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켜서 한 일?

시켜서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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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저도 육군 병장 말년 제대했는데 군인들이 그럴 리가 있습니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김만섭(송강호 분)이 광주에 와서 택시에 태운 할머니가 군인들이 사람을 때린다고 하는 말에 대꾸한 대사이다.


군대라는 사회는 어느 집단보다 엄격한 위계질서로 상관 명령에 복종해야 할 의무를 강조한다. 내가 군대 있을 때 고참의 말도 안 되는 지시에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이 XX 까라면 까”라는 말을 하며 절대복종을 강요했다. 


그 당시 나는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라는 마음으로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복종을 했다. 사람들은 왜 부당한 지시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억지로든 자발적이든 복종을 할까?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의 한 법정에서는 2차 세계대전의 전범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법정에 선 50대 중반의 평범한 남자. 잡혀 올 당시 그의 직업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자동차 공장의 기계공이었다. 그가 소지하고 있던 신분증에는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원래 국적은 독일, 원래 직업은 독일 나치스 친위대 장교, 원래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바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핵심 인물이다.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각지에서 유대인들을 잡아 열차에 태워 폴란드의 수용소까지 이송하는 강제이주 작전을 계획하고 지휘한 최고 책임자였다. 어린이 150만 명을 포함한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장본인이다.


그런데 아이히만은 극악무도한 사람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지극히 평범했다. 오히려 매우 친절하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가정에 충실한 아버지이자 듬직한 남편이었다. 


아이히만은 판사에게 이렇게 항변했다.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나는 월급을 받는 관리 중 한 사람으로서 상부의 지시를 따랐을 뿐입니다. 죄가 있다면 명령에 따른 것이겠지요.”


그는 재판 내내 결백을 주장하며, 만약 히틀러가 자신의 가족을 가스실에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무죄를 주장했다. 그의 재판을 지켜본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도 “그는 나보다 더 정상이며, 심지어 준법정신이 투철한 인물이었다”고 진단했다.


아이히만은 결국 1962년 6월 1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형이 집행되고 난 후 밝혀진 사실이지만 법정에서의 그의 발언과 행동은 연기였다고 한다. 그는 청년 때부터 나치에 입당하여 베를린 친위대에서 근무했던 지독한 반유대주의자였다. 


우리는 주위에서 아이히만처럼 “자신은 위에서 또는 주변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라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평소에 훌륭하다고 생각해오던 사람들이 정치판이나 어떤 위치에 오르면 특권의식과 권력의 맛에 취해 사회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높은 자리가 사람을 변화시킬까? 


권력과 복종에 대한 행동실험 중 잘 알려진 ‘스탠퍼드 감옥실험’이 있다. 1971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심리적으로 건강한 청년들을 모집해 무작위로 교도관과 수감자 역할로 분류했다. 


도관이 된 피실험자들은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 만에 공격적으로 변했고, 수감자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변하는 것이 관찰됐다. 수감자의 일부는 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려 2주로 예정됐던 실험은 엿새 만에 끝났다.


자신의 지시에 다른 사람이 복종한다고 해서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복종하는 이유가 당신의 무력이나 경제력 때문이라면 진정한 복종이라고 할 수 없다. 


힘 또는 경제력이 부족해서 그 앞에서만 고개를 조아리는 척하는 것이다. 당신이 경제력 혹은 무력을 상실하면 상황은 180도 변한다. 심지어 복종하는 사람들도 당신이 없을 때는 당신을 욕하고 손가락질하곤 한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고 치자. 그런데 그 무력과 경제력에 빌붙어 부귀영화는 다 누려 놓고 누가 시켜서 했다는 ‘비겁한 변명’은 제발 그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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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원_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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