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보물이라곤 없는 데, 오직 청백만이 보물이다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 보백당 김계행

우리 집에 보물이라곤 없는 데, 오직 청백만이 보물이다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 보백당 김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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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의 책따라 생각따라(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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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정원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일 것이다. 유럽의 각 나라마다 왕궁의 후원은 특색이 있고 아주 아름답다. 


우리나라 역시 최고의 정원을 꼽으라면 당연히 창덕궁 후원(後苑)이다. 1904년 이후에는 비원(秘苑)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적 제12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김종길은 인문여행가이다. 저서로는 <남도 여행법>, <지리산 암자 기행> 등이 있다. 문화재청이 발간하는 <월간 문화재 사랑>에 기고 했으며, EBS의 <한국 기행>에 출연 및 자문을 했다. 인터넷에서는 필명 ‘김천령’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채소밭이 정원의 시작이라고 한다. 정원은 실용 공간이자 생산 공간이었다.


정원은 자연과 인공이 결합된 예술의 극치로 ‘열락 정원(悅樂 庭園: Pleasure garden)’이었다.


한자 원(園)을 보면 큰 입구(口)자 안에 흙 토(土)와 작은 입 구(口)와 옷 의(衣)자로 구성되어 있다. 큰 입구는 울타리, 즉 담장을 의미하며 서구의 ‘gan’과 같다. 


작은 구는 연못을 의미하고, 옷 의는 여러 식물을 의미한다. 영어 garden은 ‘울타리가 쳐진 땅’을 뜻하며 독일어 ‘garten’에서 파생되었다. 헤브라이어 ‘gan’과 ‘oden(eden)’의 합성어이다. 


정원(庭園)이라는 단어는 19세기 일본 용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원림(園林)이라 했는데 이 역시 중국에서 온 말이다. 


우리 옛 문헌에서는 가원(家園), 임원(林園), 구원(丘園), 정원(庭園), 화원(花園), 원(園), 원(苑) 등이 보인다. 가장 많은 단어는 원림이고, 다음이 정원이다.


다산 정약용은 진기한 과일나무를 심은 곳은 원(園)이라 하고, 맛 좋은 채소를 심은 곳은 포(圃)라고 했다.


일본의 정원은 첫눈에 반하나 금세 질리게 되고, 한국 정원은 처음에는 서먹하나 점점 은은한 매력에 빠져들게 되고, 중국의 정원은 첫인상은 서글서글한데 왠지 마음 두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중국 정원은 인공으로 자연을 만들고, 일본은 집안으로 자연을 끌어들이고, 한국은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한국의 정원은 자연과의 조화를 넘어 자연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자연을 더 자연스럽게 한다.


‘한국의 정원은 원래 지닌 아름다움인 자재미(自在美)를 볼 수 있다. 한국인들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자재심(自在心)이 있다.’라고 일본의 건축가 요시무라 준조가 창덕궁을 보고 남긴 말이다.


중국의 원림은 설치된 유랑(遊廊) 등의 교묘한 장치를 통해 넌지시 암시하고 경치가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 일본 정원은 ‘순로(順路)’라는 것을 설정하여 감상 경로를 둔다. 


한국의 정원은 그러한 장치와 순로 없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다양한 위치와 시점을 보도록 되어 있다. 일본 정원은 정적으로 관조하고, 중국 정원은 동적으로 관람하고, 한국 정원은 관조와 관람의 정중동(靜中動)을 함께 한다. 


미음완보(微吟緩步) - 풍경을 읽는 느긋한 마음은 느린 걸음에서 시작된다. 느릿하게 걸으면서 읊조리는 것에서 정원 관람은 시작된다.


우리나라 정원 문화의 특징으로는 화계(花階: 계단식 화단), 방지원도(方池圓島: 네모난 연못에 둥근 섬), 자연 계류를 이용한 수경 기법(水景技法), 차경기법(借景技法: 주위 풍경을 자연스럽게 정원의 한 구성요소로 끌어들이는 기법) 등이 있다. 


연못은 땅을 파서 물을 채우는 지(池)와 둑을 쌓아서 물을 가두는 당(塘)으로 구분된다. 연못은 물을 저장하는 기능을 넘어 여러 식물과 물고기를 기를 수 있는 생태 연못이 되어 급기야 인간의 마음까지 반영하는 공간이다.


<삼국사기> 제46권 ‘최치원’조에 별서 정원을 최초로 경영한 사람은 통일신라의 최치원으로 알려졌다. 그 당시 신라 상류층은 봄에는 동야택(東野宅), 여름에는 곡양택(谷良宅), 가을에는 구지택(仇知宅), 겨울에는 가이택(加伊宅)이라 하여 사절유택(四節遊宅)이라는 별서 주택을 따로 마련해 거주했다.


조선 3대 민간 정원은 정영방의 영양 서석지(瑞石池), 양산보의 소쇄원(瀟灑園), 윤선도의 완도 보길도의 부용동(芙蓉洞) 이다.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으로, 남북조시대 공치규가 지식인들의 이중적인 위선을 풍자한 <북산이문>에 나오는 말이다. 


양산보는 그의 별서를 더러운 세상을 피하고 말고 깨끗한 이상적인 공간으로 만들고자 소쇄라고 이름 지었다. 


윤선도는 부용동을 위해 모든 재산을 투자했다. 그는 <금쇄동기>에서 ‘천석(泉石: 정원을 만드는 것)은 역시 마음속의 일 일뿐만 아니라 재정이 있어야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마루 밑으로 물이 흐르는 독특한 정원인 우암(尤庵) 송시열(1607-89)의 남간정사(南澗精舍)는 말 그대로 정사이다. 정사는 인도 불교에서 수행자들이 거처하는 비하라(Vihara)에서 유래했다. 


정련행자의 옥사(屋舍)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이후 성리학이 발전하면서 유학자들이 정신을 수양하거나 학문을 가르치는 심산유곡에 지은 건물을 뜻했다. 


즉 선비들의 생활공간인 정사는 학문을 통한 수양을 의미하는 ‘장수(藏修)’와 즐기면서 휴식을 하는 ‘유식(遊息)’의 공간이었다. 


정사는 독서를 위한 방인 재(齋)와 손님을 맞이하고 강학을 하는 마루 헌(軒)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澗)은 ‘계곡 시내 간’이다. 


그는 어록에서 ‘누워서 창밖의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 정(靜) 가운데 동(動)이 들어 있는 뜻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명나라 도윤은 ‘사람들은 가슴속에 스스로 한 폭의 골짜기(丘隆)를 갖추고 있어야 바야흐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한다.’고 했다. 


정원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그림 그리고 돈을 들여 수십 년에 걸쳐 완성되는 것이다.


김영안

한국서예협회장, 전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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