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속에서

공정하다는 착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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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30여 년 전, 학력고사 시절 서울대 수석 합격생이나 전국 수석을 한 학생을 인터뷰하면 한결같이 이같이 답변했다. 

그때는 과외 금지 조치가 있었고 인터넷 강의는 당연히 없었다. 


그래도 참고서와 문제집은 몇 종류가 있어서 그것으로 공부했고, 부족한 과목은 단과 학원에서 메꾸던 시절이었다. 물론 집이 좀 산다는 학생 중에는 몰래 과외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누가 더 오래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있었느냐는 노력의 대가로 입학하는 대학교가 결정됐다. 


그래서 시골 깡촌에서 힘들게 공부해 일류대에 가는 학생이 제법 있었고 그들은 몸에 밴 노력으로 주위의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을 들으며 상위 계층으로 이동했다. 이처럼 그 시절에는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교육’이라는 사다리를 이용해 얼마든지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개천의 용은 없을 듯하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주병기 교수는 ‘개천용 불평등지수’라는 개념을 개발했는데 주 교수는 “출신 환경이 좋지 않으면 타고난 잠재력과 노력에도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확률이 적어도 70%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즉 부모의 학력이나 소득 수준에 따라 학력 수준이 바뀌고 사회 계층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최근에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화두인 ‘공정’, ‘불평등’의 한 단면인 ‘부모찬스’이다. 있는 집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많은 천장을 ‘부모찬스’라는 튼튼한 사다리를 이용해 뚫고 올라가고 있는 셈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 대학교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원제: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라는 저서를 통해 능력주의만이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 엘리트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샌델 교수는 “성공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언제나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지만, 실패하는 사람들에게는 수치심과 모멸감을 안겨준다. 사회는 ‘네가 노력하지 않았잖아!’, ‘네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야!’라며 실패를 용납하지 않으며 손가락질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은 오롯이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고, 자신의 능력은 우월하다는 오만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수학능력시험을 예로 살펴보자. 부자든 가난하든 경제적 여건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오직 점수로 경쟁하는 수능 평가는 매우 공정하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개천용 불평등지수’와 같이 부모의 경제적 능력, 사교육 수준, 정보 수집 능력 등 외적인 요소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채 수능은 순전히 개인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태어나면서 어떤 부모를 만날 것인가는 어느 누구도 선택할 수 없다. 삼신할머니의 랜덤으로 누구는 부자 부모, 누구는 가난한 부모를 만난다. 우연의 요소인 셈이다. 


소위 ‘빽’은 힘이고 특권이다. 빽이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빽이 필요하다면 사돈의 팔촌까지 연결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귀족의 친인척에게 관직을 세습하여 정치적 기득권을 합법적으로 보장해주는 음서 제도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의 공직자, 정치인들을 비롯한 기득권층에서 이 ‘부모찬스’를 마구 사용하다가 자기 발에 족쇄를 채우는 일이 부지기수로 생기고 있다. 


이미 정치권에선 재산 문제와 함께 자녀들이 주요 공격 포인트가 됐다. 상대 견제용으로 먼저 자녀들부터 들고 판다. 더 놀라운 것은 파면 꼭 무엇이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부모찬스로 남들보다 출발선이 앞당겨졌다 해도 본인의 노력이 있어야 엘리트 계층으로 갈 수 있기에 어느 정도 불공정함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기득권층이 자신의 성공은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루어냈다는 착각 속에 빠져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오만함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또한 부모찬스로 자기 자녀들이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설치해준 하방 이동 방지 유리 바닥이 누구에게는 올라가는 것을 가로막는 유리 천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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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원_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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