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띠

뫼비우스의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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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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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뫼비우스의 띠’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Mobius Strip)는 길고 가는 직사각형 띠의 가운데에서 한쪽의 절반을 비튼 뒤 두 끝을 붙여 만드는 위상공간(位相空間)이다. 이 공간은 한 면 만을 가지며, 띠를 따라서 가운데를 자르더라도 하나의 띠가 된다. 1858년 독일의 수학자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뫼비우스’와 ‘요한 베네딕트 리스팅’이 거의 동시에 독립적으로 이 띠의 성질을 발견했다.”


좀 더 쉽게 풀이하면 평면인 종이를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오려서 그 양 끝을 맞붙이면 안과 겉 양면이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한번 꼬아 양 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한쪽 면만 갖는 곡면이 된다.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는 곧 우리가 갇혔다고 생각하는 세상도 갇히지 않은 곳이며, 억압되어 있다고 느껴 탈출을 시도해도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곳이다. 


작가 조세희는 연작형식으로 발표한 모두 12편의 중, 단편을 모아 1978년 장편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발표했다. 이 12편의 연작소설 중 ‘뫼비우스의 띠’라는 단편이 있다. 소설 속에서 수학교사는 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하고 나왔다. 한 사람은 얼굴이 깨끗했고 다른 한 사람의 얼굴은 검댕이가 묻어 있었다. 누가 얼굴을 씻겠는가?” 학생들은 얼굴에 검댕이가 묻은 사람이 씻는다고 대답한다. 교사는 틀렸다고 한다.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 씻는다는 거다. 


“얼굴이 깨끗한 사람은 얼굴에 검댕이가 묻은 상대방을 보고 자신의 얼굴에도 검댕이가 묻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얼굴을 씻는다. 하지만 얼굴에 검댕이가 묻은 사람은 얼굴이 깨끗한 상대를 보고 자신의 얼굴도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씻지 않는다.”


어느 쪽이 옳은 행동을 한 것인가? 얼굴이 깨끗한 쪽? 아니면 얼굴에 검댕이가 묻어 있는 쪽? 아니다, 둘 다 틀렸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함께 굴뚝 청소를 했다면 둘 다 얼굴에 검댕이가 묻어 있어야 한다.


얘기는 구조적인 사회의 모순과, 인간의 삶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관계를 벗어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징성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작가는 수학교사의 입을 빌어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 소설은 세상 만물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앞과 뒤를 구분할 수 없는, 다시 말해 우리가 사실 혹은 진실인 것처럼 믿는 것이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 따라서 현실에 대한 엄정한 비판적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는 사물의 현상과 본질, 참과 거짓, 흑과 백이 서로 다른 면에 놓일 수만 있는 것이 아니며 서로 동일한 면에서 지배되는 법칙에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저간의 한국 정치를 보면 작가 조세희가 50여년 전에 설파했던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 한다. 대체로 무식하게만 보이는, 새로 권력을 움켜쥔 인간들이 같은 굴뚝에 사는 인간들을 손가락질하면서 니 얼굴에 검댕이가 묻었다고 호통친다. 


지 얼굴의 검댕이는 안 보인다. 무엇이 앞이고 뒤인지, 어느 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카오스의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국민 앞에서 침 튀기며 약속한 혁신과 변화는 뭉개 버리고, 당대표 몰아내려고 꼼수를 부리며 패거리들 권력투쟁으로 이전투구다. 


머잖아 새로운 정파 하나 탄생할 조짐이 보인다. 새로울 것이 1도없는 안과 겉이 모호한 위상공간이다.


좌우간 똑똑하신 대한국민들 패거리 만드는 거 무지 좋아한다. 사람들만 보이면 뭐 하나 만든다. 콧구멍만 한 오클랜드 교민사회에도 한때 어느 모자란 인간들이 무슨 지역당 같은 ‘향우회’ 만든다고 요란법석을 떨었다. 


그렇게 모여 뭘 꿈꾸겠다는 걸까? 지들의 얼굴에 묻어 있는 검댕이를 외면하면서 우린 깨끗하다고 떠들어 봤자 그야말로 개꿈인 거다.


인간의 삶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관계를 벗어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뫼비우스 띠의 진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헛된 인생들의 꼴사납고 한심스러운 추태들이다.


우리의 삶은 뫼비우스의 띠다. 안과 밖도, 겉과 속도, 진심과 거짓도, 깨끗함과 더러움도 반드시 함께 드러나는 곡면이다. 


함께 굴뚝 청소를 했다면 둘 다 검댕이가 묻은 것이지 자신은 깨끗하고 상대는 더럽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참되게 살아야 할 또 다른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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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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