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를 뽑아야겠다

잡초를 뽑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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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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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햇볕이 반가웠다. 오랜만에 마당으로 내려섰다. 그동안 마당에는 잡초가 신나게 자라나 있었다.

거의 3개월에 걸쳐 오클랜드한인회장선거관리위원장이라는 완장을 찼었다. 별것 아닌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혼란스러웠다.


선관위원장이라 하면 치우치지 않음을 상징하는 완장이고, 공정하게 하면 축제 같은 선거가 치러질 것이라 믿었다. 선관위원장으로 위촉됐을 때 내가 위촉자에게 한 약속은 중립과 공정과 원칙이었다. 


비록 고국의 작은 동네 같은 공동체의 선거이지만 바르게 하자는 의지로 “당신의 깨끗한 한 표가 깨끗한 교민사회를 만듭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공정하게 하자는 의미에서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서 지극히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유불리를 따지면서 나를 공격했다.


바름과 깨끗함으로 공동체의 존경받는 참 어른의 표상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 영혼 없는 노인들’의 일탈을 경계했다. 금품제공, 향응 제공을 경계했다. 


나도 70 중반의 노인으로서 평소 항간의 영혼 없는 노인들에 대한 ‘밥 소문’에 부끄러움을 느꼈었다. ‘밥 한 그릇에 영혼을 팔지 마세요’라는 다소 과격한 표현으로 깨끗한 선거를 강조했다. 일부의 일탈을 경계하려고 한 말이었다. 의도와 달리 노인들을 폄훼했다며 소란스러웠다. 


후배가 ‘선관위원장 일 하려면 개인 돈을 사용해야할 때도 있다’면서 얼마간의 용돈을 억지로 넣어주고 갔다. 입 꾹 다물고 나 혼자 써도 되는 돈이었다. 하지만 후배의 마음 씀이 감사해, 선관위원들의 사기를 북돋고 싶어, 깨끗한 선거를 위해 애쓰는 선관위원들 식사나 하라고 어떤 분이 ‘거금’을 놓고 갔다고 발표했다.


의심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무리들이 ‘거금’의 정체를 밝히라고 요란했다. 따뜻한 마음으로 용돈을 넣어준 후배에게 미안했다.

나는 완장을 차고 나서 음험하게 웅크린 집단을 보았다. 뭔가를 노리며 꿈틀대는 음습한 무리들을 보았다. 한인회장자리가 한 나라의 대통령 자리나 된 듯 허세에 찌든 몽유병자 같은 인간도 보았다. 


좁은 이민사회에서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제 편이 아니라고 짐작되면 적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어떻게 해서든 짓밟으려고 아우성치는 것이 삶의 일상이 되어버린 슬픈 무리들을 보았다. 어쭙잖게 고국의 구토 나는 정치판을 답습하려는 소영웅주의에 빠져있는 수준 낮은 인간들을 보았다. 건들거리며 욕설과 폭력적인 언사를 남발하는 뒷골목 건달 같은 선거판 인간쓰레기들도 나는 보았다.


순수한 교민 언론 웹사이트의 ‘알고 싶어요’ ‘자유게시판’을 악용해 나눔과 배려보다 독식과 배제를 부추기고 모략과 증오를 내뱉으며 교민사회의 분열을 부추기는 더러운 무리들을 보았다. 


그런 무리들에 부화뇌동해 주먹을 흔들며 어른 행세하는 어이없는 인간도 보았다. 벌써 사라져야 할 망국병인 지역색을 부추기고 편 가르며 희희낙락하는 한심스러운 족속도 보았다.


좁은 교민공동체의 한인회장선거가 흡사 고국의 역겨운 정치판을 흉내 내는 권력 쟁취 투쟁장 같았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충실한 삶을 살며 하루하루를 올바르게 살아가는 대다수의 교민들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교민들의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인 한인회장선거에는 관심도 없었다.


짙은 후회와 모르면 좋을 것들을 알아버린 씁쓸함을 나는 아직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하듯, 깨끗한 선거를 위해 묵묵히 ‘행동하는 양심’을 실행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중상모략과 선동을 배제하고 “투표로 행동하라”고 꾸짖으며 곧고 바른 삶에 앞장서는 사람다운 사람을 보았다.


그곳에서 무지개처​럼 펼쳐지는 다툼이 아닌 화해를, 결별이 아닌 포옹을, 분노가 아닌 미소를, 비방이 아닌 칭찬을, 폄하가 아닌 격려를, 편견이 아닌 정견을, 반칙이 아닌 원칙을 나는 환영처럼 그렸다.


한인회장선거관리위원장 이라는 완장을 내려놓으면서 우습지만, 그리고 이 좁은 교민사회라는 공동체에 전혀 어울리진 않지만, 정치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라는 화두가 떠오른 것은 왜였을까? 


잡초를 뽑으려고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알았다. 그동안 집의 마당뿐 아니라 내 마음속에도 귀에 담지 말고, 눈에 남기지 말고, 알아도 새기지 말아야 할 잡초가 자라나 있었음을. 


더 무성해지기 전에 마당의 잡초를 뽑아내듯 내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역겨운 잡초도 말끔히 뽑아내야겠다. 깨끗한 마당에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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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_세 손녀 할아버지(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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