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블루-공감하고 공감받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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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 영의 건강 읽기(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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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즈음에는 레벨 2였다. 그때만 해도 일 년 후에는 훨씬 자유로운 일상일 것이라 기대했었는데. 

델타 변이로 5주 넘게 격리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작년과는 또 다른 심리적 부담이다. 국가적으로도 경제는 물론이고 높아지는 멘탈 헬스 문제를 심각하게 주목하고 있다.

나도 약간의 무기력과 우울감이 느껴진다. 하물며 경제적 문제나 지병이 있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한의사로서 이런 어려움에 능동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무력감과 오랜 격리 생활로 인한 우울감이 아닌가 싶다.

뉴질랜드 한의사는 레벨 3인 경우에 공식적으로는 유선으로 상담과 처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의사도 환자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낯설다.


그러던 중 불쑥 올라오는 생각이 있었다.

‘락다운으로 신체적, 물리적 격리가 됐을지언정 내 마음까지 격리된 건 아닌데...’


‘버튼 하나만 누르면 전 세계 친구, 지인 누구와도 실시간으로 통화할 수 있는데...’

‘통화료 걱정도 없고, 심지어 화상 통화도 할 수 있는데...’ 


‘페이스북, 카톡, 기타 소셜네트워크 친구 지인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연락 안 할까...못할까...’


그렇게 헛헛한 마음을 달래 보려 읽게 된 책이 있다.

<당신이 옳다>라는 제목의 정신의학과 상담전문의가 쓴 책이다.

저자인 정혜신 님은 격리 생활 동안 정말 좋은 소통의 상대가 되어 주었다. 글을 읽으며 깊은 공감을 주고받았다. 


무기력한 일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경계와 공감’에 대해 생각해 보며 희망을 찾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내려 놓는듯한 가벼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헛헛한 마음 달래려 읽게 된 <당신이 옳다>

마음의 허기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는 문구가 먼저 눈에 꽂혔다.

만성적인 ‘나’ 기근과 관계의 갈등에 시달리는 우리들이라는 문구도 내 마음을 건드린다. 


‘적정기술’을 보고 ‘적정심리’를 생각했다는 저자의 말은 큰 울림을 준다. 

아래 사례의 디자이너와 저자는 분명 ‘따뜻한 마음’과 ‘전문가의 소양’을 가진 분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적정기술

아프리카 어느 마을. 식수가 부족해 아이들은 아침 일찍 물동이를 지고 물을 길으러 나선다. 몇 시간을 걸어가서 물을 길어, 이고 지고 되돌아온다. 아이들의 불완전한 걸음과 부실한 물동이 때문에 절반은 돌아오는 동안 흘러서 사라진다.


그 딱한 사정을 접한 디자이너가 사람들과 힘을 합쳐 큰 공(드럼통) 모양의 물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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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아이들의 삶은 달라졌다. 아이들은 물을 꽉 채운 물동이를 놀이하듯 굴리며 돌아온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양의 물을 운반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저장도 가능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물 긷느라 갈 수 없었던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의 삶도 달라졌다.


아주 간단한 물통 디자인 하나가 바꿔놓은 일상의 기적이다. 흔한 적정기술의 한 사례다.


적정기술은 화성 이주를 꿈꿀 정도로 환상적인 과학기술이 넘쳐나는 시대에 간단하고 일상적인 기술의 결핍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주목에서 비롯한 개념이다.


전 지구적으로 식량이 넘쳐나는데 굶어 죽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이유를 따져 묻는 것과 비슷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이 대목에서, 전 세계 어디든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일상화되었는데 나는 왜 소통에 목말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집밥 같은 적정심리학

적정한 기술이 사람의 삶을 바꾸듯 적정한 심리학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나와 내 옆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소박한 심리학을 저자는 ‘적정심리학’이라 이름 붙였다.


만약 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음식을 할 수 있다는 법이 있다면 우리 일상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조리사가 해준 고급 요리는 안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집밥을 오래 먹지 않으면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해진다. 그런 것이 집밥이다.


물리적 허기만큼 수시로 찾아오는 문제가 인간관계의 갈등과 그로 인한 불편함이다.


일상에서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으면 짜증이 많아지거나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무기력해진다. 마찬가지로 삶의 바탕인 인간관계의 갈등들이 해결되지 않고 쌓이면 마음도 엇나가고 삶도 뒤틀린다. 


안정적인 일상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집밥 같은 치유다. 집밥 같은 치유의 다른 이름이 적정심리학이다. 그런 적정심리학의 핵심이 경계와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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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와 공감 

국가는 독립적인 영토를 가진다. 국가마다의 역사, 법, 언어, 문화와 풍습을 가진다.

나라마다 그들 고유의 음식 문화도 다르다. 기후도 다르다. 추운 나라도 있지만 1년 내내 더운 나라도 있다. 안정적인 지질 조건을 가진 나라도 있지만 잦은 지진과 태풍으로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나라도 있다.


지하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있고 풀 한 포기 제대로 나기 어려운 척박한 땅이 국토의 대부분인 나라도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국가처럼 각각 모두 고유하고 개별적인 존재들이다.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개인의 역사를 가진다.

성격과 기질도 다르다.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도 그렇다. 말투나 심성, 취향이나 취미, 식성이 다 다르다.


같은 나라가 둘 존재하지 않듯 같은 사람이 둘 존재하지 않는다. 작든 크든 국가 대 국가는 일대일의 존재감을 갖는 것처럼 각각 하나의 우주로 일컬어지는 사람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국가 간에는 국경이 있다. 국경은 한 국가의 물리적 정체성의 마지노선이다. 국가의 국경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경계가 존재한다.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너와 나를 구분하는 경계 말이다.


그런데 사람 사이의 경계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지키는 일이 어렵다. 경계를 인지할 수 있어야만 나도 지키고 상대방을 침범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경계가 뚫려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내가 타인의 경계를 침범해서 마구 짓밟고 훼손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상대방을 사랑해서 그랬다는 등 진심을 몰라줘서 답답하다는 등 자신이 피해자인 줄 착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본인이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사람 사이의 경계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다. 


사람 사이의 경계를 지킬 수 있으려면 경계를 인식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공감을 주고받는 일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가 ‘너’인지 경계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너를 공감해야 할 순간인지 내가 먼저 공감을 받아야 하는 건지 알아야 너와 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공감을 할 수 있다. 경계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공감에 대한 정확성이 높아진다.


경계와 공감의 의미를 다시 새기며 헛헛했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자격증 있는 사람이 치유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치유자.’라는 말이 귀에 맴돈다.



◼ 나누고 싶은 건강 노하우가 있으시면 연락 바랍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칼럼이 되면 좋겠습니다.


김영철 한의사

027 630 4320  ㅣ  tcmykim1218@gmail.com

Balance Young Clinic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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