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희망이 없이 있을 수 없고, 희망은 두려움 없이 있을 수 없다: 스피노자

두려움은 희망이 없이 있을 수 없고, 희망은 두려움 없이 있을 수 없다: 스피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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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의 책따라 생각따라(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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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국 사시간에 배운 것 중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있다.

삼국사기는 고려 때 김 부식이 지은 고대 삼국시대의 정사(正史)이고, 삼국유사는 일연 스님이 저술한 야사(野史)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쓸데없는 것’을 모은 것이다. 유(遺)는 ‘버리다, 유기하다’라는 뜻으로 ‘버려진 것들을 모은 역사’이다. 


 KBS <역사저널 그날>의 패널로 유명한 최태성은 성균관 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해 역사 교사가 되었다. 2017년 교단을 떠나 온라인 강사 사이트 ‘모두의 별 한국사’와 유튜브 ‘최태성 1 TV’ 최태성 2TV’를 개설해 방송활동도 하고 있다. 


EBS 역사 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자문 위원으로 활동했다. KBS <역사저널 그날>, tvN <수업을 바꿔라> 등에 출연해 역사 공부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역사의 정사(正史) 뒤 이야기는 바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고구려 장수왕은 98세까지 살아 명실공히 장수한 왕이다. 그가 장수하면서 아버지 광개토왕이 넓힌 영토를 전쟁 없이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탁월한 조공(朝貢) 외교술 덕분이었다. 중국 접경의 북위, 북연 등 여러 나라들과 밀고 당기는 외교술로 큰 전쟁 없이 광활한 영토를 지켜냈다.


나당연합(羅唐聯合)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끈 무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신라 문무왕 때 ‘구진천’은 무기를 만드는 기술자인데, ‘쇠뇌’라는 무기를 만들었다. 


일반 화살은 100보, 최고로 200보 정도밖에 나가지 않지만, 쇠뇌는 석궁처럼 방아쇠 장치를 달아서 큰 화살은 멀리 쏘는 무기로, 1,000보(步) 약 700m를 날아갔다고 한다. 신라가 쇠뇌 덕에 전쟁에 승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당나라 고종은 고구려가 망한 668년 다음 해 구진천을 내노라고 해 데려갔다. 하지만 그는 쇠뇌를 만드는데 필요한 나무 등 이 핑계 저 핑계로 대면서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신라인의 자존심을 가지고 절대로 당나라에 무기 제조 비법을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세계 최초인 고려의 금속활자로 찍은 <직지심체요절>은 구텐베르크보다 78년이 앞섰으나 대량 인쇄가 아닌 귀족들을 위한 활자라서 크게 보급되지 못했다. 


반면에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조폐국의 금화나 은화에 문양을 새기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고, 중국의 종이를 사용했고, 포도주나 올리브기름을 짜는 ‘프레스(press)’ 기술의 조합으로 대량 인쇄가 가능했다. 


그가 가장 먼저 인쇄한 것이 <구텐베르크 42행 성서(聖書)>였다. 그의 인쇄술 덕분에 마틴 루터가 일반인에게 성서를 보급하여 종교개혁을 가능케 했다.


최초라고 해서 무조건 대박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관건인 것이다.

고려가 몽골과 전쟁을 40년 동안 한 사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몽골의 쿠빌라이 황제와 ‘세조구제(世祖舊制)’를 맺어 나라의 자존심을 지킨 고려 원종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그의 절묘한 판단이 고려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냈다. 몽골 황제 몽케가 죽은 후 권력다툼 속에 과감히 쿠빌라이 편으로 결정하였기에 황제 부마국으로 국가를 보존할 수 있었다. 


쿠빌라이가 죽은 후에도 몽골의 무리한 요구를 ‘세조구제’를 무기로 거절할 수가 있었다. 지도자의 올바른 선택이 국가를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 요염한 민화 속의 여주인공 어우동을 기생으로 알고 있으나, 승문원 지사 박 윤창의 딸로 왕족 이동과 결혼한 사대부 집 규수이다.


 남편이 외도를 해 소박(이혼)당한 후 17명의 남자와 간통을 했다. <성종실록>에 의하면 병조판서, 대사헌, 왕족, 노비까지 위아래 구분이 없이 사랑을 나눴다. 성종은 간통죄보다 강력한 강상죄로 교수형에 처했다.


근세에 들어서서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부자(富者)인 경주 최 부자 집은 200년 동안 12대에 걸쳐 만석꾼의 지위를 유지한 집안이다. 


집 현판에 ‘대우당(大愚堂)’–큰 바보가 사는 집이라고 쓰여 있고, 다른 현판에는 ‘둔차(鈍次)’, 즉 ‘재주가 으뜸가지 못하고 버금감’이라고 쓰여 있다. 


가훈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했다. 부자지만 겸손하며 못 사는 이들에게 베푼 은덕으로 19세기 민란이 일어났을 때도 주민들이 앞다투어 최 부자 집을 보호했다고 한다.


역사는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라고 말하지만,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다. 역사란 삶이라는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설서다. 역사는 과거 기록이지만 우리에게 미래의 꿈을 심어준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어야 한다. 그저 꿈만 꾸지만 말고 반드시 꿈을 이루어야 한다.


 김영안

한국서예협회장, 전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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