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열한 침묵

저열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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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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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불의에 대한 대표적인 침묵의 카르텔은 언론 정당 시민사회단체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한다하는 식자들이 내뱉은 쓴소리다.


언론이 레코드처럼 주장하는 사명은 국민의 알 권리와 정의다. 정당도 혀가 닳도록 내세우는 테제가 국민의 권리와 정의다. 시민사회단체의 부르짖음도 약자의 정의다. 그들의 관행적 테제가 정의다.


정의라는 단어가 참으로 가볍고 쉬운 테제가 돼버렸다. 개나 소나 입만 열면 정의다. 한데 언론 정당 시민사회단체의 정의는 정작 자신들의 비리에는 침묵으로 돌변한다.


언론사 기자들이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화천대유 대표 김만배로부터 한국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기자들이 수억 원씩 받았다는 거다. 김만배가 한국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기자에게만 돈을 줬을까? 힘 가진 자들에게 돈을 뿌렸을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국민을 분노케 한다. 언론은 침묵이다.


이 적폐의 나라에서 그나마 어슷어슷하게 의식이 살아있는 한 국회의원이 “대장동 개발업체 수익률이 실제 1000%가 넘고 검사, 언론사, 언론사 사장, 국회의원, 국회의원 아들, 변호사, 회계사 등 우리 사회 기득권들이 모두 다 들러붙어서 수천 조를 해먹은 거다. 이건 끝까지 밝혀야 되고, 처벌해야 되고, 환수해야 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언론은 자신들 비리만이 아니다. 특정된 몇몇 언론은 살아있는 권력의 불법 의혹에도 철저하게 침묵한다. 진실 정의라고 앵무새처럼 떠들면서 정작 자신들과 권력자들의 비리에는 침묵이다. 권력자의 하수인 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어디 그뿐인가. 근자에 온 나라를 들쑤셔 놓고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굽신거림 외교에 대해서 그러면 안 된다, 부끄럽고 침통 하다는 글 한 줄 없다. 역사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라는 호통도 꾸짖음도 없다.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소맥 한잔 얻어 마신 것을 러브 샷 했다며 자랑하고, 일본 공항 호텔 직원들 박수받았다고 떠벌리는 그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지는 행태를 정치적 레토릭을 동원해 대서특필할 뿐, 언론으로서 양식을 가지고 국가의 자존을 세우라는 바른 소리 한 줄 쓰지 못하고 침묵이다. 받아쓰기에만 익숙할 뿐이다. 외려 대만 언론이 이 상황을 비웃고 있다는 외신 보도다.


역사의식 투철한 깨시민들은 대규모 도심 집회를 열고 일본에 ‘굴종’한 윤석열은 ‘퇴진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쩌면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가 될 수도 있는 역사적 외침에 대해서도 침묵이다. 진실을 말하는 언론이 없다. 쓰레기 모아놓은 기성 언론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개소리다.


국가 운영과 정치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혼돈의 시대에서, 사회통합과 다양성을 존재 가치로 삼아야할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느 직군 보다도 높은 윤리의식과 함께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그런 언론이 편협과 획일성에 안주하고 있다. 이게 언론인가?


약자를 위한다는 시민사회단체도 권력자들의 비열함에는 침묵이다. 그들은 정부로부터 많게는 몇 천억 적게는 수억 원의 지원금을 받는다. 많든 적든 지원금 받는 순간부터 정의는 사라지고 불의는 침묵이다.


침묵의 카르텔에서 언급되진 않았지만 종교단체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기독교단체는 심각하다. 이 황잡한 세상의 모순 질곡이 드러나도 침묵이다. 자신들의 비리는 말의 성찬으로 번지르르하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를 설교하는 목회자인지, 돈벌레인지, 사기꾼인지, 성범죄자인지, 정치꾼인지 혼란스러운 인물들이 적지 않다.


언론 정당 시민사회단체 종교단체 등등 ‘지도층’의 정의는 침묵인가. 왜 말하지 않는가. 해야 할 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야 하지 않은가?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진실이고 정의 아닌가? 그들은 정의를 말할 정의도 없는가?


이러니 후인들이 뭘 배우겠는가. 거짓 위선과 간재비 같은 교활함 응큼함 외에 뭘 더 배우겠는가. 정의라는 거대 담론을 들먹이기 전에, 해야 할 말을 할 줄 아는 사회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은 국가와 사회를 이끈다는 여러 집단의 구성원들은 정의에 투철하고 양심에 떳떳한 인격체임을 묵시적으로 수긍한다. 그러나, 그들의 실체는 페르소나임이 대부분이다.


사람과 사람들의 신뢰가 무너진 세상, 위장된 삶이 너무 뻔뻔한 사람들의 세상, 정의 진실이란 말을 상표처럼 입에 달고 다니는 가면의 인간들이 활개 치는 세상. 하여 그들에 대한 나의 정서는 지극히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다. 나는 그런 나를 야단치지 않는다. 그것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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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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