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서 행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知而不行只是未知): 왕양명

알고서 행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知而不行只是未知): 왕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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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의 책따라 생각따라(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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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극우 보수의 지도자로 최장수 총리를 지낸 아베 신조(安部晉三) 전 총리가 피살되었다.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이끈 보수 우파 정당인 자민당(自民黨)은 지도자 부재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1955년 체제’라는 용어는 보수 정당들을 합당해 자민당을 만들도록 자금을 지원한 CIA 문서에 처음 나왔다. 아베의 외조부가 자민당 창당에 산파 역할을 했고,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部晉太郞) 역시 최장수 외무장관을 지닌 보수주의자이다.


태가트 머피(Taggart Murphy)는 쓰쿠바 대학교 도쿄 캠퍼스 국제 비즈니스 MBA 프로그램의 국제 정치 경제학 교수로 재임했다. 현대 일본에 관한 여러 저술로 상을 받았고 <뉴 리퍼블릭>, <뉴 레프트 리뷰> 등에 기고하고 있다.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일본이라는 것은 순전히 창작의 산물이다. 세상에 그런 나라는 없고, 일본인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서양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나라이다.


일본이 세계의 변두리에서 외부 침략자의 관심거리가 된 적은 단 한 번, 13세기 쿠빌라이 칸의 침공이었다. 가미카제(神風)라는 기상 덕분에 침공에서 이길 수 있었다. 


마르코 폴로가 동쪽에 황금이 넘쳐나는 나라라고 불렀던 지팡구(Chipangu)에서 일본(Japan)이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의 천황 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세습군주제이다. 일본의 첫 수도는 701년 나라(奈郞)이다. 794년 헤이안교(平安京)으로 옮겼고, 이름을 교토(京都)라고 바꿨다. 


일본어의 가나(仮名)는 하나의 글자가 음소가 아니라 음절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표음문자가 아니라 음절문자이다. 도다이사(東大寺)의 주지승 고보 다이시(774-835)가 발명했다고 한다.


일본의 중세 시대로 알려진 가마쿠라 막부나 무로마치 막부 시대는 문화적으로 찬란히 빛난 시대이다. 일본의 고급문화는 대부분 이 시대에서 비롯되었다. 노(能), 가무극, 화풍과 수묵화, 일본식 정원, 다도(茶道) 등이다.


오다 노부스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히데요시(德川家康), 이 세 명의 출현으로 사무라이 전국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일본의 근대화는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과 함께 시작되었다. 18세기 초 에도는 인구 100만 명의 최대 도시가 되었고, 오사카와 교토는 50만, 30만으로 런던과 파리의 인구와 비슷했다.


19세기 말 유럽을 휩쓸며 서양인을 열광케 한 우키요에(浮世繪: 풍류 세계의 그림)의 절반 이상은 노골적인 춘화였다. 우기요에는 유럽 화단 및 예술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고흐 등 많은 작가들이 일본 그림을 모방하기도 했고, 드비쉬는 우기요에를 보고 교향곡 <바다>를 작곡했으며,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에서는 일본 여성을 등장시켰다.


전후 복구지원과 한국전쟁 특수에 힘입어 일본은 1960년 1인당 소득 2배를 달성하고, 1968년 독일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을 이루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일본은 버블 붕괴가 경제에 미치는 ‘대차대조표 불황’–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는 기업이 성장보다는 부채 상환에 집중해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못 하는 상황’이 되었다. 소위 ‘잃어버린 10년’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을 옭매고 있는 굴레는 안보와 영토 분쟁이다. 2차 대전 패전 후 일본과 식민지였던 타이완 및 한국은 미국의 방위선에 묶여 자국의 안전 보장을 미국에 의존하고, 외교 정책에서도 미국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정식 군대를 가지지 못한 나라에서 보통 국가가 되기 위해 일본은 헌법을 개정해 정식 군대를 가지려고 하고 있다. 신 헌법 개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일본과의 영토 분쟁 대상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이다. 일본은 다케시마(竹島)라고 부르고, 서양인은 리앙쿠르 암초라 부르는 독도 문제는 한일 간의 첨예한 분쟁이다. 중국과의 센카쿠 열도 문제는 1972년 주은래와 다나카 간에 잠정 덮어두기로 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군사기지를 설치하면서 다시 불붙고 있다. 북방 영토는 쿠릴 열도 4개 섬으로 주민이 살고 있다. 러시아와 2개 섬을 나누기로 했지만 쉽게 받아드릴 수가 없다. 이는 3개의 영토 분쟁에서 물러서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게는 현실적으로 오로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어떤 식으로든 상대국과 합의를 하든지, 아니면 미국의 품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후자가 일본에는 선호되지만 길게 보면 더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이 언젠가는 동아시아에서 철수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한국 등과 가까운 우호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미국의 전초기지로 남을 것인가?


일본 미래가 아베가 불러낸 우울하고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힌 국수주의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영안

한국서예협회장, 전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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