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나는 한국 정권의 희생양이었다”
인터뷰_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일당 5억은 법원이 결정…나머지 225억 벌금 현금으로 납부해
▲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나의 바람이 있다면 여생을 나의 전문성을 살려 뉴질랜드 교민의 위상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잊을 만하면 한국 언론에서 다루는 뉴질랜드의 한인 관련 뉴스가 있다. 일명 ‘황제노역’ 논란이 일었던 전 대주그룹 허재호 회장에 관한 뉴스이다.
뉴질랜드타임즈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을 만나 그동안 궁금했던 탈세와 도피 등 그동안 밝히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뉴질랜드와 인연은 어떻게 시작하셨는지요?
내가 낚시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친구가 뉴질랜드에 참돔이 많이 잡히니 같이 가자고 해서 2001년에 처음으로 뉴질랜드에 관광으로 왔다.
낚시하고 오클랜드 시내 구경을 하던 중에 스카이시티 앞에 땅이 공터로 놀고 있길래 그 땅을 팔 의향이 있는지 알아봤다. 그랬더니 팔 생각이 있다고 와서 가격이 얼마냐 물었더니 그때 당시 그곳의 땅값이 평당 한국 돈으로 1,500만원 정도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전라남도 광주에 그 정도 위치에 있는 땅이라면 평당 7천만원 정도 했다. 그래서 투자 목적으로 샀다. 그것이 계기가 돼서 내가 뉴질랜드로 오게 됐다.
또 빅토피아 아파트 건축 허가를 받아 놓고 불경기라 착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파트 건설과 분양은 전문가니까 그것을 사서 사업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 땅을 사서 아파트를 짓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외국인이라 시공을 ‘멀티플렉스’라는 호주 회사에 맡기고 우리가 시행사로 시작했다. 분양하자마자 한 달 만에 220세대를 팔았다.
2004년에 아파트가 완공됐다. 이후에 상공회의소 주차장 땅도 매입하고 결과적으로 한국의 대주건설이 뉴질랜드에 8천만 달러를 투자한 셈이다.
그 이후에 67층짜리 엘리트 건물을 짓기 위해 허가를 받았다. 이 건물은 그때 당시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4억 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했다.
탈세 판결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2006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노 대통령이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 뉴질랜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인 경제인 대표로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그 자리에서 아파트 건설 관련해서 많은 대화도 하고 한국 정부 차원에서 협조하겠다는 약속도 해서 일이 잘 진행됐다.
그런데 갑자기 2007년 5월에 서울에 있는 국세청에서 세무 조사를 받으라고 연락이 왔다. 우리 그룹은 전라남도 광주에 있어서 관할이 광주인데 서울 국세청에서 나를 조사하겠다고 한 것이다.
특히 국세청 4국이면 회사를 파산시키는 곳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그런데 왜 관할 지역을 벗어나 서울에서 조사받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아봤다.
내가 천주교에 300억을 기부했는데 이 돈이 이명박 선거 캠프에 들어갔다는 허위 보고가 청와대에 들어간 것이다. 이때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BBK 건으로 시끄러웠다. 만약 그 돈이 선거 캠프로 들어갔다고 하면 선거법 위반을 해서 출마를 못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내가 광주를 벗어나서 서울에서 조사를 받았다. 주변에서는 이제는 내가 끝났다고 소문이 났다. 2007년 10월에 탈세 혐의로 검찰이 나를 고발한 것이다.
검찰은 구속을 신청했지만, 법원에서는 불구속 조사를 받았다. 대법원에서 벌금 250억, 집행유예 3년을 판결받았다.
잘 나가던 기업이 부실기업이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갑자기 2008년 12월 30일에 우리 기업을 부실기업 명단에 올리고 모든 금융거래를 막았다. 신용등급이 거의 최고 등급이었던 우리 기업을 부실기업으로 만들었다.
딱 거래 한 건 했던 경남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삼아서 우리 기업을 부실기업으로 만들고 모든 은행 거래를 중지시켰다. 연말이라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우리 기업의 주거래 은행은 광주은행이었다. 경상도 쪽에 아파트 사업을 하는데 경남은행에 400억 토지 담보를 잡히고 140억원을 빌렸다.
이게 경남은행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거래이다. 경남은행과 거래한 이유는 경상도에서 사업하니 거래를 터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금융감독원에서 경남은행을 주거래 은행이라고 억지로 바꿔 놨다. 은행 거래 중지를 했다는 것은 파산 조치와 마찬가지이다.
만약 우리가 부실기업이었다면 금방 망했을 텐데, 그 당시 발행됐던 어음 약 8천억과 내 세금 등으로 약 1조원 이상을 현금으로 1년 동안 갚았다.
그래서 우리 기업은 채권단이 없다. 법정 관리 신청도 안 했다. 이렇게 깨끗하게 정리를 했다. 항간에 부도내고 내가 뉴질랜드로 도망왔다고 하는 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어음 할인도 10원도 안 했다. 연쇄 파산을 막기 위해 어음을 100% 다 갚았다. 2010년 1월 20일에 대주건설은 휴업에 들어갔고 퇴직금 정산을 다 했다. 그러고 나서 1월 21일에 나는 뉴질랜드로 왔다.
일명 ‘황제 노역’이라고 불리는 하루 일당 5억은 어떻게 계산된 건가요?
이명박 정권이 들어온 후에 갑자기 회사를 부실기업으로 만들어 망하게 했다. 하루아침에 내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내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기 위해 뉴질랜드로 온 것이다.
뉴질랜드에 와서는 한국과 관련된 것은 모두 끊었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있는 한 한국과는 관계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3년 동안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낚시하러 가거나 걸었다.
그러던 중 2014년에 벌금 대신에 50일 동안 감옥 생활하면서 강제 노역을 하라고 한국 검찰청에서 연락이 왔다. 광주 검찰청에서 나한테 사정을 했다.
내가 2007년도에 조사받은 탈세 혐의에 따른 250억원 벌금을 안 냈는데, 광주 검찰청이 전국에서 벌금 회수율이 꼴등이라서 돈 없으면 50일만 징역살이하고 가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나는 검찰 말대로 50일 징역살이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이 부분은 정말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하고 있는 부분이다. 아까 말했듯이 탈세 혐의로 벌금 250억을 내야 하는데 광주 검찰청에서 대신 징역살이를 하라고 했다.
전국 그룹 순위가 42위였고 매출액이 약 5조2천억이 됐는데 회사 주식의 대부분이 내 소유였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이 내 소득이었다.
내 실제 소득은 2,500억원이 넘는데 법원에서는 1년 동안 내 소득을 900억으로 산정했다. 그래서 900억을 1년 365일로 나누면 약 2억5천되는데 이를 일당으로 산정한 것이다. 나는 억울해서 항소했는데 검찰은 항소를 안 했다.
그 이유는 검찰은 자기네가 원하는 대로 됐기 때문이다. 내가 검찰청 조사받기 전에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내가 모든 것을 지시했다”라는 자술서를 써서 제출했다. 자술서를 쓰면 죄가 반으로 감면된다.
그래서 일당 2억5천만원이 5억이 된 것이다. 그래서 하루에 5억, 50일을 징역살이하면 250억원이 된다고 검찰청에서 말한 것이다. 내가 5억이라 한 것이 아니다. 법원에서 정한 것이다.
그러자 언론에서 일당 5억, 황제 노역이라고 막 떠들어 댔다. 그 이유가 그때 당시 국정원 부정선거 개입, 박근혜 하야설 등 다른 건들이 있었는데 내 기사로 그 사건들을 덮으려고 한 것이다.
시끄러워지자 검찰에서 징역살이 5일 했는데 나를 석방했다. 그리고 검찰에서 돈으로 벌금을 내라고 해서 나머지 벌금 225억원을 현금으로 다 내고 뉴질랜드로 온 것이다. 그 와중에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모두 무혐의 처리 받았다.
추가로 한인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국세청 조사에 의하면 한국 내 세금 미납자 중에 나는 납부율이 1위라고 한다. 또한, 그동안 회사에서 미납한 세금이나 개인적인 세금도 많이 노력해서 납부하였고, 이는 대주주로서 제2 납세자의 의무를 다한 것이다.
이러한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언론들이 보여주는 것에만 귀를 기울이고 나를 손가락질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대단히 섭섭하다.
이제까지 나는 한국에서 지역과 국가 발전을 위해 한평생을 바쳐온 사람이다. 그러다가 한국 정권의 희생양이 되어 한국에서 이뤄왔던 모든 것을 잃고 이곳 뉴질랜드로 왔다. 그런데 아직도 나한테 한국에서 부도내고, 탈세하고 뉴질랜드로 도피했다고 말들을 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나와 관련된 채권단도 없고 법정 관리된 회사도 없다. 하지만 이런 진실을 믿지 않고 나를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제 내 나이가 80을 앞두고 있다. 나의 바람이 있다면 여생을 나의 전문성을 살려 뉴질랜드 교민의 위상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다.
임채원_기자
저작권자 © ‘뉴질랜드 정통 교민신문’ 뉴질랜드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질랜드, 뉴질랜드타임즈, 인터뷰, 전 대주그룹, 회장, 황제노역, 한인사회, 낚시, 탈세, 판결, 세금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