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 아메리카 원주민.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 아메리카 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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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의 책따라 생각따라(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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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호주 요양병원 간호사가 쓴 글이 화제가 되었다. ‘죽을 때 후회하는 다섯 가지’라는 기사이다. 

첫째,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점. 둘째, 일을 너무 열심히 한 점. 셋째, 감정표현에 솔직하지 못한 점. 넷째, 친구들과 자주 연락하지 못하고 가까이 지내지 못한 점. 다섯째,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점이다.

정운현은 대학을 마친 후, 중앙일보에 입사해 현대사 연구소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오마이뉴스의 초대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제2 반민특위’의 사무총장으로 친일파 청산 작업을 했다. 

원주 상지대에서 초빙교수를 하던 중 이낙연 총리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었다. 저서로는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친일파는 살아 있다>, <안중근家 사람들> 등이 있다. 

자기 뜻을 살려 세상에 큰 흔적을 남긴 동서고금의 12인의 이야기를 엮었다. 왕위를 포기하고 구도자가 된 석가모니, 술 한 잔에 시 한 수의 김삿갓, 단종 폐위에 맞선 생육신 김시습, 세 차례 유배, 여섯 차례 파직을 당한 허균, ‘나는 한 마리의 개였다’고 한 이탁오, 불온한 조선 청년 박열을 사랑한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 행동적 경제학자이면서 실천적 생태론자인 니어링, 하버드 대학교 출신의 ‘통나무’ 집에 산 자연인 소로우, 운동권 출신으로 협동조합 운동가 장일순, 밤농사를 지으며 친일파를 연구한 임종국, 우유 팔아서 ‘민족사관고(民族史觀高)’를 설립한 최명재, 그리고 자유로운 삶을 살다 간 농부 작가 송성영이다.

인도의 석가모니의 본명은 고다마 싯달타이고, 고다마는 ‘가장 탁월한 수소’를, 싯달타는 ‘목적을 달성한 자’를 뜻한다. 석가는 ‘사카’ 부족을 이르는 말이다. ‘모니’는 성자(聖子)를 뜻하는 ‘무니’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석가모니는 ‘사카 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흔히 석가모니는 세존(世尊), 붓다 등으로 불린다. 붓다의 중국 음역으로 ‘불타(佛陀)’라고 하고 약자로 불(佛)이라고도 부른다. 붓다는 ‘깨달은 자’를 뜻하며, 소위 ‘부처’라고 통용되고 있다. 무력을 쓰지 않고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전륜성왕이 되었다.

미국의 소로우(1817~1862)의 대표작인 <월든>은 그가 살았던 콩코드의 호수 이름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후 기자 생활을 하다가 1845년 말 동네 호수 근처에 통나무집을 짓고 자연인으로 2년여를 살았다. 그때의 생활과 생각을 정리한 책이 바로 <월든>이다.

1993년 최초로 우리말 번역을 한 강승영은 ‘이 책에는 네 권의 책이 들어 있다. 첫째, <로빈손 크로소우>같은 모험기, 둘째 탁월한 자연 묘사, 셋째 <걸리버 여행기>같은 통렬한 풍자서, 넷째 최초의 녹색 서적이다’라고 서문에 썼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에 의한 존경심보다 먼저 정의에 의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그의 사상은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잘 알려진 조선 광해군 시절의 허균(1569~1618)은 명문 집 자손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요직을 거친 양반이다. 그는 글 읽기를 좋아해 ‘나는 보지 못했던 책을 읽을 때는 마치 좋은 친구를 얻은 것 같고, 이미 읽은 책을 볼 때는 마치 옛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의 글재주를 인정한 광해군은 폐비 상소문과 외교 문서 작성에 그를 중용했다.

하지만 그가 추구했던 정치개혁은 ‘유재론(遺才論)’과 ‘호민론(豪民論)’에 잘 나타나 있다. 유재론은 ‘버려진 인재’라는 뜻인데, 서자(庶子)와 같은 신분 차별로 제대로 쓰임을 받지 못한 인재를 말한다. 그리고 그는 백성을 세 부류로 나누었다.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항민(恒民), 불평불만 속에 새 세상을 원망하는 원민(怨民),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호민(豪民)이다. 그래서 서자인 홍길동을 통해 기존 세력을 개혁해 이상향을 추구한 것이다.

50세 나이에 역모의 누명을 쓰고 능지처참 형을 당해 시신을 수습할 수가 없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부친과 두 형 그리고 누이 허난설헌의 가족묘 오른쪽 끝에 시신이 없는 가묘(假墓)가 그의 묘이다. 그는 핍박받는 하층민의 입장에서 정치 개혁을 피력한 선각자였다. 시대의 이단자이며, 혁명가였다.

12명 중 11명은 나름의 명성과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다. 자기 자신의 뜻대로 사는 삶이 반드시 명사들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니다. 마음먹고 뜻을 세우면 보통 사람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농부 작가 송성영처럼 평범한 사람도 자기 뜻대로 살다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손에는 편도(片道(편도)) 인생 티켓 한 장뿐이다. 중간에 내릴 수도 없고, 갈아탈 수도 없다. 우리는 그 여정을 내 뜻대로 최대한 살아야 한다.
 

 김영안

한국서예협회장, 전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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