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주 한잔

탁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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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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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후 천추만세까지 이름이 전해지는 것 보다는 살아생전에 탁주 한 잔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사후의 세계보다 살아생전이 더 소중하다는 뜻이다.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가 아들과 조카에게 준 시를 보면 노인의 애틋한 소망이 그려져 있다. 죽은 후 자손들이 무덤을 찾아와 절을 한들 죽은 자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세월이 흘러 백여 년이 지나 가묘에서도 멀어지면 어느 후손이 찾아와 성묘하고 돌볼 것이냐고 반문했다.


찾아오는 후손 하나 없고 무덤이 황폐화되어 초목이 무성하니 산짐승들의 놀이터가 되어 곰이 와서 울고 뒤에는 외뿔소가 울부짖고 있을 것이 자명하다고 했다. 산에는 고금의 무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넋이 있는지 없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탄식하며 사후세계를 연연하지 않았다. 이어서 자식들에게 바라는 소망을 다음과 같이 그렸다.


‘조용히 앉아서 혼자 생각해 보니 살아생전 한잔 술로 목을 축이는 것만 못하네. 내가 아들과 조카들에게 말하노니 이 늙은이가 너희를 괴롭힐 날 얼마나 되겠는가. 고기 안주 놓으려 말고 술상이나 부지런히 차려다 주렴’


조용히 생각해 보니 사후의 일보다 살아있을 때의 삶이 더욱 소중함을 깨닫고 자손들에게 한잔 술로 목이나 축이게 술상을 차려 주는 것이 효도라고 했다. 


자신은 이제 서산에 지는 태양과 같은 신세 인지라 자손들을 괴롭힐 날이 얼마나 되겠냐면서, 힘들게 고기 안주 장만하려 하지 말고 나물 안주와 탁주라도 좋으니 날마다 술상을 차려 달라고 쓸쓸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만년의 이규보가 간절하게 바란 것은 쌀밥에 고기 반찬의 진수성찬도 아니요 불로장생도 아니다. 다만 자식들이 ‘살아생전 목이나 축이게 술상이나 부지런히 차려다 주는 것’뿐이었다. 이 얼마나 소박한 노인의 꿈인가? 비록 탁주일망정 떨어지지 않고 항시 마시고 싶다는 소망이 눈물겹다.


이 시가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은 노인들의 한과 서러움이 진하게 묻은 꾸밈없는 소망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원(悲願)은 시인만의 것이 아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노인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아! 요즘 세상에 어느 자식이 이 소망을 들어 줄 것인가?” ㅡ 옮겨온 글 ㅡ


이규보는 1168년 출생 1241년 졸했다. 73년간 산 거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죽어도 내 나이보다 3년 먼저 갔다. 어쨌거나 나와 비슷한 늙음의 세월을 살면서 술을 어지간히 좋아했던 모양이다. 날마다 술상을 차려 달라고 구시렁거렸으니 말이다.


나는 이규보처럼은 아니지만 술을 좋아하는 편이다. 날마다 마시지는 않지만 1주일 평균 사흘은 마신다. 지금이야 나이를 많이 퍼먹은 탓에 자제하고 절제하지만, 팔팔할 때는 술 좋아한 탓에 실수도 많이 했다. 


음주운전으로 앞차 들이받아 차 값도 물어주고, 법정에 출두해 두 번이나 벌금을 물어 마누라 아들 며느리 속을 어지간히도 썩였다.


두 번째 법정에서 판사가 “이번이 두번째인데 세 번째가 되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겁을 주었다. 다행히 아직까진 세 번째 법정에 설 일이 없었지만 그 겁줌에도 굴하지 않고 살금살금 마시고 다니고 있으니... 정신 차려라 이 늙은 놈아! 이규보처럼 술상 받아 집에서 마셔라!


내가 처음 배운 술이 이규보가 말하는 탁주라는 술 종류에 속하는 막걸리다. 고 3때 가을비 주룩주룩 내리던 날 비에 젖어 덜덜 떨면서 포장마차에서 처음 마신 막걸리는 기가 막혔다. 큰 사발로 한잔 들이키고 나니 몸뚱이가 금방 훈훈해지고 눈앞이 가물가물해지면서 기분도 푸근해졌다.


그때부터 직장생활하기 전까지 막걸리만 마셨다. 후에 알았지만 막걸리는 혈관을 청소하고, 암세포를 억제하고, 만성피로 회복에 좋다고 했다. 막걸리는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주는 몸보신 보약이었다.


귀천(歸天)의 시인 천상병은 마누라에게서 담배 한 곽과 막걸리 한 병 살 수 있는 용돈을 받으면 하루가 행복하다고 했다. 천상병은 막걸리를 “배가 든든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밥”이라고 했다. 


막걸리는 우리의 술이다. 막걸리는 막걸러 냈다고 해서 막걸리다. 그래서 막걸리 심부름을 “사오라”하지 않고 “받아오라”고 한다는 거다.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 두드리면서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하던 내 젊은 시절이 그립다.


탁주 든 막걸리든 소주 든 이규보 말처럼 살아생전 맛이지 죽어 무덤을 찾아와 뿌려 본들 무슨 맛을 알겠는가. 소용없는 짓이다. 


술 마시는 것이 늙은이 사는 낙 일수도 있는 거다. 술상을 차려주진 못할망정 눈치는 주지 마라. 늙은이가 술 마시는 것은 한과 서러움을 마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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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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