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오소영 특별기고] 그 두 번째 날

[수필가 오소영 특별기고] 그 두 번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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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오소영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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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유로움과 축축한 바람마저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누구랑 꼭 만나고 싶은 욕구마저 스멀스멀 기어 나왔지만 그건 안 되는 일이었다.
모두가 꼭꼭 숨었다불러도 나올 사람도 있을 리가 없다.
생각은 슬펐지만 입에서는 웃음이 나왔다.
이것도 지나가는 바람이야언젠가는 옛날이야기가 될 오늘.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레벨4, 최고 단계. 비상사태(Lockdown), 이동 금지령이 내린 것이었다. 소리 없는 전쟁. 코로나바이러스와의 본격적인 전쟁 선포였다.


처음부터 왠지 이번 우한 폐렴은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맨 처음 알았을 때가 1 20일경 크루즈 여행을 하던 배 안에서였다. 그때는 중국에서 벌어진 일이니 사업과 직접 관련된 여행사 사장님만의 문제라고 간단히 생각했다.


먼 나라 남의 문제였던 일이 이제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위력이 무섭게 세상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노약자에게 불리하다는 말을 듣고 달팽이가 되기로 했다. 섣부른 오기가 통할 것 같지 않아 방콕을 서둘렀던 것이었다. 남만큼 든든한 체질을 갖지 못한 것이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동안 너무 많이 쉬어서 이제는 답답증에 도리어 병이 날 것 같은 요즈음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그 반대로 가고 있으니 어찌할지.


이런 경험은 내 생에 처음 당하는 일이어서 적잖이 당황스럽다. 얼마나 더 버티고 참아내면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갈지 그 누구도 답을 해 줄 사람이 없다.

 

록다운 경고가 나온 뒤 둘째 날, 3 27일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 밤새 뒤척이다가 눈을 떠보니 새벽 4시였다. 달콤한 잠이 더 남았는데 영 틀린 것 같았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날이 밝으면 오늘은 불가불 외출을 해야만 했다. 10여 일 전에 병원으로부터 안과 예약을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가야 해, 말아야 해?) 오기 싫으면 다시 날을 잡아주겠다는 병원 측 말이 맘에 걸렸다.

그렇더라도 안 가면 안 되는 사정이 문제였다. 4주 내지 6주를 주기로 주사를 맞아야만 하는 내 눈. 주치의가 8주를 지나면 안 된다고 했다. 자기 개인 전화 번호까지 친절하게 써주며 8주가 넘는 일이 생기면 반드시 전화를 하라고 했다. 현재 8주를 거의 채워가고 있는 형편이니 고민이었다. 이런 상태가 오기 전에 통지가 오기를 학수고대했건만 어쩔 수가 없게 되었다.

눈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엄마. 조심 또 조심. 잘 다녀오세요."

"가도 되는지 확인이나 해보고 가세요."

"정말로 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


치열한 전쟁터로 내보내듯 걱정이 실린 마음을 전해오는 주변 사람들.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고 진솔한 사랑이 담긴 말에 가벼운 전율을 느끼며 나서기로 작정을 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천천히 외출 준비를 했다. 이렇게 마음이 불안해서 나서기는 처음이었다. 교통이 복잡할 때보다 더 일찍 서둘러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가다가 혹시 경찰한테 검문을 당할지도 모른다. 사태를 모르는 철부지 노인처럼 취급당하는 게 싫었다.


봉투 안에 얌전히 들어 있는 병원 통지서를 미리 꺼내서 옆자리에 놓았다. 얼른 코앞에 내밀어 당당함을 주장하려는 처사였다. 마스크도 물론 준비를 해 놓았다.


반드시 픽업해 줄 누군가를 확인한 다음에 치료가 가능했었다. 오늘은 당연히 혼자여야만 될 것 같았다.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차들 속에서 차를 뺐다. 누군가가 눈총을 주는 것 같은 생각에 괜스레 눈치를 보기도 했다.

 

길은 텅텅 비어 있었다. 쭉 뻗은 길이 아득하게 멀리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마구 달려도 될 것 같은데 더 조심하게 되는 건 웬일인지 모르겠다. 상가들은 하나같이 문이 닫혀 있었다. 쥐 죽은 듯 고요한 이 도시. 사람은커녕 어디 들고양이라도 만나고 싶은 고독감.


잔뜩 구름이 낀 하늘 밑에 호흡이 정지된듯한 이 도시가 음산하고 을씨년스러웠다.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졌다. 마치 죽어있는 도시를 추도라도 하는 눈물방울 같았다.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나뭇가지들의 흔들리는 음률이라도 들을 텐데 그마저 차분하게 움츠리고 있었다. 그들도 록다운에 몸조심을 하는 걸까? 어느 집 마당에 빨래라도 펄럭이면 반가울 것 같았다.


다들 가족끼리 둘러앉아 카드놀이라도 하고 있단 말인가. 고난을 호재 삼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조용한 파티라도 벌이고 있는지. 바쁜 사회생활에서 놓여난 가족들끼리 오붓하게 모여 앉아 담소를 즐기면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이든 일장일단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현명한 사람은 장점을 살려 대처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텅 빈 거리에도 신호등만은 여전했다. 노란 등이 붉은 등으로 다시 푸른 등으로 바꾸면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혼자서 심심함을 달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파란 불과 동시에 교차로를 건너 달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동 금지령 빨간 신호가 어서 빨리 파란불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병원 주차장에는 생각보다 차들이 많았다.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얼마간 마음이 놓였다. 사람과 거리를 두기 위한 조치인줄 잘 알면서도 무조건 반가웠다. 사람()자가 그러하듯 더불어 사는 게 사람 아닌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리 살 것이다.


마스크로 단단히 입을 막고 문으로 향했다. 입구에는 주황색 조끼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가 문을 열어줬다. 한 사람씩 들여보내는 절차였다. 안으로 들어갔다. 같은 차림의 여인이 안과(眼科) 입구에서 안내를 했다. 여기가 내가 익히 다니던 곳이었던가. 너무 낯설었다.


안과 입구에서 이번에는 문진을 시작했다. 현재 내 건강 상태와 주변의 실태를 파악하려는 문의였다. 멀찍이 떨어져 앉아서 서류를 들어 확인을 시키고 사인도 했다. 마지막으로 체온을 점검하고 나서야 접수대로 갈 수 있었다.


언제와도 바글바글했고 어떤 때는 앉을 의자조차 없었던 1번 대기실에는 딱 한 사람의 환자가 있었다. 의자는 하나 걸러 앉게끔 쪽지를 바닥에 놓았다. 이토록 철저히 준비한 병원 측의 배려가 고마웠다.


내심 많이 걱정했었다. 사람들과 가까이 접촉을 하게 되는 대기실의 평소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었다.

일반 환자들은 한 사람도 없었다. 주기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만 불렀다. 그것도 한 사람씩 간격을 두어서 대기자가 없었다. 마음이 놓였다.


잠깐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릴 때는 연신 세정제로 손을 소독했다. 텔레비전에서 떠드는 사람들 입에서도 침이 튀어나올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동안 훈련에 아주 익숙해져 있었구나. 실없이 웃음이 번졌다.


지금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모두가 나 자신을 위한 일이잖은가. 나를 위함이 전체를 나라를 위하는 일이기에 아무 말 없이 잘 따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대모험을 하는 것이었다. 정부의 명령에 불복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비상구를 열어놓긴 했지만 잘한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나이 먹은 사람이니 더욱 조심해야만 했다.

 

내 차례가 되어 치료실에 들어갔다. 어쩐 일인지 통역사가 마스크도 없이 왔을까? 결국 일을 못하고 돌아가야만 했다. 충분히 알만한 분이 왜 그리했는지 모르겠다.


검사는 생략하고 간단히 주사만 맞고 오늘 일은 끝이 났다. 8주 후에 다시 부르겠다고 했다. 제발 다음에 올 때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했다.


길이 한산하다는 핑계였다. 많이 쉬었다가 움직여야 하는 불편한 눈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갈 때보다 마음이 홀가분했다.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평온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산다면 두려울 것도 없을 텐데.


이 시간도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고생하는 의사들이 있다. 그들을 보살피는 간호사들. 많은 사람이 고난 속에서 분투를 하고 있다. 환자들의 고통, 자꾸 늘어만 가는 환자들,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공무원들함께 고통을 분담하면서 이 사태를 벗어나야만 한다.


병원을 벗어나 큰길에 나서니 여유마저 생겼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던가. 오랜만에 밖에 나온 해방감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늘 다니던 질러가는 길을 비켜서 그냥 곧은 길로 들어섰다. 조금만 더 돌아서 들어가자는 욕심이 생겼다.


이 자유로움과 축축한 바람마저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누구랑 꼭 만나고 싶은 욕구마저 스멀스멀 기어 나왔지만 그건 안 되는 일이었다.


모두가 꼭꼭 숨었다. 불러도 나올 사람도 있을 리가 없다. 생각은 슬펐지만 입에서는 웃음이 나왔다.

이것도 지나가는 바람이야. 언젠가는 옛날이야기가 될 오늘.  

2020 3 27일 금요일.

_오소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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