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디하고 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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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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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는 우리 가족이다. 흰색 털을 가진 내 팔뚝만 한 자그마한 반려견이다.

녀석은 수캐다.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디섹스 수술을 받아 장가도 못 갔다. 마누라도 자식도 없다. 마누라 비위 맞추느라 눈치 볼 일이 없고 다툴 일도 없다. 


자식새끼들 먹여 살리자고 마른 바람이 슬픈 벌판을 헤맬 필요도 없고, 먹이를 찾아 허공을 맴돌며 두 눈 부릅뜨고 날개를 퍼덕이며 지친 육신을 힘겨워할 이유도 없다. 


대체 나는 무엇인가라면서 자아(自我)니 자존이니 중얼거리며 어쭙잖은 철학자가 되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턱 받치고 머리 싸맬 이유도 없다. 그저 먹고 자고 싸고 놀면 된다. 상팔자 견생(犬生)이다.


테디는 열세 살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산수(傘壽)는 넘었고 졸수(卒壽)에 가깝다. 나보다 많이 늙었다. 이 나이쯤 되다 보니 녀석하고 나하고 동무가 되어 수시로 걷기운동을 한다. 


인터넷이고 어디고 사방에서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서는 뭘 어떻게 무엇을 먹고 뭘 어찌해야 한다고 요란법석이다. 그중에 하나가 걷는 것이라는 걸 귀가 아프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 살기에도 버겁고 먹는 것 조차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오래 살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건 많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속물인 나도 오래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걷는다.


걷기에 열심인 사람들이 나뿐만이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동네 근처 사람들 남녀노소가 틈만 나면 걷는다. 그들도 대다수가 나처럼 반려견과 함께다. 


하긴 그래서 반려견이라고 하는걸 거다. 어쩌면 주책없이 오래 사는 것이 골치 아픈 일일지 모르지만 하여튼 열심히들 걷는다.


나는 테디랑 걸으면서 아직 이렇게 건강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걸으면서는 이만큼 살았으니 오래 사는 것보다 사는 동안 침대 위에서 끙끙대는 일이 없기 만을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과연 열심히 걷는 것만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결일까?


어느 건강전문박사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건강을 유지하면서 장수하려면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최고의 건강 비결이라고 주장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무리 걸어봐야 말짱 헛일이라는 거다. 하긴 스트레스를 받으면 걷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기나 하겠는가. 마음이 편치 않으면 만사가 귀찮고 짜증스러운 거다.


테디는 내가 데크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면 내 곁에 앉아 해바라기를 했다. 마당을 돌아다니면서 참새를 쫓기도 하고 잔디밭에서 뒹굴거리며 평안했다. 


그러던 녀석이 어느 날부터 제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거의 온종일 턱을 받치고 엎드려만 있다. 산책할 때만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십수 년을 우리 가족 사랑을 독차지한 녀석에게 변화가 일어난 거다. ‘잠봉’이가 우리 가족에 합류하면서부터다. 


잠봉이는 테디의 세배는 된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잠봉이를 수의사가 된 큰손녀가 가엾다고 데려와 우리 가족 삼은 거다.

잠봉이는 테디와 다르게 덩치가 커서 듬직하다고 우리 가족의 환대를 받았다. 


잠봉이는 집에 오자마자 거리낄 것 없이 온 마당을 휘젓고 다녔다. 거실 소파도 녀석이 차지했다. 쪼끄마한 테디쯤은 안중에도 없다. 나와 테디가 해바라기하던 데크 소파도 독차지해 버렸다.


잠봉이가 집에 들어온 이후 테디의 살아가는 환경에 변화가 온 거다. 테디는 잠봉이가 보이지 않아야 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당에 나가 꾹꾹 참았던 용변을 본다. 


테디는 변화를 인정하지 못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하다. 우리 가족은 녀석을 변함없이 사랑하는데도 녀석은 혼자 독차지하던 가족의 사랑도 빼앗긴 기분일 거다.


바보 같은 녀석이다. 왜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다. 살아있는 것들은 살면서 많은 일들을 겪는 거다. 함께 어울려 호형호제하면서 살아가면 사는 게 즐거울 텐데. 


사람 사는 세상도 그렇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요즘 세상은 민주주의 기본 이념이 개인주의인 것으로 잘못 해석되고 장유유서(長幼有序)가 “나이만 먹으면 다냐”고 폄하되는 시대다. 


변화하는 현실이다.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만 쌓이는 거다. 변화를 받아들이려면 굳어진 에고이즘에서 스스로 벗어나 그렇게 저렇게 어울려 살 줄 알아야 한다.


테디나 나나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걷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 아마 녀석도 곧 변화를 받아들일 거다. 그래야 남은 세월이 평온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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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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