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그리고 포옹

만남 그리고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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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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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말한다. 사람과의 만남은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그 첫인상이 앞으로의 인간관계를 설정하는 바로미터라고. 과연 그럴까?


첫인상이 순수하고 바르게 느껴지던 사람이 시간이 흐르면서 음흉하고 부정직하게 처신하고 야누스의 얼굴처럼 이중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흔하다. 


반면에 세월이 가도 순전한 첫인상 그대로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첫인상이 거세던 사람이 시간이 갈수록 진솔한 인간미를 지닌 사람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짧은 만남으로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긴 만남 후에 판단하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사람은 타인의 진솔한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고도 한다. 하여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없으며 또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느낌을 판단으로 착각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사람은 오랜 만남이 있은 후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어제 만나고 오늘 동무하자는 사람에게 선뜻 마음을 열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관계는 술자리에서 술 취해서 마음에도 없는 비릿한 말로 서로를 허공에 띄우는 가식적인 동무일 뿐인 거다. 그런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사람과의 만남을 인생을 결정하는 항로라고 했든가?


부끄럽게도 나는 그렇게 사람을 만나서 쉽게 마음을 연 경험이 있다. 결국에는 불쾌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그다지 반겨 하지도 즐겨하지도 않는다.  


그런 내가 70이 넘은 어느 날 우연히 호주 시드니에 사는 ‘그’를 만났다. 얼굴을 마주한 것이 아니라 ‘글’로서 만났다. 그의 글에서 느낀 그의 첫인상은 따뜻함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즐겨 쓴다. 반대로 나는 비판하고 나무라는 이야기를 자주 쓴다. 그와 나의 글 쓰는 성향은 어떻게 보면 극과 극이다. 그런데도 그와 나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한다. 그렇게 3년여라는 긴 시간을 만남도 없이 서로의 글을 보면서 마음을 엮어갔다.


‘코로나19’는 오랜 시간 세상을 단절시키고, 만남을 단절시키고, 대화를 단절시키고, 사랑을 단절시키고, 우정을 단절시키고, 인간 역사를 ‘콜레라시대’로 후퇴시켰다. 


하지만 시간은 만남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없었다.


호주 시드니는 답답했던 모양이다. 숨통을 틔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복잡한 단서를 달긴 했지만 가슴을 조금 열었다. 그 틈새를 엿보고 나는 짚신을 챙겼다. 벌써 몇 년째 얼굴을 못 본 그립고 보고 싶은 딸 내외와, 글로만 대화했던 그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서였다.


그는 한국에서 ‘여원’ ‘신부’ ‘직장인’이라는 잡지사의 기자로 편집부장으로 일했다. 2005년 시드니에서 발행되는 주간잡지 <코리아타운>을 인수해 현재까지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는 남의 글을 베끼지 않는 정통 언론인이다. 그는 사사로운 일상을 글로 쓰고 아내를 사랑하고 아들딸 내외를 아끼고 손자 손녀에 흠뻑 빠져 정신 못 차리는 보통 사람이다. 


그는 낚시를 좋아하고 등산을 즐기고 여행에 가슴 떨려 하는 감성 짙은 할배다. 기회만 되면 지인들과 어울려 아내 손을 잡고 사방팔방 휘돌아다니는 청춘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그의 아내는 지금도 그를 ‘자기야’라 부른다. 그들의 청춘은 머물러 있다.


시드니 그의 집 정원은 잘 다듬어진 초록빛 양탄자였다. 그의 손자 손녀가 뛰어노는 요람이었다. 석양빛 어스름한 저녁나절인데 손녀 에밀리는 양팔을 벌리고 정원을 맴돌며 하늘을 우러러 춤추며 놀았다. 


데크 위로 반짝이는 밤하늘 초저녁 별들을 올려다보면서 내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해먹 위에서 흔들리는 것처럼 평화로웠다. 


그는 식탁에서 손수 삼겹살을 굽고, 둘러앉은 사람들의 접시에 구운 삼겹살을 가위로 잘라 놓아주고, 빈 술잔을 채워줬다. 


그는 짐짓 근엄을 가장하는 세간의 발행인이 아니라 차라리 가족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던지는 나무꾼이었다. 글에서 느낀 첫인상 그대로 그는 따뜻했다.


그와 나의 만남은 나이 어린 오랜 친구 같았다. 서로에 대해 멋쩍은 허공 띄우기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 대화하고 천천히 술 마셨다. 


빙그레 웃고 고개 끄덕이며 가슴을 열었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덧칠 없는 수줍음과 담백함을 보았다.


헤어짐의 어둠 속에서 그와 나는 코로나시국의 인사인 주먹이나 팔꿈치를 맞대는 대신 망설임 없이 따뜻하게 포옹했다. 포옹은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신뢰의 나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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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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