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전 상서

형님 전 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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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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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되면 부모님께 글 한 줄 상서하는 것이 ‘이민살이’하는 저의 도리일진대… 어머니 용안 우러르는 심정으로 형님께 글 올립니다.


형님 전(前) 상서(上書)라 쓰고 보니 어머니 계시지 않음이 헛헛하게 가슴에 와닿습니다. 세월 가면 그때도 어머니를 내려놓지 못하냐 할지 모르지만 아무리 세월 가도 어머니는 가슴에서 내려지지 않는 짙은 그리움입니다.


특히 설날엔 이민 가겠다는 제 손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가서 잘 살아라”며 소나무 등걸 같은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 훔치시던 어머니 모습이, “뉴질랜드로 가라. 너 뒤돌아보지 말고 가라고 어머니가 먼저 가셨구나”던 형님의 쓸쓸한 목소리가 가슴을 후빕니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늙는다는 것은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것인가 봅니다.


보내주신 건축 전공한 유일이가 설계하고 완공하고 명명하고 건축으로 세상을 조명한 단독 3층집 ‘통(通)하는 집’ 동영상을 봤습니다. 


건축에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그 집은 유일이 말처럼 모든 것들이 통할 듯했습니다. 바람도 햇빛도 사람도 거리낌 없이 드나들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허세 과시 질투 모략 단절 불통이 넘쳐나고 하늘 찌를 듯 높게 서서 두 눈 부라리며 안으로만 웅크린다는 아파트촌이 아닌, 바람 자유롭고 산세 여유롭고 새소리 풍요로운, 찬란한 초원의 빛이 부양하는 파주 땅 드넓은 들판에 우뚝 선 통하는 집은 형님이 ‘이제 다 이루었다’며 하늘에 감사해도 될 듯싶었습니다. 물질적인 것과 더불어 영혼도 그렇기를 기도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형님은 재벌도 아니고 물질적으로 거대한 부(富)를 축적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다소 여유롭고 춥지 않고 배곯지 않는 노년의 삶은 그만하면 축복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먹고 입을 것들을 대대손손 물려줄 만큼 차고 넘치도록 쌓아야 비로소 이뤘다고 하는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사람들의 눈에는 미미한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형님의 성정으로 추측건대 분명히 물질적인 이룸보다는 정신적인 이룸에 더 침잠하였을 거라는 믿음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이루었다는 것은 자기 크기만큼의 잣대이지 타자의 크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나의 잣대로 타자의 이룸과 못 이룸을 단언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두 동생 험한 세상에 설 수 있도록 터 잡아 주시고, 딸 셋 아들 하나 모두 잘 키워 다들 부족함없이 넉넉하게 사는 모습에 걱정 내려놓고 감사하는 형님이 이젠 막내아들이 지은 통하는 집 3층 형님 방에 앉아 창문 너머 가까운 심학산을 평온한 눈빛으로 내다보는 삶이야말로 참 이룸 일겁니다.


사진으로 보여준 심학산은 신화 속의 산처럼 우뚝하고 아득하지 않아서 반가웠습니다. 심학산의 낮은 등성은 누구든 오라고 손짓하는 듯이 넉넉함을 보여줍니다. 


겸손하고 다정다감하고 무엇이든 주려고만 하는 형님의 모습을 닮은 듯 따뜻하고 편안한 모습이어서 살갑습니다.


통(通)하는 집의 ‘통’함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함께 어우러질 때 더 찬란한 빛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통한다는 것은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마음이 열린다는 것일 겁니다. 마음이 열린다는 것은 함께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제각각 개성이 뚜렷한 세상에서 함께한다는 것은 ‘우김질’보다 배려와 양보가 먼저일 거라는 생각입니다. 함께 함은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겁니다.


이민살이는 낯선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사는 겁니다. 모여들기 전까지 제각각의 생각만으로 세상을 살아왔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들이 이민살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저만의 생각을 고집한다면 징역살이처럼 우김과 다툼과 상처가 그치질 않아 매일매일 소방호스로 물 뿌림을 당할 겁니다. 


하지만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바르고 따스한 삶의 길을 염원하면서 상대방을 품어 안는다면 견디기 힘든 징역살이 한겨울 추위도 서로의 체온으로 녹여내듯 훈훈하고 함께하는 세상이 될 겁니다. 


이민살이가 이러할진대 세상살이야 말하면 뭐 하겠습니까. 내가 아닌 너에 대한 배려와 소통은 평화와 안녕을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서로를 안아주는 통하는 세상이야말로 눈부신 세상일 겁니다. 가정도 그러하리라 생각됩니다. 


노을 진 들녘의 사진을 찍고, 음악에 맞춰 작은 몸뚱이를 흔들며 환호하는 손자 은율이 한율이 모습에 손뼉 치며 흐뭇해하는 형님의 모습이 다 이룬 후의 평화 같아서 형님의 영혼에 감사드립니다.


감히 외람되이 건방진 말씀 올린 건 아닌지 염려됩니다. 새해 더 강건하시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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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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