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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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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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눈을 뜨면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있음을 감사하렵니다. 밥과 몇 가지 반찬, 풍성한 식탁은 아니어도 오늘 내가 허기를 달랠 수 있는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음을 감사하렵니다.

누군가 나에게 경우에 맞지 않게 행동할지라도 그 사람으로 인하여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음을 감사하렵니다. 

태양의 따스한 손길을 감사하고 바람의 싱그러운 속삭임을 감사하고 나의 마음을 풀어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음을 또한 감사하렵니다.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났음을 커다란 축복으로 여기고 가느다란 별빛 하나 소소한 빗방울 하나에도 눈물겨운 감동과 환희를 느낄 수 있는 맑은 영혼의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믿고 사랑하는 것이고 나에게 확신을 갖는 일입니다. 가치 있는 인생을 살면서 가치 있는 사랑을 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고 행복이라고 합니다.” - 하루의 행복 中 -  


어제는 종일 바람이 세게 불었다. 키 큰 나무 우듬지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휘청거렸다. 웅웅거리는 바람 소리는 밤이 깊어도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뭐가 서러운 걸까? 남은 세월 어찌 살아야 할지 이런저런 생각에 괜스레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누렇게 메말라 바람에 흔들리며 위험하게 매달려 있던 집 앞의 ‘팜 트리’ 곁가지 몇 개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자연은 사람의 손길을 구태여 빌리지 않아도 정리할 때가 되면 알아서 스스로 정리하는가 보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바람이 세게 불어 댄 다음 날은 대체로 날씨가 좋다. 언제 바람이 불었냐는 듯이 잠잠하다. 반대로 바람 잔잔한 다음 날은 바람이 심술을 부리는 경우가 잦다. 마치 우리네 인생살이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오늘은 바람도 잠잠하고 햇볕이 유난히 따스하다. 딸네미가 보내준 두툼한 겨울 점퍼를 제대로 입어볼 새도 없이 사방이 벌써 은은한 봄빛이다. 정원의 체리나무에 봄 처녀의 기별이 온 것은 아니지만 집 지킴이들인 테디와 잠봉이 응가를 치우려고 마당을 서성이다 보면 햇살 받은 대머리가 따스하다.


쌀쌀한 날씨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던 데크에 놓여있는 소파를 잠봉이가 선점하고 앉아있다. 녀석은 내 자리를 차지하고 해바라기하면서 묵상에 잠겨 있다. 너무나 편안한 모습이다. 녀석 곁에 앉아 나도 이른 봄볕을 즐겨볼까 하다가 왠지 녀석의 평온한 시간을 방해할 것 같아서 슬며시 돌아섰다.


잠봉이는 지난해에 큰손녀가 데려온 한 살 돼 가는 덩치가 중간쯤 되는 개다. 전 주인에게 버림받아 거리를 헤매던 녀석을 수의사인 큰손녀가 가엾다고 데려온 거다. 


잠봉이는 처음에는 어긋난 행동을 했다. 아무 데나 용변보고 나뭇가지를 물어뜯고 정원을 파헤쳤다. 잠봉이는 그럴 때마다 소리 지르며 꾸중하는 내 눈치를 보면서 숨었다. 그에 더해 나만 보면 슬금슬금 피했다.


어느 한순간 문득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내가 살아가는 것들의 한(恨), 외로움, 불안, 원망을 이해하고 보둠을 줄 모르는 지독한 이기주의에 빠진 냉피동물 같았다. 파헤쳐진 정원은 메꾸면 되는 거고, 잘려 나간 나뭇가지는 알아서 새로 돋아날 터인데, 경망스러운 내가 짜증났다. 녀석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다. 나는 의식적으로 녀석에게 

접근해 수시로 토닥거려주고 쓰다듬어주면서 녀석의 어긋난 행동을 모른 척했다.


얼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날부터 녀석은 용변도 일정한 자리에 보고 나뭇가지도 물어뜯지 않고 정원도 파헤치지 않는다. 나를 보면 꼬리를 좌우로 흔들고 내게 몸뚱이를 기대온다. 이해와 포용이 외로움과 원망을 삭이고 어긋남을 순화시키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게 없나 보다.


따스한 햇살을 등에 업고 테니스 했다. 초록 코트 위에서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숨차게 뛰어다니며 환희와 아쉬움의 환성을 지르는 모습들이 실바람에 팔랑거리는 꽃잎들 같다. 땀을 흠뻑 흘려서 인지 몸뚱이는 가볍고 기분은 상쾌하다. 팔십을 바라보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격한 운동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리커숍에 들러 소주 한 병 샀다. 라면 끓여서 반주로 마셔야지. 입에 침이 고인다. 운전하면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외로워서 홀로 나가 살겠다는 나에게 소주 사주고 순댓국 사주면서 혼자 살면 더 외롭다며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라고 달래 주던 심성 깊은 후배의 얼굴이 연(鳶)처럼 하늘에 걸려있다. 행복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든가? 오늘 하루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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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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