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 편입니까?

당신은 누구 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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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었을 때 힘든 삶에 지쳐 있어도 고교 동창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하며 추억을 비롯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다시 에너지는 충전됐다. 


된 대화 주제는 학창 시절 실패한 미팅 이야기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선생님 몰래 빠져나와 화양리 호프집에서 돈이 없어 노가리 한 접시 놓고 생맥주를 나눠 마셨던 무용담(?) 등은 족히 수십 번은 우려먹었어도 매번 새롭고 맛난 안줏거리가 됐다. 


하지만 뜨거운 술자리에 찬물을 끼얹는 한 마디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너 이번에 누구 찍을 거야?”라는 질문이었다. 선거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친구들을 만나면 꼭 이 질문을 하는 녀석이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 의견을 포용할 듯이 질문과 대답으로 시작되지만 조금만 대화가 오가면 “어떻게 그런 사람을 지지할 수 있느냐?”,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이상하다”며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사람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사상, 출신, 심지어 아버지 고향까지 들먹이며 “너 그 사람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거야”라며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상대방을 계도하려 한다. 


결국 즐거웠던 술자리는 어느새 각 정당 대변인의 논평 자리처럼 되고 심지어 심한 말까지 오가다 찝찝하게 끝난다.  


군대, 축구,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등 지겹다는 대화 주제보다도 내가 가장 꺼리는 대화 주제는 바로 ‘정치 이야기’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물론, 여기 뉴질랜드 와서도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들과는 웬만해서는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혹여 나의 정치적 견해를 물어보면 나는 “정치를 잘 모르고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둘러댄다. 


그러면 “신문사에 있는 사람이 정치를 잘 모르면 어떻게 해?”라고 비난 아닌 비난을 한다. 그래도 난 끝까지 내 생각을 밝히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그 대화의 끝이 좋지 않으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내 편과 네 편’, ‘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편 가르기는 왜 인간 사회에서 계속 존재하는가? 이에 대해 과학적 심리학의 대가인 스타노비치 교수는 ‘우리편’만을 우호적으로 해석하고, 우리편의 결점에는 관대한 인간의 경향, 즉 ‘우리편 편향(Myside Bias)’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집단 정체성으로 귀결되는 이 편향은 관점을 바꿔보는 능력을 결여한 채 ‘제 논에 물 대기(아전인수)’ 식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팔이 안으로 굽는 식’으로 애써 진실을 외면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일갈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대부분 갈등은 ‘우리편’의 유불리만을 따지는 우리편 중심의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모든 뉴스를 가짜 뉴스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편의 정치적 적들에게서 나온 뉴스만을 가짜 뉴스라고 여긴다.


‘우리편의 진실’, ‘우리편의 뉴스’만을 믿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진실과 사실을 소중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견해를 지지해 줄 때만 그렇다. 


현대인들은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자기 생각이나 가치관을 강화시켜주는 글이나 뉴스 등을 꾸준히 찾아보면서 자기 생각에 대한 확신을 더욱 공고히 하고 반대되는 생각은 가차 없이 배척한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언론을 구독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편’에 유리한 (가짜)뉴스를 퍼 나르고 자기 생각과 반대되는 뉴스는 가짜 뉴스라고 여기며 진실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스타노비치 교수는 아무리 똑똑한 사람, 소위 가방끈이 긴 사람도 편을 가르면 편향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고도로 지적인 사람조차도 예외 없이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토대로 다르게 상황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스타노비치 교수는 대다수 사람들이 그리 이념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일반적인 정치 원리에 대해 깊이 고심하지 않으며 특정 이슈가 자신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경향이 있을 때만 모종의 입장을 취한다. 


즉 정치적 견해에 대한 지지가 아닌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우리편 편향’에 대한 스타노비치 교수의 처방전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역지사지(易地思之)’, 내가 아닌 타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술이다. 물론 이는 인간의 본성을 역행하는 일이라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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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원_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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