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노병(老兵)의 슬픈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으면…”
[특별기고] 한국전쟁 참전 용사의 고마움을 되새기며

2017년 ‘키위-코리안 피스 선데이’ 행사를 마치고.
참전용사 할아버지를 만난 건 20년 전이다. 90년대 이민 초기, 와이카토한국학교·한인회· 교회에서 활동하면서 참전용사와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해밀턴에 지부를 둔 참전용사들의 정기 모임이 있을 때마다 한국학교 학생 및 교민들과 우리의 노래와 춤 등으로 그들의 추억을 더듬으며 보은의 마음을 보탰다.
이야기 하나.
와이카토한국학교 교장으로 봉사하던 2006년 12월. 당시 한국 베테랑협회 회장 로저 할아버지의 초대로 12월 정기 연말 파티에 참석해 한국학교 교사들과 장구춤을 추었다. 우리 학교에 전통무용을 전공한 교사가 있었다. 교사들도 장구춤을 배워 해밀턴시 주관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나 지역 행사에 발표하곤 했다.
열심히 연습했지만, 교사들이 몇 번 배워 발표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한복을 입고! 드디어 베테랑 어르신들 앞에서 음악에 맞춰 뚱따당 뚱땅 장구를 치며 도는데… 아이고! 그만 교사 한 분이 끝 무렵에 한복 자락에 발이 밟혀 완전 꽈다당 넘어진 사건이 발생했다.
아마추어인 우리는 웃음이 나오는 걸 막을 길이 없었다. 보고 계시던 할아버지들도 모두 웃음 반 참음 반으로 그 자리를 우아하게(?) 만드셨다. 교사들은 우리나라를 도와주셔서 고맙다는 보은의 마음을 전하며 할아버지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이야기 둘.
와이카토한인회 주관 교민 차세대 그림 그리기 대회. 로저 할아버지는 ‘로저상’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해마다 5명씩 상을 주셨다. 본인이 보시기에 수상에서 제외된 안타까운 그림을 찾아 더 칭찬하고 격려하고자 하셨던 아름다운 마음이 잔잔한 기억으로 남는다.
이뿐인가…. 6.25만 되면 학교를 찾으셔서 옛날 가평 전투의 생생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의 과거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아이들에게 통일에 대해 말씀하곤 했다. 우리가 갚아도 갚아도 모자랄 분들인데 그분들은 우리 2세들에게 이렇게 큰 선물을 주시고 계셔 늘 감사한 마음이다.
이야기 셋.
2015년 6월 25일,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날은 로저 할아버지의 장례식 날이다. 10년 넘게 해밀턴에서 한국 베테랑협회 회장을 지냈고 그 당시는 한뉴우정협회 고문으로 섬김을 받으셨다. 그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셨던 만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로저 할아버지. 장례식 약 2주 전, 할아버지는 리처드 로렌스 목사님과 나를 불러 장례절차를 의논했다.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얼마 못 사시는 걸 알고 계시는 할아버지는 장례식 주례는 리처드 목사님이, 조사는 누구누구가, 꽃장식은 어떻게 등등 여러 일을 마치 우리가 결혼식 준비를 하듯 하나하나 지시했다.
우리와 다른 장례절차가 생소해 그저 듣고 있는데, 내가 맡을 일을 말씀하실 때는 더 엄청난 문화충격을 받았다. 본인의 운구를 한국 여인 6명이 한복을 입고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아이고, 한복은 색깔이 모두 화려한데 괜찮으세요?” 했더니 무지개 색깔이 더 좋으니 알록달록 있는 한복으로 준비해 달라는 것이었다. 검고 흰 한복으로 해야 맞는데 그것을 여기선 살 수 없어 힘들다는 답변을 드리려던 내 속내는 사그라지고 “알겠습니다!”라는 짧고 간결한 답변으로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리려고 다짐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누가 장례식에, 그것도 여자가 한복을 입고 운구를 하겠는가. 우리 정서상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가고 나는 조바심이 났지만, 마지막 로저 할아버지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어 최종 6명을 정했다. 아마도 이 세상에 다시 없을 전무후무한 한복 여인 운구 대한민국 참전용사 장례식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야기 넷.
1995년부터 시작된 참전용사 섬기기는 중간에 끊기기도 했지만, 어느 때는 한인회도 협조해 지금까지 죽 이어져 왔다. 올해도 6월 20일 ‘Peace Sunday’라는 이름으로 할아버지들과 가족들을 모시고 진행한다.
올 초 돌아가시는 키위 참전용사들과 아픈 분들이 많아져 공식적인 해밀턴 한국 참전용사 모임은 사라졌지만, 해밀턴한인교회에서 주최하는 참전용사 섬기기는 참가가 가능한 어르신들이 계실 될까지 계속된다.
이 행사는 키위 성도들과 함께하는데 예배 중간에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도 듣고, 우리 어린이들의 발표도 펼쳐진다. 올해는 몇 분이나 참석할까 염려하는 것이 전쟁 발발 70년이 되어가는 숫자를 가늠하게 해주어 희끗희끗한 어르신들 머리만큼이나 내 마음도 하얗다.
호국 보훈의 달 6월을 맞아 감사한 마음으로 와이카토 참전용사 이야기를 전하며 오랫동안 참전용사 할아버지 장례 이야기가 들리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고정미_한뉴우정협회 회장, 해밀턴 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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