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교도소(연장 후반)

가족교도소(연장 후반)

나명균 댓글 1 조회 1585 추천 3

어휴 ~ 깜짝이야!

한국에서 조카의 모습이 카톡으로 배달되었다.

한국의 초등학교 교사로 있는 조카가 신랑과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다.

항상 아가씨 같이 갸름하던 조카가 얼굴이 옆에 서 있는 신랑 얼굴처럼 커보인다.

이제 40대 주부가 되니, 자신도 별 수 없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공을 코로나 바이러스에 떠 넘긴다.

집에만 있고, 헬스장에 나가지도 못하여 <확찐자>가 되었다고 ~


오클랜드 우리 집 식구들은 제 각각이다.

누구는 몇 kg이 빠졌다고 하고, 누구는 아무 변동이 없다고 하고

유일하게 나만 몇 kg이 늘었다.

그러고보니, 나만 제대로 관리를 못한 셈이 됐다.

하루 2끼만 먹자고 먼저 제안을 해놓고 먹는 약 핑계로 혼자 세 끼를 꾸역꾸역 다 챙겨 먹었으니

아무런 핑계를 대지 못하겠다.

밥을 먹기 위해 약을 먹는다고 하지만,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었다는 말이 맞는 꼴이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자유하는 것도 문제지만,

약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텃밭 뒤집기

오클랜드의 4월의 평균 기온은 17도이고, 5월은 14도, 

가장 낮은 기온을 나타내는 6월과 7월은 11~12도 내외이다.

연간 평균 기온은 아무리 추워도 10도 이하를 내려가지 않는 따듯한 날씨가 이어진다.

또한, 뉴질랜드의 겨울은 우기철이다.

그렇기 때문에 들판의 식물들은 오히려 새로운 싹을 내기 참 좋은 계절이다.

뉴질랜드 들판에서 소와 양같은 가축을 기르는 목동들은 

봄을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겨울을 기다리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소나 양은 초록빛의 새싹들이 돋아나는 6월이나 7월이면 일제히 새끼를 낳는다.

어린 새끼들에게 새로 돋아난 풀들은 많은 영양을 풍부하게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집에서 텃밭을 가꾸면서도 봄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

봄에는 봄에 맞는 채소들을 심을 수 있지만,

겨울에는 겨울에도 잘 자라는 채소들을 심을 수 있다.

근대, 쑥갓 등 얼마든지 잘 자란다.

이렇게 추위를 견디며 잘 자라는 채소들을 섭취해야 감기도 이겨내며

겨울을 거뜬히 날 수 있다.

마트에서 파는 채소들은 어떻게 하면 더 연하고 부드럽게, 혹은 달콤하게 길러 낼까가 목적이다.

약해빠진 풀들을  먹다보면, 우리 몸의 이도 위도 연한 것에만 길들어지서 약해 질 수 있다.

면역력도 마찬가지이고 ~

이것은 학자의 말이 아니라, 그냥 내 나름의 생각이다.

독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싶다.


하여, 자가격리 동안 하루 시간을 내어 아내와 함께 뒷곁의 텃밭을 다 뒤집어 엎어 놓았다.

작업복을 차려 입는 나를 향해, 아내가 말을 건낸다.

"뭐 하려고요? 어디 가요?"

사실, 아내 몰래 살짝 텃밭을 정리하려 했는데 들킨 것이다.

하라, 해달라 말하지는 않고, 텃밭을 어떻게 해야 하나 궁시렁 거리던 아내에게 깜짝쇼를 하려다가 ~

그렇게 하여 얻은 수확물들로 풍성함을 누린다.

더덕을 다듬어 어느 정도 짓빻아 고추장 양념구이를 해내고,

우엉 뿌리로는 조림과 장아지를 담그고,

야콘은 날 것을 깎아 먹고,

돼지감자는 깍두기를 담았다. 


잔디를 깎아 모아둔 것이 좋은 거름으로 변해 있었다.

텃밭에 여기저기 섞어 놓으면, 봄 시즌 새로 파종을 하고  모종을 할 때 아주 좋을 것이다.

휴 ~ 힘들지만 이렇게 해야 아내에게 점수도 얻을 수 있고, 아내와 함께 펑버짐하게 앉아 흙도 만져보고 좋았다.


마스크

"와! 웬일이시오 ~ "

아내가 한인마트엘 다녀오겠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아내는 정식 자가격리 기간과 이어진 연장전 동안 단 한 번도 대문밖을 나가지 않았다.

오로지 재봉틀 앞에 앉아서 부지런히 마스크를 만들어냈다.

만들어낸 마스크가 이제는 아주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나 필요하지, 다 끝나면 빛도 보지 못할 것같다.

그런데도 아직은 누굴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정해진 법을 지켜야 한다고 나누질 못했다.

오늘 마트에 간 것도 지퍼백과 커피 필터 종이를 사러 간 것이었다.

마스크를 나눠 줄 사람들 이름을 죽 적어놓고, 가족 식구대로 몇 개씩 넣어 놓는다.

제발 저 아름다운 섬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할텐데 말이다.

만약 내가 마스크를 받으면 나는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안할 것이다.

그냥 걸어놓고 구경할 참이다. 저리도 열심히, 정성스레 만들어 냈으니 ~


연장전 막바지

이제는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라도 경제도 학교도 교통, 비즈니스 등 모든 일상이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근 두달을 자가격리한다고 집에만 머물러 있었더니, 

온 몸이 또 그 생활에서 굳어지는 것같다.

근육이며 어디며, 심지어 마음이며 모든 것이 비정상에 멈추어져 있다.

하여, 남은 자가격리 연장 막바지는 정상의 생활을 미리 살아야 한다.

일어나는 시간도 일상의 생활 시간에 맞추기 시작한다.

침대의 이부자리에서 나오는 시간에서부터 

하루 종일 집에 머물겠지만, 세면, 면도도 깔끔히 하고, 화장수도 한 방울 찍어 바르고

아침 식사를 하는 것도 그렇고 ~

학교다니는 아이에게도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한다.

아내와 재택근무를 하는 큰 아이는 늘상 일어나는 시간이 변함이 없다.

최소한 일주일 정도만이라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이제 연장 후반의 마지막 휫슬이 울리기만 기다리고 있다.

모두들 잘해냈다. 

우리 가족교도소의 생활도 나름 즐거웠다.

지인들이 더러 우리 가족교도소를 방문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온다.

기꺼이 맞겨 맞을 날이 곧 오리라.

총리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겨울의 끝은 봄이라고 말이다.

함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봄날을 기대해 보자.

그러나 봄날을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나의 봄날을 스스로 개척해보자.


< 끝 >

이 게시글에 달린 댓글 총 1
jinie 2020.05.21 11:46  
록다운 기간동안 글을 읽으며.. 저도 가족교도소에 방문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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