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전원일기] 빨간 바지를 입은 사나이

[뉴질랜드 전원일기] 빨간 바지를 입은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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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전원일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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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 넘은 아들애가 빨간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이라니.
좀 전까지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던 내 얼굴은
어느새 손자처럼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되돌아와
혼자서 헤벌쭉 웃고 있었다.

 

1월 들어 하지를 넘기고 나자 한여름 땡볕이 여간 따갑지 않다. 비를 구경 못 한지도 꽤나 오래된 것 같다. 농장으로 들어서는 진입로에는달리는 자동차 뒤로 먼지가 뽀얗게 일고 트랙터를 몰고 밭을 가는 남편 주위로도 흙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이럴 때 시원한 소나기라도 한줄기 좌악좍 뿌려줬으면 좋으련만 장기예보 어디에도 비 소식은 없다. 이렇게 타들어 가는 가뭄 속에 어렵게 씨를 뿌려 싹 틔웠던 열무며 알타리가 벌써 한 달 가까이 끊겨서 나오지않고 있다.


간신히 고개를 내밀고 나와 자라던 싹들을 오리라는 불청객들이 나타나 아구아구 깡그리 먹어 치운 탓이었다. 아무리 쫓아도 잠시만 한눈을 팔다 밭으로 가보면 놈들이 여전히 나타나 모듬찌게를 먹듯 골고루 잘도 먹어 치웠다.


농사라는 게 내 노력으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기를 쓰고 매달려도 안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면 속수무책 가슴을 태우며 먼 산만 바라볼밖에. 


하는 수 없이 집 가까운 곳으로 밭을 옮겨 새로 시작하는 맘으로 골을 타고 이랑을 만들어 씨앗을 뿌렸다. 작물들이 끊기지 않고 이어서 나올 때는 기다리는 마음이 그다지 조급하지 않다.그러나 처음 심어놓고 첫 수확을 기다릴 때는 아무리 봐도 그냥 그대로 자라지 않는 것 같고 한없이 더디게만 느껴진다. 거기다 매주 한 번씩 씨를 뿌려야만 대를 이을 수 있어서 늘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더구나 열무 같은 경우는 뽑기 시작하면서부터 쑥쑥 자라면 금세 억세지고 키가 웃자라 자주 씨를 뿌려주고 신경을써야 한다. 이번에도 지난주에 이어 열무 한 줄을 골을 파서 심어놓고 싹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주 석줄 뿌리고 한 고랑 여유 있게 남겨놓은 곳에다 뿌린 씨였다. 요즘같은 여름철에는 뿌린 씨앗들이 4~5일만 지나면 싹이 트는 게 보여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기다렸다. 그러면서 남편한테 옆으로 이어서 밭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드디어 수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첫새벽에 밭으로 달려갔다. 싹이 나오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망을 씌워주지 않았기 때문에행여 새들이 쪼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새보다 먼저 밭으로 달려갔다.

20년 넘게 농사를 지었어도 새싹이 나오는 날은 언제나 설레는 마음으로들여다보게 된다. 가뭄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나오는 새싹들은 얼마나 갸륵하고 애틋해 보이는지 이런 맛에농사에 푹 빠져 사는 게 아닐까 할 정도다. 그저 귀하고 예쁘게 보일 따름이다.


‘어! 그런데 이게 뭐지?’

잔뜩 새싹을 기대하고 밭으로 달려갔던 나는 잠시 멍한 기분이 들어 어리버리한 눈으로 밭을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지금쯤 첫새벽 이슬을 머리에 이고 어여삐 고개를들고 나왔겠지 했던 싹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곱게 갈아놓은 밭이랑이 나를 반길 뿐이다.


아뿔싸. 한 줄 남은 고랑에다 씨를 뿌려놓은 줄 모르고 남편이 홀랑다 갈아엎어 새밭을 만들어 놓은 모양이었다. 씨를 뿌려놨으니 한 고랑은 그대로 두라고 이르지 못한 내탓이 컸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사실을 상대방도 자연히 알고 있으리라는 내 추측이 어이없게 빗나간것이었다.


내 탓이었음에도 골을 파고 씨를 뿌린 흔적을 알아보지 못한 남편한테 원망의 화살이 돌아가 속이 마구 끓었다. 그 긴 밭을 화전민 밭 일구듯 괭이로 골을 파고 씨앗을 뿌리고 다시 덮고를 반복했던 내 노력이 말짱 헛일이되고 만 것에 속에서 용암이 끓어오르듯 부글부글 끓었다.


첫새벽 아무도 없는 빈 밭에서 혼자 속을 끓이노라니 머리가 빙 도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이미 갈아져 버린 밭을 두고 남편한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혼자서씨근덕거리다 불화로의 재를 삭이듯 스스로 사그라지도록 심호흡을 해가며 밭둑을 걸어 나왔다. 맑은 아침공기 덕분에 조금씩 나아지는 기분이다.


걸어오면서 출근 준비로 바쁠 아들애한테 카톡을 날린다. 오늘 아침망쳐버린 엄니의 심정을 일필휘지하여 장문의 글을 보냈다. 곧이어 답장이 날아왔다.


“이 사진 보고 웃으면서 다시 시작하시어요”라는 글과 함께 빨간 바지를 멋지게 입고 장난기 가득한 제 아들을 무릎에 앉힌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마흔 넘은 아들애가 빨간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이라니. 좀 전까지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던 내 얼굴은 어느새 손자처럼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되돌아와 혼자서 히죽히죽 헤벌쭉 웃고 있었다.


아들은 늘 그랬다. 농사를 짓다 남편과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거나힘겨울 때 남편 흉을 잔뜩 써서 카톡으로 보내면 답장으로 손주들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사진을 골라 보내며 웃으며 지내시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절대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면서 서로를 감싸 안도록 만들어주었다. 고맙게도필요할 때마다 꼭맞는 묘약을 처방해 주는 것이었다. 하긴 얼마나 우스우랴. 엄마 아빠가 다툰다고 누구를 두둔할 수 있으랴. 아들한테는 엄마아빠 다 소중한 제 부모인 것을.


나는 그런 아들이 또 고맙다. 비록 화날 때는 남편에 대한 불평을가득 늘어놓지만 흔들리지 않고 중립에 서 주는 아들의 현명함이 좋은 것이다. 엄니를 이해하고 위하는척하면서도 아버지를 챙기는 그 넉넉함이 참으로 좋다.


아무렴 까짓거. 열무씨 한 줄 날려버린 게 무예 그리 대수겠나. 저 빨간 바지의 아들이 아버지라는 중심축이 없었다면 어찌 우리 곁으로 올 수 있었을까.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무니 날 키우시니….


가족의 중심이요 씨앗인 아버지가 있음에 농장이 살고 우리 가족이 사는 것임을 열무씨 한 줄 날려 먹으며 더욱가슴 깊게 되새기게 된다. 빨간 바지를 입은 사나이 덕분에 열무 한 줄의 명상을 얻은 셈이다. 좋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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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순 

1953년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서 태어나 1982년 아동문학연구로 동화작가로 등단. 아동문예 신인상, 동쪽나라 문학상, 대교출판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동화집 『콩콩이가 된 시인아저씨』, 『백설공주를 미워한 난장이』, 『뉴질랜드로 이민 간 종일이네 가족』과  『행복한 이민자들』(공동 집필)을 펴냈다.1994년에 이민 온 뒤 현재 워크워스에서 한국채소 농장을 20년째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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