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일상 톡톡] AKO

[백동흠의 일상 톡톡] A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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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버스 인스팩터실 앞에 가니 BOBBY가 오늘 해야 할 업무를 알려준다. “FRANCIS, 오늘은 이 신입사원에게 버스 운전지도를 해주는 게 일과요.” “Oh Yes!” 뉴질랜드 출생, 키위가 졸병으로(?) 내 쪽으로 다가온다. 반갑게 웃으며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는 모습이 편안하다. FRANCIS라고 내 이름을 소개하자, 자신은 LYNNE이라고 알려준다. 


벌써 나도 이 회사에서 얼추 버스 드라이버 중간고참쯤 되는가. 자신의 Teal(돈통)과 Roster(근무표)를 든 졸병을 앞세운다. 지정해준 95번 버스에 함께 올라탄다. 뉴질랜드, 8월의 첫 날이 자목련의 꽃망울처럼 환하다. 좋은 날, 졸병에게 경험을 나누라는 업무가 참 새삼스럽다. 불과 10개월전, 내 모습이 바로 저 LYNNE 같지 않았나?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 . 


버스 운전을 시작하기 전, 준비작업을 먼저 하는 것. 하나씩 직접 해보게 한다. LYNNE이 순서대로 차분하게 해 나가는 걸 보고 나 역시 마음속으로 따라간다. BDC(Bus Driver Console)에 본인 ID와 Pass Word를 입력한다. 다음은 Roster 번호를 누르고, 노선 번호와 출발 시간을 셋팅한다. 윈드 스크린 위에 있는 행선지 전광판에 노선 번호와 행선지가 나오게 지정된 숫자를 쳐 넣는다. 운전하는데 중요한 일, 몸을 버스에 맞추는 작업을 한다. 


먼저, 운전석 시트 위치를 조정한다. LYNNE 은 나보다 영어사전 한 권 높이만큼 더 작아 신경을 많이 쓴다. 이어 스티어링 휠(핸들) 높이를 최대로 낮춘다. 다음은 Mirror 조정이다. 운전석 바깥 사이드 미러와 반대편 것도 맞춰가며 조정한다. 이제 출발할 차례다. 기도하듯 마음을 가다듬는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출발~ LYNNE은 직접 운전하고, 나는 그 뒤에서 지켜보며 필요 시 안내를 해 준다. 


이른 아침, 기본 노선 Bayview 에서 Takapuna까지 가는 길에 출근 승객들이 꽤 나와있다. 타는 승객들에게 일일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정겹다. 크게 회전하는 코너 길에서 작은 몸집으로 큰 스티어링 휠을 감싸 안고 연거푸 돌리는 자세가 진지하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에 배여 있다. 뭐지, 이런 느낌? 노동의 신성성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 집안의 가장이기에 앞서 한 인간이다. 작은 몸집 위아래가 정신 없이 바쁘다. 작은 팔로 휘 감아 돌리고 돌린다. 작은 다리, 오른 발이 브레이크 페달과 악셀 페달 사이를 넘나든다. Smales Farm 플랫폼에 다다르자 승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듯 내리고 밀물처럼 올라탄다. 환승역답다. 


시내로 오고 가는 모터웨이 버스 승강장이 꽤 북적댄다. 사람 사는 체취가 물씬 풍겨난다. 저마다의 가정에서 가족으로부터 격려인사를 받고 나온 발걸음 들.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발걸음 소리가 대장간의 합창처럼 경쾌하다. 내가 직접 운전할 때는 많이 못 느꼈던 걸 옆에서 지켜보니 새롭게 들어온다. 


Takapuna 종점에 이르러서 10분간의 휴식시간. LYNNE이 급한 모양이다. 그가 인근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버스 안을 둘러보며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주워서 버린다. 승객이 타기 전, LYNNE에게 한가지 팁을 설명해준다. 


버스 정거장에서 설 때, 가급적 평행 주차하라고. 버스 앞 문 쪽은 승객 타는 인도를 향하면서 뒤 꽁무니는 차도를 향해 삐딱하게 서면 위험하다고. 뒤에 오는 다른 차를 막는 걸림돌이 되니까. 안전한 버스 운전은 평소 좋은 습관의 누적이 몸에 배서 나온 거라고. 여러 코스로 바꿔가며 오전 버스 운전을 마무리 하고, 회사에 들어와 중간에 한 시간쯤 휴식. 오후는 시티로 나갔다가 퇴근 승객을 태워 노스쇼어 쪽으로 나르길 세 차례. 하루가 금새 간다. 


짬짬이 쉬는 시간마다 One Point Teaching을 A4종이에 써주고 그려가며 알려준다. 예전 나의 버스 운전 트레이닝 때, Filipo가 나에게 알려주었던 유언같은 문구. 형광펜으로 덧칠하며 강조하다 보니 감회가 새롭다. 


Nice & Smooth! 이것을 잘 지키면 승객도 편안하고 운전사도 평정을 갖는다고. 더해서 버스 운전 철칙 5가지. 첫째 Safety, 둘째 Safety, 셋째 Safety, 넷째 No Complaints 다섯째 Timing. 사고 없이, 컴플레인 없이, 시간 맞춰 운전하는 것. LYNNE가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오히려 LYNNE더러 고맙다고 머리를 숙인다. 


왜 냐고 묻길래 A4종이에 써 준다. 마오리 말에 AKO 리는 말이 있다. 가르치다. 배우다. 두 뜻이 함께 들어 있다고. LYNNE이 눈을 크게 뜬다. 내가 고맙다고 인사한 까닭을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일을 마치고 빈 버스로 회사 Depot로 향하는 서쪽 하늘에 저녁 노을이 말갛고도 붉게 물들어 오고 있다. 하늘도 8월의 첫날을 잘 마무리 한 모양이다.* 


백동흠<수필가>

2015년 [에세이문학] 등단

2017년 [재외동포문학상 대상] 수상

BIRKENHEAD TRANSPORT 근무 중

글 카페: [뉴질랜드에세이문학]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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