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화의 상담 이야기] 두려운 시간은 지나간다

[정인화의 상담 이야기] 두려운 시간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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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화의 상담 이야기(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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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19 때문에 뉴질랜드 정부는 국가 봉쇄(Lockdown)를 명했다. 정부에서는 하나의 집을 비눗방울(bubble)이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같은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은 한 비눗방울 안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국가 봉쇄를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났다. 처음에는 두려움에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몸집이 커다란 다섯 명의 어른이 조그마한 집에서도 함께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들이 눈에 띈다. 조금씩 짜증이 난다.

 

별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사건에도 말투가 짧고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속한 비눗방울이 터지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된다. 집 밖으로 나가 걸으면 달아오른 기분이 가라앉을 것 같다.

 

하지만 밖에 나가려고 하니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몰라 슬그머니 걱정이 든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지 동양 사람에 대한 공격이 늘었다는 기사들이 머리에서 맴돈다. 아직 오클랜드에서는 그런 공격이 있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기에 나 자신을 위로하며 신발 끈을 묶는다.

 

집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가면서 최근에 겪었던 일이 떠 오른다. 사무실에 앉아 몇 번 기침했다고 동료가 상사에게 일러바쳐서 병가를 내고 집에 갔던 일부터 식당에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재채기가 나와 많은 사람이 찡그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던 일들까지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간다. 죄지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못 했던 순간들이었다.

 

위험과 기회라는 뜻을 가진 위기(危機)라는 말이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나는 위기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많은 피상담자가 위기 상황에서 상담실 문을 두드리고 새로운 방향을 찾아 나서는 경우를 종종 봐 왔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도 최근에 위기를 여러 번 맞았다. 크라이스트처치를 강타했던 지진부터 모슬렘 사원 총격 사건까지 다양한 위기를 겪었다. 그런 위기를 견디어 내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나가는 공원에서 스쳐 지나갈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을지 궁금해진다. 걷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인지 서로들 멀찍이 떨어져 걷고 있었다. 앞에서 오는 사람들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웃는 얼굴로 헬로우를 외치며 지나간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동양 사람에 대한 차별과 공격을 두려워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부끄러움을 숨기면서 그들에게 눈인사로 답한다.

 

걸으면서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뉴질랜드에서 내가 가끔 느꼈던 두려움은 실패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주위로부터 소외당하면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때마다 찾아왔다. 남들과 하나 되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것이 죽음보다 두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두려움이란 내가 원하는 게 있는데 그것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기는 불안감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자신이 없고 또 그 결과를 이룰만한 충분한 노력도 안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두려움을 혼자서 직시하지 못했을 때 투사(投射) 같은 방어기제를 남들에게 사용하기도 했었다. 네가 뭔데 나를 안 끼워주느냐고 비난을 하면서 싸우거나 나 스스로 외톨이가 되거나 비난당할만하다고 자기 비하를 하기도 했었다. 어떻게 보면 약점을 들키는 게 두려워 공격적으로 나를 방어했거나 상처받은 마음을 다룰 줄 몰라 자신을 비난하면서 자존심까지 잃어 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폭력적으로 나올 경우에는 무조건 피한 적도 있었다.

 

상대를 비난하는 사람의 목표는 그들의 말에 내가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싶은 가학적인 심리가 내재하여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의 무의식적인 목표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대로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내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한두 명이 싫어한다고 내가 나쁜 사람이거나 못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실을 계속 되뇌면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않냐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나를 좋아하며 그들의 의도가 나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그들이 비난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내가 그들이 하는 말처럼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상처받을 일도 적어진다.  비난 하는 행동은 인정하더라도 비난 자체를 인정하지는 말자. 그 순간에 그 비난이 사실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두려움을 느낀다. 육체적인 죽음부터 창피함이나 수치심 등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자아의 죽음까지 다양한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도 좋겠다. 그 맞서는 과정에서 자책하거나 지난 일을 곱씹지 말자. 100% 완벽함이란 세상 어느 곳에도 없기 때문이다. 누가 알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육체적인 근육뿐만 아니라 마음의 근육까지 발달해 어려운 세상을 잘 헤쳐나갈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는 위기 상황에 부딪혀있다. 세계가 걸어온 패턴을 보면 우리는 위기를 이겨내고 다시 번영할 것이다. 그런 희망을 품고 있더라도 현실 속에서는 지뢰밭을 걷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를 처리하기 힘들어 서로를 밀어내고 상처를 주기가 쉽다. 이런 행동을 고쳐 주려고 하거나 참고 대응하는 대신에 그 이유를 알아보자. 이유를 알기 위해 물어보기 시작하면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서로가 이해하려는 의도를 행동에 옮기면 하루아침에 가까워지지는 않겠지만 하루하루 충실하게 그 과정에 집중하면 우리들 관계가 더 가까워질 것 같다.

 

물론 하다가 힘들면 한두 번의 심호흡을 통해 자신을 가라앉히고 나서 상대방에게 반응하는 것도 괜찮겠다.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가 거주하는 비눗방울이 깨지지 않고 다 같이 한꺼번에 나오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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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화 _심리 치료사 

021 0262 3579
junginhwa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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