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봉쇄에 지친 중국인의 '제로 코로나 해방일지'

[특파원 시선] 봉쇄에 지친 중국인의 '제로 코로나 해방일지'

뉴질랜드타임즈 댓글 0 조회 269 추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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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부터 시작된 상하이 도시 봉쇄와 그보다 한 달 늦게 시작된 베이징의 사실상 봉쇄에 준하는 강력한 방역 정책의 여파가 두 도시에 여전히 불씨로 남아 불안한 일상이 지속하고 있다.

 

베이징 도심에 거주하는 기자 역시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가면서 지난달 초부터 한 달 가량 단지가 봉쇄돼 중국식 '제로 코로나'의 매운맛을 봐야 했다.

 

봉쇄 기간 답답한 중국식 행정 처리와 모호한 방역 규정 적용 등을 목도했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당국의 지시라면 순한 양처럼 따르던 중국 이웃들의 심리 변화와 적극적인 투쟁 활동이었다.

 

우리 주거단지는 베이징 한인 밀집 거주지역인 왕징과 달리 외국인 거주민이 흔치 않다.

 

그래서인지 평소 안면을 트고 지내던 중국 이웃들은 봉쇄 초기 "이게 중국식이니 너무 놀라지 마라", "답답하고 화가 나도 당국의 지시를 따르면 봉쇄가 금방 풀리니 걱정하지 말라"며 기자를 안심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들의 걱정과 달리 대학 유학 시절부터 중국과 연을 맺은 게 벌써 20년 가까이 된 나는 덤덤하게 모든 '조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히려 내 눈에는 수도 베이징에 재택근무와 상업 활동 금지 등 사실상 봉쇄나 다름없는 조치가 내려진 것에 충격을 받은 '라오베이징런'(老北京人·베이징 토박이) 무리인 그들이 더 걱정스러웠다.

 

급속한 IT 기술 발전과 개인정보에 대한 존중이 거의 없는 중국답게 봉쇄 첫날 우리 주거단지에는 거주민위원회(거주위)에서 조직한 아파트 동별 중국 소셜미디어 위챗 단톡방이 생겨났다.

 

100여 명 규모로 만들어진 동별 단톡방에는 '러우관'(樓官)이라는 거주위에서 배치한 관리인이 하나씩 배정됐다.

 

단톡방의 방장 격인 러우관은 베이징시의 지시를 전달하거나 방역 조치에 변동이 있을 경우 이를 공지하고 설명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거주민들이 방역망을 피해 건물을 빠져나가는지 감시하는 파수꾼의 역할도 맡았다.

 

강력한 방역 조치를 앞세운 중국식 '제로 코로나' 정책이 유명하기 때문에 중국인들 대부분이 봉쇄 생활에 익숙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코로나19 발생 초기 집단 감염으로 봉쇄된 우한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의 중국인은 봉쇄를 경험하지 못했다.

 

특히 중국 당국은 수도 베이징이 봉쇄될 경우 '방역 강국' 이미지에 해가 된다고 여겨 '수도 봉쇄'라는 굴욕을 극도로 꺼렸다.

 

한마디로 베이징 사람들 대부분은 봉쇄 생활에 익숙지 않았다.

 

당국의 지시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중국인들답게 우리 이웃들도 봉쇄 첫 일주일은 러우관의 지시를 일사불란하게 따랐다.

 

가끔 답답함을 못 이긴 'MZ세대' 거주민이 단톡방에서 불만을 토로할 때도 러우관보다 먼저 나서 그 사람을 준엄하게 꾸짖고, 달래가며 공동체 정신을 뽐내기도 했다.

 

평화롭기만 하던 봉쇄 생활은 2주차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임시 봉쇄 구역'으로 분류된 우리 주거단지의 봉쇄가 언제까지 계속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지시가 그때까지도 내려오지 않았다.

 

베이징시가 규정한 봉쇄 기준은 '봉쇄·관리 통제 구역'으로 지정될 경우 14일 격리에 7일 의료 관찰이었다.

 

우리 주거단지처럼 확진자의 동선에 걸쳐 있는 임시 봉쇄 구역은 선() 봉쇄 후 감염 추이를 보고 봉쇄 기간이 결정된다.

 

차라리 정확하게 봉쇄 기준이 정해져 있다면 오매불망 해방의 기쁨을 맛볼 봉쇄 해제일을 기다리며 견딜 텐데 우리는 봉쇄가 사흘이 될지 열흘이 될지 알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처음엔 서로 위로와 응원을 해가며 왁자지껄하던 단톡방이 2주차가 끝나갈 무렵에는 무거운 적막만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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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14일째가 되던 날 드디어 한 거주민이 하루 두 번씩 비강에서 검체를 채취하는 방문 유전자증폭(PCR) 검사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이전이라면 누군가 나서서 불만을 제기한 거주민을 꾸짖거나 달랬겠지만, 이날은 5·4운동(일제강점기 베이징에서 일어난 항일운동)의 물결처럼 봇물 터지듯 100여명에 달하는 거주민이 합세해 단톡방에 불만을 쏟아냈다.

 

거주민들은 "2주 동안 한 명도 추가 감염자가 안 나왔는데 이 의미 없는 비강 PCR 검사를 언제까지 받아야 하느냐"며 러우관을 다그쳤다.

 

주민들의 격한 반응에 놀란 러우관은 "상부의 지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한번 불이 붙은 '봉기'의 기운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일부 거주민은 "우리보다 거주민도 많고 봉쇄도 나중에 한 인근 주거단지는 벌써 봉쇄가 해제됐다는데 우리는 언제쯤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느냐"며 투쟁심에 기름을 부었다.

 

또 다른 거주민은 "도대체 상부의 지시라는데 그 상부가 어딘지 알려달라"며 러우관에게 따져 물었다.

 

강성파 거주민들은 10여명의 '의열단'을 조직해 중국 민원 제보 유선 전화 핫라인인 '12345'에 거주위의 안일한 행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이후 단톡방은 거주위 성토대회의 장이 됐고, 상부와 거주민 사이에 낀 거주위는 분노한 민중을 달랠 해결책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비슷한 시기 베이징대, 베이징사범대, 중국정법대 등 베이징 내 유명 대학에서도 학교 당국의 과도한 방역정책에 항의하는 학생 집회가 연달아 벌어졌다.

 

거주민 봉기로부터 일주일이 지나고 거주위는 어딘지 모를 상부에 줄을 대 '봉쇄 해제'라는 통지를 받아왔다.

 

일주일간 가열차게 투쟁해 왔던 거주민들은 서로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승리를 자축했다.

 

봉쇄 단톡방은 중국 이웃들의 투쟁으로 만들어낸 '작은 해방구'가 됐다.

 

비록 단톡방 안에서 일어난 '작은 봉기'였지만, 순종적인 중국인도 당국을 상대로 단결된 투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도한 소중한 경험을 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중국의 지도자들이 왜 민중의 단체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감시와 통제를 하려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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