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은 말없이 살라 하네

청산은 말없이 살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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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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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주 월 수 금요일 아침이면 테니스코트로 나간다. 

코트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사람이 코트관리자다. 나이는 나보다 서너 살 윗길일 것 같은 걸음걸이가 다소 불편한 백인 할배다. 


바람이 세게 불거나, 비가 내리거나, 몸이 불편할 때를 제외하곤 거의 빠지지 않고 드나드는 인연으로 나와 그는 친숙하다.

그와 마주치면 당연히 영어로 인사를 나눈다. 주로 “별일 없냐? 날씨 좋다. 바람이 잔잔하다. 좋은 하루 되라” 같은 의례적이고 간단한 말들이다. 


그런데 어떤 날은 그의 입에서 빠른 말들이 쉬지 않고 길게 쏟아진다. 또박또박 짧게 말을 해야 그나마 알아듣기가 수월한데 말 달리기를 하면 나의 영어 이해력은 한계점에 다다른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시나브로 약해지는 내 청력은 그의 빠른 말을 더욱더 이해하기 힘들게 한다. 결국 파든(Pardon)을 되풀이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손짓, 눈짓에 눈치까지 동원해 대충 알아듣는다. 그렇지만 그가 나의 영어 구사 능력을 낮게 평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도 언짢다.


사실 나의 영어 실력은 그저 그런 수준이다. 하지만 잘 들리기만 하면 그럭저럭 대충 소통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 쇼핑몰, 은행, 식당, 워크 엔 인컴(Work & Income) 등등 먹고 살아가는 일 정도는 혼자서도 처리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청력이 약해지면서 영어 듣기 이해도가 점점 더 떨어진다. 


그렇지만 영어 이해 능력이 떨어진다 해도 경제활동을 접은 결과로 현지인들과 교류가 축소된 내 삶에서는 사는데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진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상용하는 우리말이다. 잘 들리질 않으니 이해도가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오해도 생긴다. 상대가 하는 말을 되물을 때가 한 번이면 개의치 않지만, 두세 번 되풀이되면 상대의 얼굴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바뀌면서 “~라고 했잖아요!”라는 말투로 바뀐다. 당연히 목소리도 높아진다.


그럴 때면 무안하고, 짜증나고,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서 무안하고 짜증나고 싶지 않아서 되도록이면 되묻고 싶은 걸 참는다. 그러다 보니 혼자 지레짐작하는 일이 늘어나고 곧잘 우울해진다. 


황혼에 기우는 인생이 세월이 서럽다. 여럿이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정확하게 들리질 않으면 말참견을 삼가 한다. 본의 아니게 나는 말 많이 하지 않는 품위 있는 늙은이가 된다.


어쨌건 말참견을 하지 않으니 언쟁에 끼어들지 않고 쓸데없는 헛소리에 휘둘리지 않는다. 덕분에 차라리 편안하다는 느낌도 든다. 


세상 사람들 다툼의 원인은 거의 말 때문이라고 한다면 틀린 지적은 아닐 거다.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근본 이유도 잘났다는 인간들이 마구 지껄여 대는 말 때문이다. 교민사회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도 여기저기 끼어들어 잘난 체하고 싶어 하는 말 많은 인간들 때문이다.


어제까지 이웃사촌이네 뭐 네 하면서 다정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등을 돌리고 서로를 헐뜯기 시작한다. 그렇게 된 연유도 따져보면 십 중 팔 구는 지나친 말 때문이다. 


불화와 다툼을 만드는 원인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말 때문인 경우가 잦다. 세상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사람은 말이 별로 없는, 반드시 할 말만 하는 사람이다.


존경받는 어른이 되는 몇 가지 수칙이란 게 있다.

돈지갑 열고 돈내기에 열중하라거나, 항상 웃으라거나, 상대의 사생활을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거나, 고집을 내려놓고 양보하라거나, 세월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들인데 마지막은 입을 적게 열고 듣기에 열중하라는 거다. 나이 들었다고 떠벌리지 말라는 거다. 


사람 모이는 곳에는 어디에나 말 많은 사람이 반드시 있다. 그런 사람은 말다툼에 양보를 모르고 타인의 말을 경청할 줄도 모른다. 말이 많다는 것은 말을 잘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 속에 촌철살인(寸鐵殺人)이 들어있다는 거다.


세상에 말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은 억수로 말이 많으면서 말 많은 사람은 싫다고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 아니든가. 


어쨌거나 청력이 약해져 잘 알아듣지 못한 탓에 말수가 줄어든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덧없는 세월이 서럽기는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청력이 약해지는 것은 쓸데없는 작은 소리는 듣지 말고 필요한 큰소리만 들으라는 하늘의 뜻인 것 같기도 하다. 


청산은 날 더러 나이 퍼먹을 만큼 먹었으니 말 많이 하지 말고, 말 잘하라고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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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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