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부재

리더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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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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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스웰(John Maxwell)은 목사이면서 컨설턴트다. 그는 <리더십 불변의 법칙>이라는 책을 냈다. 출간한 지 10여 년이 됐지만 꾸준히 잘 팔린다고 한다.


존 맥스웰은 리더의 조건을 21가지로 나누고 있다. 그 21가지 조건은 성품, 카리스마, 헌신, 소통, 능력, 용기, 통찰력, 집중력, 관대함, 결단력, 경청, 열정, 긍정적 태도, 문제해결 능력, 관계, 책임감, 안정감, 자기 단련, 섬기는 마음, 배우려는 자세, 비전이다. 이는 리더의 본질이며 나아가 리더가 지녀야 할 역량이다.


리더는 조직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며 앞뒤에서 전체를 이끌어야 한다. 단체든 기업이든 사회든 국가든 조직의 운명은 리더에 의해 좌우된다 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때문에 리더가 어떤 성품을 갖고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조직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세상이 언제부턴지 카오스의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당대표 하겠다고 이전투구하고, 당대표 구속 시키지 말라고 아우성이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면면히 이어지는 토(吐)나는 풍경이다. 소통 원칙 진실이 무너졌고 갈등 혼란 고소고발이 난무한다. 사느냐 죽느냐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반복되는 정치보복과 승자독식 구도에 매몰돼 서로를 적대시하는 정치문화가 대한민국을 양극화 시켜버린 거다. 정치적 생태계는 신선함이 아닌 구린내로 가득 차있다. 세상이 처절하게 분열돼 먹이사슬 정글로 변했다. 국민 91.1%가 대한민국을 ‘갈등 공화국’이라고 한탄한다. 또 다른 디스토피아(dystopia)의 전조인가? 두렵다. 


정치하는 족속들은 권력투쟁으로 날을 지샌다. 어쩌면 “정치란 권력 집단 간의 상생과 상극을 생리로 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들은 정치보복과 정적 제거에 발악하고 발광한다. 그들은 패거리 안에서 또 패거리를 만들어 헤게모니 쟁탈에 미쳐간다. 과대망상에 빠져 자신의 그릇이 수준미달임을 부정한다. 그들은 거짓을 진실로 위장하고 자신들이 행하는 것만이 원칙이라고 악다구니를 쓴다. 그들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원흉이다. 


세상이 암흑이다. 304명의 꽃 같은 청춘이 물밑으로 가라앉아도, 159명의 활화산 같은 젊음이 길 위에서 짓밟혀도 그들은 모르쇠다. 그들의 안중에는 민중의 지난하고 억울한 삶은 풀벌레들 몸짓일 뿐이다. 그들은 말로는 힘없고 헐벗은 백성을 위한다면서 속내는 백성은 개돼지일 뿐이다. 강자는 약자를 인탄(躪呑)한다고 했다던가. 한데 이런 모든 것들을 조정하고 정제할 리더가 없다. 그 인간이 그 인간이다.


맹자는 백성은 귀하고 군주는 가볍다고 했다는데 외려 백성은 가볍고 군주는 귀하다. 공자는 세상이 화평 하려면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고 했다는데 그들의 행동거지를 보면 임금인지 신하인지 거기서 거기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옳고 곧은길 가는 사람들은 침묵하고, 이념의 근본도 모르고 권력에 기대어 부스러기 살점이나 뜯어먹으려고 이쪽저쪽 눈치나 살피며 배신과 변절에 능숙한 하이에나 같은 인간들이 세상을 휘젓고 다닌다. 신념도 자존감도 없는 인간말종들이 정치를 앞세워 춤추는 세상이다.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고, 진작부터 형해화되어가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뉴질랜드협의회장 안기종은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진보찬양에 침 튀기더니, 정권이 보수세력으로 넘어가자 진보찬양을 즉시 삭제하고 보수찬양으로 돌변해 눈치를 살폈다고 한다.


그러더니, 지지난달에는 광고비 몇 푼 얻자고 ‘윤석열퇴진집회 촛불모임’광고를 해줬다. 결국 뉴질랜드평통협의회장에서 해촉됐다. 그러자 이번엔 자신이 촛불모임주최자명단을 감췄다며 뜬금없는 ‘민주투사’행세를 한다는 거다.


살면서 보여지는 행동은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이며 성품이다. 성품은 자신의 몸에 배어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 그의 그런 행동은 인간의 정체성은 물론 이념과 인생관도 정립돼 있지 않은 인간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릿하고 간교한 성품이다. 사람들은 이런 류의 인간들을 ‘박쥐’라 부른다.


이런 인간적 자질과 성품의 틀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나의 아둔한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더불어 이민 와서도 고국 정치판을 기웃대는 하고재비들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실로 난해하다.


재능은 선물이지만 성품은 선택이라고 했다. 리더는 사회적 경제적 재능과 아울러 도덕적 윤리적 성품이 건강해야 한다. 그런 ‘앎’이 리더의 덕목이다. 국가든 작은 사회든 존경과 신뢰의 참 리더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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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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