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특집] 해방 정국의 모순을 묻는다

[광복절 특집] 해방 정국의 모순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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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절 74주년 특별기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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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극일에 여와 야가 따로 없다.

분열주의를 극복하고 남북대화가 발전적으로 이어져 나가

민족이 하나로 뭉칠 수 있을 때 우리는 참다운 해방을 맞게 될 것이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해방 기념일의 노래 첫 구절이다. 민족이 고대하던 해방은 불행하게도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원폭 공격에 의한 일본의 항복으로 얻어진 것이다.


해방이란 단어가 무색하게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도 일제의 아베 총독부는 한국 전역에서 경찰권과 행정권 전반을 여전히 행사하고 있었다. 심지어 9월 9일 미군의 입항을 환영하는 우리 군중에게 일본 경찰이 치안 유지를 이유로 발포, 2명의 한국 사람이 목숨을 잃고 10명이 중상을 입는 비극이 자행되었지만, 남한에 진주한 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은 일경의 이런 행동을 옳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와 맥아더와 같은 부류의 미군 장성들은 모택동과 스탈린의 공산주의가 확산하는 것을 무엇보다 경계했다. 이들은 남한에 진주하면서 해방군이라는 성격보다는 점령군이라는 성격이 강했다.


당시 치안을 관리하던 기존 세력보다는 반공 성향이 강한 일제총독부 관리들을 선호한 것은 이런 이유다. 일본군은 중국 전선에서 모택동의 공산주의 세력과 치열하게 전쟁을 했으므로 일제 시절 공산주의 세력과 전투했던 일제 군인과 친일 경찰을 도리어 신뢰했다.

 

미군정은 일제 시절 일제에 부역한 친일 경찰은 일본에 충성하듯 미군정에도 충성할 것이며 공산주의자를 색출하고 파괴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인적 자원으로 인식했다. 그러므로 친일매국노에 대한 인식은 민족주의자와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친일매국노 청산에 관해선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 중장은 곧이어 미 군정을 설치했고 아베 총독 수하의 일본인 관리들을 미 군정에 고용했다. 해방되었으나 총독부 관리들이 경찰력과 군사 행정 전반을 관장하는 이상한 세상이 되자 해방 뒤 살길을 도모하려고 전전긍긍하던 친일매국노 세력은 살길을 갖게 되었다.


더구나 추종 세력이 적어서 세력 기반이 약했던 이승만은 자신의 기반을 만들기 위하여 독립투사나 항일전선에서 투쟁하던 민족주의자 대신 일제 시절의 군인조직과 경찰조직을 기반으로 정권을 수립하여 해방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맥아더의 원조 아래 정권을 수립한 이승만의 그늘 속으로 친일파 군대조직과 경찰조직, 사법조직, 행정조직이 고스란히 들어서서 초기 정권이 상층부를 장악하면서 민족의 숙원이던 친일파 숙정은 물 건너가 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반민족 행위자 처벌을 위한 반민특위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얼마 뒤 이승만의 지시로 해체되면서 친일매국노들은 다시 제 세상을 만나게 된다.


해방이 되었지만 항일투사와 독립운동가들과 민족주의자들은 도리어 빨갱이로 지목되어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된다. 당시 김종원, 김장룡, 노덕술, 전봉덕과 같은 친일 매국노들이 남한 각지에서 저지른 양민학살행위는 필설로 다 표현 못 할 만행이었다. 보수 정권이 이어지면서 이런 천인공노할 양민살육 행위는 상당 기간 묻힐 수밖에 없었다.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하므로 민족정기를 처음부터 상실해버린 남한 정권은 해방 70년을 넘기면서도 보혁 갈등이 봉합되지 못한 채 피 튀기는 이념 갈등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국부로 추앙받는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여러 학자의 논문과 연구를 통해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이승만에 대한 정확한 진상은 여전히 논란 중이므로 역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보수집단은 이승만을 국부로 박정희를 민족중흥의 영웅으로 추앙하지만, 진보개혁집단은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보수집단과 대척점을 이룰 정도로 서로 다른 것이 아직도 분열주의를 이어가게 만들고 있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진보집단 내에서도 최악의 독재자에서 경제를 살린 대통령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부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미정부의 프레이저 보고서가 나오면서 더욱 비판적으로 변하는 양상이다.


역사를 부정한 나라는 존속하기 어렵다. 식민사관에 철저하게 물든 보수 세력은 아직도 역사 문제에 대해선 식민사관을 고수하므로 이념 갈등은 앞으로도 장기간 이어질 것이며 이를 통해서 국론통일은 요원한 문제가 되었다.


보수언론인 조중동과 이들 언론에 동조하는 보수 성향의 학자들까지 이념 갈등의 한 축을 이루며 승승장구하고 있으므로 이념 갈등의 불길은 진화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올바른 역사를 바로 세우고 후손들에게 알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해방정국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역사논쟁을 통해서 증명되고 있다.


둘로 동강 난 한반도는 동족상잔이란 미증유의 파멸적 전쟁을 겪으면서 더욱 분단의 골이 깊어졌다. 그러다 이제는 강대국의 노리갯감이 되어버렸다. 모든 논쟁과 분쟁과 투쟁을 종식할 유일한 길은 통일 뿐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북미 간에 비핵화를 사이에 두고 어려운 실랑이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북한 당국이 핵을 포기하는 용단을 내린다면 한반도의 전운은 거두어질 것이다. 남과 북이 화합하여 통일의 길로 나간다면 통일 한국은 세계사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해방은 되었지만, 국토분단이라는 더 가혹한 시련을 맞은 한반도. 자주국방도 자립 정권도 허락되지 않는 엄혹한 나라. 대한민국에도 평화의 날은 과연 올 것인가. 평화와 행복은 간절하게 추구하는 자에게 오는 법, 일제 점령으로 야기된 분단의 역사를 통일 대업으로 극복할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극일에 여와 야가 따로 없다. 분열주의를 극복하고 남북대화가 발전적으로 이어져 나가 민족이 하나로 뭉칠 수 있을 때 우리는 참다운 해방을 맞게 될 것이다.


 □ 이영범은 대한민국이 광복되고 두 해 뒤인 194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역사에 깊은 관심을 두었고, 장편소설을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1995년에 이민을 와 현재 노스쇼어에 살고 있다.

 ◼︎ 외부 필자의 글은 뉴질랜드타임즈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영범_1947년생, 오클랜드 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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