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스처가 사람보다 더 정교하다: 밀란 쿤테라

제스처가 사람보다 더 정교하다: 밀란 쿤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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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의 책따라 생각따라(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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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몸짓언어로부터 발달되었다고 한다. 몸짓언어는 사람과의 대화에는 쓸모가 있지만 신과의 대화는 어렵다. 말의 발달과정에 신성(神性)의 매개가 필요했다. 그래서 문자가 필요했다.


고대 문명의 문자는 모두 상형문자이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한자(漢字)뿐이다. 상형(象形)은 기호(記號)와 대상(對象)의 중간에 위치한 유사물(類似物)이다. 


고대 문자는 모두 신성문자(神聖文字)이고, 음성문자에서 문자 언어로 승화하려는 강력한 문화적 의지가 있었다. 


이집트의 문자 탄생은 약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대략 3,500년 정도 존재하다가 약 1500년 전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 문자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촉발한 살인자는 기독교였다. 


기독교는 이교도의 모든 것을 소멸시키려 했다. 로마 제국의 강력한 힘에 의거해 이집트 문지를 폐지하고 24개의 그리스 자모에 6개의 이집트 자모를 더해 콥트(Copt) 문자를 만들었다. 


그 후 11세기 이슬람 역시 기독교와 같은 정책을 펼침으로써 콥트어와 문자가 모두 사라졌다. 고대 이집트 문자에는 세 가지 표기 방법이 공존했다.


가장 번거로운 것은 그리스어로 Hieroglyphic로 칭하는 서체로 기념비나 무덤의 벽면에 사용되었다. 그 의미는 ‘신성함’이다. 이것은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쓰기 힘든 원형 서체로서, 일상적인 정보전달이 아니라 경건함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전시적 목적으로 사용됐다.

다음은 그리스어로 Hieratic이라는 서체로 ‘신관(神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주로 파피루스 위에 종교적인 제문이나 찬미 시를 적을 때 사용했다. 


마지막 서체는 Demotic으로 민간인들이 사용했고 비교적 늦은 시기에 만들어졌고 엉성했다.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는 ‘일본 현대 최후의 석학’으로 불린 한문학자이다.


 2004년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06년 96세로 서거했다. 그는 1900년 동안 한자 자원연구의 성전이라고 일컬어졌던 허신의 <설문해자>의 오류를 밝혀내고, ‘시라카와 문자학’을 세웠다. 


저서로는 <중국의 신화>, <중국의 고대문화>, <중국 고대의 민속>, <공자전> 등이 있고, <갑골문의 세계>, <금문의 세계>와 <한자의 세계>의 문자 세계 3부작과 함께 <자통(子統)>, <자훈(字訓)>, 자통(子通)>의 자전 3부작이 있다.


중국의 한자를 만든 창힐(倉頡)은 황제(黃帝)의 사관 또는 고대의 제왕이라고도 한다. 그는 머리에 눈이 네 개 있고 신명(神明)과 통하며, 위로는 괴성(魁星)의 둥글고 굽은 형세를 관찰하고 아래로는 거북의 등 껍데기 모양과 새 발자국의 형상을 살펴,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 글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전한 시대의 <淮南子>의 ‘본경훈’에 “옛날에 창힐이 문자를 만드니 하늘은 곡식을 떨어뜨리고, 귀신은 밤에 울었다…. 지능은 점점 많아지고, 덕은 점점 엷어진다”고 했다. 


이는 인간의 지혜에 의한 문자 제작은 모두 태고의 순박함을 잃어버리는 길이라고 전제한 것이고, 노장(老莊)사상에는 하늘이 곡식을 떨어뜨리는 것은 이변을 의미하고, 귀신이 밤에 울었다는 것은 인간의 지혜가 신의 능력을 침범하는 것을 한탄한 것이다. 문자의 발명은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개척하여 귀신의 시대를 끝냈다.


한자의 초기 형태인 갑골문(甲骨文)은 청 광서제 25년(1899년) 국자감 쾌주 왕의영이 말라리아에 걸린 친척을 치료하기 위해 용골(龍骨)을 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실제 용의 뼈가 아닌 흙 속에 묻혀 있던 동물들의 뼈였다. 


거북 껍질이나 동물의 뼈에 점복의 기록을 새긴 중요한 사료인 것이다. 출토된 거북의 껍질과 짐승의 뼈는 10만 점이 넘었고, 문자의 수는 4,000여 개에 달했다.


허신(許愼, 58년 ~147년 )은 서기 100년부터 시작하여 121년까지 약 22년에 걸쳐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완성하였다. 상형 또는 지사로 풀이되는 문자는 약 755자이고, 여기에 회의로 풀이되는 문자를 더하면 약 1,390자가 된다. 이것이 기본 문자이고 총 문자 수는 9,353자이다.


그 중 인체에 관한 문자는 인(人) 모양이 약 400개, 대(大) 모양이 약 200개, 무릎 꿇는 모양이 약 200개, 여(女) 모양이 약 200개, 又(손)을 포함한 모양이 600개, 止(다리) 모양이 약 250개, 이 밖에 子, 目, 自, 耳 등을 합해 250개로 모두 2천개가 넘는다. 이는 기본 문자의 1/4 수준이다.


갑골문에서 시작하여 금문(金文)을 거쳐 전서와 예서, 해서, 행서로 발전하고, 상형(象形)에서 회의(會意), 지사(指事),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 등 육서(六書)라 불리는 다양한 조자(造字) 방법을 통해 정련된 것이 지금의 한자(漢字)이다.


갑골문자의 형성자(形聲字)의 비율은 27.4 %에 그치지만, 진대(秦代)의 소전(小篆) 단계에 이르면 형성자의 비중이 87.39%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중국에서도 소전(小篆)과 예서(隸書)가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사용했던 이유는 진(秦) 나라의 대대적인 정복 행동과 엄격한 법령이 더 강화된 서체를 개발하여 일상적인 문서 작업에 대응할 수요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서(隸書: 노예같이 천한 일을 하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도록 한 글씨)의 유래이자 서체의 이름이 된 것이다.


요즈음 중국 대학생조차도 한자 정자(正字)인 번체자(繁字體)를 읽지 못한다고 한다. 획이 너무 어려워 간단하게 줄인 간체자(簡體字)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나라 고전문학을 다시 간체자를 번역해서 읽고 있다. 


하지만 한자가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동남아시아 문화권에 스며든 영향은 매우 지대하다. 한때 우리나라 문교 당국이 한글 전용을 주장해 한자를 모르는 세대가 많다. 


각종 공문서, 법률 용어 그리고 상호(商號), 간판까지 일상생활에서 한자어를 모르면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매우 많다. 


중국어를 배우라는 말은 아니다. 일상생활을 위하여 한자를 최소한 ‘상용(常用) 1,300자’ 수준은 배워야 한다.


배워서 남주나!


김영안

한국서예협회장, 전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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