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교도소(3)

가족교도소(3)

나명균 댓글 2 조회 1628 추천 11

오랫만에 늦잠을 ---   이런 날도 있구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다 준 선물인가?

날이 밝아오는지 살포시 브라인드 사이를 뚫고 아침이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6:40분, 내 일상의 생활에서는 조금 늦은 시간이다. 

거실의 창문을 열어 제끼며, 나의 혼잣말이 뚝 창밖으로 툭치고 나간다.

"와 ~ 이렇게 좋은 날씨, 이렇게 신선한 공기 - 그런데 밖엘 나가지 못한다니 ~ "

감탄사와 절망에 가까운 아쉬움이 동시에 나온다. 

지난 밤에는 정말 단잠을 잤다. 무엇보다도 감사하다.

늘 쪽잠에 시달리던 날들과 달리, 한 번 화장실에 가느라 잠시 깨었을 뿐이었다.


물을 한 잔 마시러 주방으로 나갔다다 냉장고 문에 붙어 있는 <자가격리 기간, 식단표>가 눈에 들어온다.

일정과 조금 차이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지켜가고 있다.

쿡탑 위에 있는 작은 남비를 열어보니, 어제 저녁 먹다 남은 <고추장찌개>가 담겨 있다.

양파와 감자, 텃밭에서 따온 풋고추 몇 개에 돼지고기 썰어넣어 끓인 이 고추장찌개,

자가격리 중이라 두부 넣는 것은 생략했지만, 

고추장을 두 숟가락 퍼넣고 걸죽하게 끓여낸 것으로 우리는 어제 또 하루의 만찬을 해결했다.

그리고 또 작은 남비에 반이나 남았다. 

아이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이지만, 아내와 둘 오전 식사를 해결하기에는 충분하다.


아이들의 도전

식단 문제로 큰 아이가 손수 장을 보아왔다. 

오늘 저녁은 분명 파스타 요리가 나올 것이다. 

새우와 치즈가 듬뿍 들어가는 딸의 크림파스타 요리는 이미 식구들에게는 꽤나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그뿐인가? 생각지도 않은 메뉴로 감히 나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솜씨가 이젠 식구들의 마음을 쓸어간다.

이대로 밀리는 것인가? 한 때는 아빠가 해주는 음식 뭐뭐뭐가 제일 맛있다는 말을 종종 하더니, 

요즘은 그런 소리도 별로이고, 아내도 덩달아 아이들 음식을 더 칭찬한다.

기분이 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도 이게 맞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부모보다 이 세상에 더 잘 적응하는 것도 맞고, 

세상을 그렇게 책임있게 감당해내며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 아닌가? 

이제 부모된 우리는 그들의 삶을 열심히 응원할 뿐 ~


식단은 아빠표와 딸표가 섞여져 두 주간이 흐르고, 

다시 한 번 반복하면 4주간의 자가격리 기간의 먹는 문제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이미 아내는 가장 기본적인 김치와 찬을 준비해 놓았고,

텃밭에는 고춧잎, 근대, 방풍, 대파 등이 아직 여유가 있으니 한 동안은 잘 버틸 수 있겠다.

앞으로 하루 식단비로 20달러 지출을 목표로 하면 일주일의 식비 계산이 나오고,

4주 동안 자동차를 위해 주유소를 한 번도 안갔으니, 그다지 생활비가 지출은 많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 가족교도소 렌트비가 꼬박꼬박 나가는 것이 버거울 뿐이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너무나 당연!

우리의 신앙은 각자 잘 감당해 나가고 -

문제는 많은 시간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이다.

아내가 뭔가 한 참 열중해 있는 나를 향해, "심심하지 않아요!" 묻는다.

나의 대답은 아주 간단 명료했다. "아니요! 전혀!" 내가 뭘 또 실수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랬다. 늘 시간이 모자랐던 나는 이 자가격리가 선언(?)되는 순간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뭔가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동안 보고 싶었던 책을 쌓아 책상 위에 놓고

다음, 유투브 프로그램 중에 몇 가지 테마를 정해 보았다.

늘 생각했던 것이, 뉴질랜드에 살면서 뉴질랜드를 너무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을 좀 해결해보기로 했다.

어딜 멀리 갈 형편이 되지 못하는 내가 뉴질랜드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책과 영상 자료로 접근하는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뉴질랜드 TV프로그램 중에 최장수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1966년 첫방송을 내보낸 프로그램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하면 믿겨질까?

<Country Calendar>라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의 현대 자동차가 협찬하는 프로그램으로 <Hyundai Country Calendar>가 정식 명칭이다.

뉴질랜드의 방방곡곡의 채소농장, 소와 양과 사슴 목장, 양계장, 과일 농장, 꿀 농장, 바다의 어부들 ~

그들의 땀흘리는 삶의 현장과 그 가족들의 단란한 모습이 잘 묻어나온다.

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저렇게 사는구나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을 참 많다.

지식적인 습득뿐만 아니라, 가족을 배려하고 특히 아이들을 배려라는 모습이 퍽 인상깊다.

먼지도 많고 냄새나는 패덕에서 부모와 함께 하는 아이들, 

집에 있는 가축을 품평회에 데리고 나가 하루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건강해 보인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뉴질랜드에도 대규모의 잣 농장이 있다는 것이 놀라왔다.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을 가진 가정이나 젊은이들에게 꼭 추천해 보고 싶다.


- 계속 - 



이 게시글에 달린 댓글 총 2
김현 2020.04.20 10:51  
저도 집.콕이니, 방.콕이니 하는 것이 하나도 지겹지 않는 것이 집에는 놀이감이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것입니다.
일단 인터넷놀이를 할 수 있고, 책놀이도 할 수 있고, 텃밭놀이도 할 수 있고, 운동이 부족하다 싶으면 동네 한 바퀴
걸을 수도 있으니 덕분에 한 달치 생활비를 거저 벌 수도 있는 집 콕이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마당 쓸고 돈줍고하는 그런 유익하면서도 재미나는 놀이라 한 달쯤 더 연장해도 좋겠다라고 말을 한다면 돌이 날아오겠지요?
그러니 그런 말은 눈치를 봐가면서 해야하는데 저는 좀 눈치가 없는 편이라서...
아무튼 이 글이 재미있다는 말을 엄청 길게 합니다.
이참에 집.콕이 심심하지 않는 모임인 <안심심파>모임이라도 하나 만들어야겠습니다.
나명균 2020.04.26 15:18  
안심심파라 ~ 좋군요.
저는 요즘 바리스타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여기저기 다니기를 좋아하는 제 스스로를 <발이 스타>라고 했었는데 말이죠.
엣센셜 워커로 일하는 분들이 커피 주문을 해옵니다.
마치 진공포장을 하듯이 커피 한 잔을 준비하여 우편함에 넣어두면, 가져갑니다.
하루 종일 일하면서 어디서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없다고 하는 이들을 위해서 -
멀찍이 서서 인사만 하고 돌아가는 두 사람 모두 이게 뭐지하는 허탈한 웃음으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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