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팔리게 살지 맙시다

쪽팔리게 살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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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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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박사 방송인 김지윤이 ‘청렴’이란 제목으로 강연한 내용 중 일부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가 시험감독이 없는 시험을 치르는 학교였어요. 학생들끼리 시험을 치르는 거예요.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시험지나 답안지 주고 나가시는 거예요. 그리고 끝나기 몇 분 전쯤 들어오셔서 답안지 거둬서 나가시고. 그게 굉장히 자연스러웠어요.


근데 사실 그때도 대학입시 경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학생들 간에 단 한 번도 부정행위가 없었어요. 


그때 친구랑 나눴던 대화가 생각나요. “야, 쪽팔리게 컨닝을 하냐?” 그러니까 점수 한 개쯤 더 받겠다고 컨닝을 해서 스스로 부끄럽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이었던 거죠. 저는 청렴이라는 것이 사실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께서 시험지랑 답안지 나눠주고 나가시기 전에 한마디를 해요. “공부 열심히 했지? 최선을 다해, 야, 하늘이 지켜보고 있다 잘해라” 뭐 이런 얘기.


근데 사람이 양면성이 있잖아요. 우리가 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살고 싶다는 천사의 목소리가 들리면, 다른 쪽에서는 “야, 뭐 대충대충 해~ 이익도 챙겨가면서 살아야지”하는 악마의 목소리가 있고, 둘이서 막 접전을 벌일 때 선생님이 한마디 하는 거죠. “잘해라, 하늘이 지켜보고 있다” 그러면 이쪽에 무게가 확 실리면서 아 나는 양심적으로 윤리적으로 잘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행동경제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듀크 대학교의 에리얼리 교수가 이런 도덕적 각성의 메시지가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가 실험을 했어요.


‘Moral Reminder’라고 해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사람들한테 들려줬더니 그 메시지를 들은 사람은 듣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윤리적인 행동을 하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야 점수 좀 더 받으려고 컨닝 같은 걸 하냐? 쪽팔리게” 했던 자존심, 그리고 의도치 않게 그냥 던졌던 선생님의 “잘해라”라는 도덕적 각성의 메시지, 요게 딱 합쳐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그래서 단 한 번도 학생들 사이의 부정행위가 없었던 거죠.” 


2022년 대한민국은 보수정당이 권력을 잡았다. 새 정부는 고위공직자 명단을 발표했다. 공정 정의 상식을 앞세운 새 정부였기에 강직하고 청렴한 고위공직자를 기대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의 내용은 예전과 흡사했다.


부동산투기 편법 증여 아빠찬스 이해충돌 등등은 공정 정의와는 담쌓은 인간 본성이 의심되는 고위공직자들의 고정 레퍼토리다. 대답도 한결같다. 하나같이 “몰랐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땐 그게 관행이었다”다. 


맹탕청문회 거쳐 고위공직자가 된 그들은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돌아다닌다. 놀라운 건 이런 인간들을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어디 있냐”고 감싸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어디 있냐고 떠벌리는 사람은 언젠가는 자기도 그런 부정행위를 똑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그걸 “보험성 용서”라고 했다.


우린 너무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한다. 비단 정치하는 인간들만이 아니다. 사회 곳곳에 양심과 윤리의식이 심각하게 결여된 인간들이 너무 많다. 그들의 부도덕성 비윤리성은 아무리 도덕적 각성의 메시지를 들려줘도 우이독경(牛耳讀經)일 뿐이다.


교민사회에도 양심과 도덕을 뭉개고 염치없고 뻔뻔하고 못된 잔머리를 굴리면서 부끄러움을 모르고 쪽팔리게 사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다.


왜 우리 사회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가 되었을까? 우리 사회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바르지 않게 사는 것이 아니라 못사는 것일까? 그래서 부정부패를 저지르고도 부유하게만 살면 성공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바르게 살아 힘들고 어려운 사람은 실패한 사람으로 손가락질받는다는 건가?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무능력을 넘어 민폐가 돼 버렸다고 한다. 그러니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정행위쯤은 가볍게 저지를 수 있고 또 그런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어떤 지혜처럼 돼 버렸다는 거다.


듀크 대학교의 에리얼리 교수는 한 개인이 부정행위를 저지를까 말까 하는 기로에 서 있을 때, 그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사람이 속해 있는 사회가 그 부정행위를 얼마나 용인해 주느냐에 달려있다고 했다고 한다. 즉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는 거다.


청렴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생활밀착형이라고 했다. 쪽팔리게 살지 않는 것, 그것이 청렴이며 자존심이라고 했다. 당신의 자존심은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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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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