이어 세 권째를 마무리했다. 석 달을 채우며 가까스로 집 한 채가 완공되었다. 


나무로 짓는 외부 공사를 마쳤다. 지붕에 아스팔트 싱글까지 다 깔았다. 넓은 데크도 집 앞뒤로 꾸몄다. 내부 마감 작업도 마무리 지었다. 떠나는 날 집주인과 부등 켜 안고 뜨거운 이별을 했다. 주인이 여주 특산품, 찻잔 도자기 세트를 하나씩 들려줬다. 


공항 국제선 출국장을 들어서며 공사 중 받은 패닉과 고통을 떨쳐냈다.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12시간을 오는 동안 많은 걸 생각했다. 혹독한 논산 훈련소를 나와 자대 배치를 받아 떠나는 느낌이었다. 


두 손에는 작업 노트 세 권이 들려있었다. 몸과 마음은 초보 목수 티를 벗어내고 희망찬 설렘 에너지로 가득했다. 몸을 너무 혹사 말고 제대로 챙겨가면서 여백 있는 사이 간(間)을 갖자고 다짐했다. 


뉴질랜드에 돌아오고서 고국 목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을 보완하기로 했다. 오클랜드에 있는 기술 전문대학, 유니텍에 등록했다. 목수를 양성하는 카펜터리 코스 과정이었다. 


뉴질랜드 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 애들과 동급생이 되었다. 영어가 부족해 어려움이 많았다. 젊은이들 도움을 받으며 주머니를 넉넉히 열었다. 반은 이론 수업을 했다. 나머지 반은 집 짓는 실습이었다. 3베드룸 세 채를 짓는 경험을 가졌다. 수업을 마치고 남은 시간은 파트타임 목수 일을 했다. 


백동흠<수필가>

2017년 제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대상 수상

A.K.L. Transport  근무

글 카페: 뉴질랜드 에세이문학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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