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법률 이야기] 분노할 때가 아닌가?

[돈 버는 법률 이야기] 분노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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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욱 교민 1호 변호사의 ‘돈 버는 법률 이야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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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게 저녁 잘 먹고 동네 운동장에 가서 친구들과 공 좀 차고 오겠다던 아이가 밤 10시가 되어서 피투성이가 되어서 나타났다. 

술병으로 뒷머리를 맞아서 찢어지고, 이빨이 부러졌다. 한 놈이 때린 것이 아니라 동네 불량배들이 떼거리로 몰려서 욕을 하면서 애들을 때렸다. ‘칭, 홍’ ‘왕 탕’ 하고 중국말 흉내를 내면서.

아이들이 공을 차는 운동장 한쪽 편에서 두 녀석이 술을 마시면서 먼저 아이들에게 욕질을 해대다가, 순진한 아이들이 모욕감에 그만두라고 하니까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처음에는 두 녀석이 그러다가 나중에 차를 타고 온 패거리가 가세해서 집단으로 구타했다.


이 나라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늦지도 않은 저녁 시간에 운동장에서 술을 마시는 범법행위가 자행되는 데도 체포하지 않은 것은 경찰의 잘못이다. 어쩌면 스피드 카메라 벌금 수익을 올리는데 인원이 모두 투입되어서 치안에 관심을 쓸 인력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흉포한 놈들에게 엄청난 폭행을 당한 아이들은 당연히 경찰에 연락했다. 연락을 받고 경찰이 나타난 것이 9시 50분이라고 한다. 신고받고 얼마나 있다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즉시 출동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이 그렇게 늦게까지 공을 차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경찰이 출동하는 것을 본 가해자들은 모두 도망을 갔다. 현장에서 체포된 자는 한 명도 없는 모양이다.


폭행을 당한 아이들에게서 세부사항을 받아간 경찰은 그러나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가해자들을 검거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피해자 중의 한 명이 피해를 당한 다음 날 가해자 중의 한 명을 길거리에서 마주치고는 오히려 두려움을 느껴서 피했다. 

사건의 경위로 보나, 피해자가 그 다음 날 가해자들 중의 한 명을 길에서 마주친 정황으로 보나, 가해자들은 그 동네에 사는 불량배들일 가능성이 크다.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금방 찾아내서 처벌을 할 수 있는 자들일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잡혀갔거나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없었다. 2주일이 거의 지난 다음에 뉴질랜드 헤럴드에서 경찰에게 수사 진행 상황을 물어봤다. 그제서야 경찰이 다시 피해자들을 소환해서 피해자 조서를 받았다. 가해자를 불러서 조사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불러서 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난 뒤에도 경찰이 가해자들을 체포하거나 재판에 회부했다는 소식이 없다. 


물론 뉴질랜드라고 백 퍼센트 안전한 나라가 아니다. 폭행 사건도 많이 일어나고, 살인 사건도 적지 않다. 그래서 경찰이 있고, 법원이 있고, 교도소가 있다. 이 나라에서는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폭행이나 범죄를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그건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이 잘못하는 것이다. 위험한 시간에 위험한 곳에 가지 않아야 한다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안 다치는 것,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범죄 대책이다. 


개인 차원에서는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행동하도록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죄의 피해를 당한 것을 놓고 아이들이나 부모들 탓을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국가는 우리에게 세금을 꼬박꼬박 걷어가는 만큼, 공공장소에서 불법이 태연히 자행되는 것을 방치하고, 그 결과로 범죄 피해를 당하도록 만든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고, 보상을 해야 하고, 사과를 해야 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번 우리 교민 자녀의 폭행 피해 사건은 개인 간의 다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 차별적인 태도로 인해서 발생한 사건이다. 

경찰은 인종 차별적인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폭행과 인종차별이라는 다중범죄 행위이므로.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이다. 경찰은 출동에 늑장을 부렸고, 가해자들을 체포하지도 처벌하지도 않았고, 피해자만 불러서 조사를 하는 불편을 끼치고 있다. 경찰의 직무 태만이 눈에 보인다. 이 또한 경찰의 아시안에 대한 차별적인 행동이 아닌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뉴질랜드를 떠났다가 10여 년 만에 돌아와서 살면서 뉴질랜드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떠날 때만 해도 인종 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은 못 배우고 못돼먹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서만 드물게 나타나는 일이었다. 지금은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공공기관에서 한국어 번역 통역 서비스는 제공하고 있지만, 공무원이나, 학교에서나 마주치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말투에서 아시안이라고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태도를 자주 보게 된다. 


예를 들면, 당연히 승인받아야 할 ACC 보상 신청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절한다. 보상을 기각하는 것이 담당자의 실적으로 남는 것은 민간보험이나 국가보험인 ACC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렇지만 너무나 분명한 보상 케이스를 기각하는 것은 신청자의 이름을 보고, “이 아시아계 주민의 보상 신청을 기각하면, 영어도 할 줄 모르는 신청자가 재심 신청도 못 하고 받아들이지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계산이 밑바탕에 깔려있지 않느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우연하게 내가 아는 분이 그런 식으로 보상을 기각당한 것을 알고 그분을 대신해서 재심을 청구했더니 여전히 보상을 거부하고 버틴다. 편지 한 통으로 해결 되었어야 하는 일인데 ACC 담당관의 비합리적인 고집으로 몇 통의 편지가 오고 간 뒤에도 해결이 안 되고, 이제 제3자에 의한 심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분이 사고로 인한 부상에 따른 근무 불가로 입은 손해에 대해서 청구한 금액은 약 4천 달러 정도. 그 돈을 받아 내겠다고 변호사를 찾아가기에는 너무 적은 액수다. 보상 재심 신청을 하는 데 들어간 변호사비는 보상이 되지 않는다. 나중에 법원까지 간다면 재판에 소요된 변호사비는 법정 금액으로 얼마를 받겠지만, 그때까지 들어간 변호사비는 훨씬 더 많다. 보상금을 다 주고도 모자란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ACC의 부당한 보상 거부에 대해서 재심 청구를 하기가 쉽지 않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직접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쉽게 부당한 기각을 당하지 않는다. 영어를 못할 것 같은 아시안들, 기각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 같은 아시아계 주민들이 주로 타겟이 되지 않는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그분의 사건은 변호사비를 안 받겠다고 말씀드리고 끝까지 갈 작정으로 붙고 있다. ‘이 사건에서 이긴다고 이런 짓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 담당자는 앞으로 그런 짓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겠지’하고 희망하면서. 

아시아계를 특별히 인종적으로 미워하는 감정이 없는 사람들도 이처럼 아시아계 주민들의 지적능력이나 대응력을 얕보고 무시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그 이유는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감내하고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 태도가 보편화하도록 방치하면 나와 내 후손들이 이 사회에서 하층민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집트에서 혹사당하던 히브리인들처럼. 요셉이 총리일 때 이집트로 내려간 야곱과 그 자녀들은 귀한 손님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세대가 지나가지 이집트인들은 히브리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우리 후손들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과장 같지만, 큰 둑이 무너지는 것은 처음 생겨난 작은 구멍을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 분위기를 단숨에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개별적으로 마주치는 사건마다 확실하게 대처해서 부당한 대접을 감내하지 않는 것이,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이 나라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터전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번에 우리 청소년들이 당한 폭행 사건도 그래서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문제를 최대한 크게 만들어서, 다음부터는 경찰이 신고한 사람의 이름만 듣고도 피해자가 한국인인 것 같으면 하던 일을 내던져 두고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먼저 당사자들이나 그 가족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경찰청에 불만족을 표시하는 것이다. 경찰관의 직무 태만에 대해서 불만(complaint)을 제기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가까운 경찰서에 가서 하는 것과 경찰청 홈페이지에서 하는 것이다. 가까운 경찰서에서 하는 행동에 대한 불만족을 같은 경찰서에 가서 표시해봤자 소용없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런 경우에는 경찰청 홈페이지에 민원으로 제기하는 방법이 있다. 주소는 https://www.police.govt.nz/contact-us/praise-and-complain 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경찰이 잘못한 것을 경찰에 신고해봤자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우리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정책 결정자들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경찰청과 독립된 기관으로서 경찰의 직무 태만에 대한 불평불만을 듣고 처리하는 기관이 설립되어 있다. 이름은 Independent Police Conduct Authority. 홈페이지 주소는 https://www.ipca.govt.nz/ 이다. 민원은 홈페이지에서 할 수도 있고, 전화로 제기할 수도 있다. 전화번호는 0800 503 728 이다. 한국말 서비스도 제공한다. 전화를 받는 사람에게 랭퀴지 라인 코리안(Language Line Korean)이라고 말하면 한국말 통역자를 연결해준다. 


이번 사고로 피해를 당한 당사자나 부모님들이 이런 제도를 이용해서, 가해자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는 것을 보고 얼마 간의 위로를 받으실 수 있기를 희망한다. 

위에 연결한 기관에 연락해도 진행이 시원치 않다고 생각되시면, 국회의원에게 연락하시는 방법도 있다. 그 지역의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에 전화하거나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상관없다.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경찰청장이나 경찰청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에게 질문하고 조치를 촉구할 수 있고, 직접 경찰청에 전화해서 민원 해결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국민당 서열 14위에 올라가 있는 한국계 멜리사 리 국회의원도 있다. 아마 이 글이 나가기 전에 이미 멜리사 리 국회의원이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이미 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피해자와 가족들은 멜리사 리 의원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요구하실 수 있다.   

그러고도 납득할 수 있는 진전이 없으면, 교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한국 교민회가 주축이 되어서 경찰청장을 찾아가는 등의 행동을 하고, 교민 변호사 등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의 도움도 청해야 한다. 그래도 만족할 만한 경찰의 대응이 없으면, 그다음 순서는 대규모 집회와 가두 시위다. 거기까지 갈 각오를 하고 일을 시작해야, 끝을 볼 수 있고,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래서 가해자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검거되어서,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이 나라 불량배들 사이에 ‘한국계 주민들은 한번 건드리면 끝장을 보더라!’ 하는 소문이 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비록 의사소통은 자유롭지 않지만, 이 나라에서 우리가 소수 인종으로 열등한 대접을 감내하면서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먼저 피해자 자신이,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이, 그다음에는 공동체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나 기관들이, 작은 차별도 용납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나서 그런 사건의 온전한 해결을 촉구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고, 후손들에 대한 의무가 아니겠는가?

지금은 분노할 때다. 차별받고 피해를 입은 우리 동포를 위해서 분노하고, 행동할 때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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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욱 교민 1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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