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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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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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둘째 손녀가 내 차를 쓰겠다고 해서 당연히 그러라 했다.

둘째는 자기가 벌어서 멋진 차를 사겠다고 열심히 일하며 돈 모으는 중이다. 둘째는 뉴질랜드국가대표 힙합 댄서다.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하고, 학생들 힙합 가르치고, 수시로 힙합 공연하느라고 바쁘고 활기차다. ‘춤추겠다’고 대학 입학도 연기했다. 세속의 흐름에 휘말리지 않고 분명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거다. 무지하게 부럽다. 나의 늙음이 절통하고 원통하다.

 

둘째는 몇 군데 대학에서 입학을 허락받았지만 춤추는 걸 선택했다. 언제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때 대학에 다니겠단다. 그래,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고 네가 설계하는 거다. 대학은 무조건 가야 하는 걸로 알았던 나 같은 꼰대에겐 충격이었다. 나는 손녀들로부터 변화와 자존을 배운다. 


둘째 이름이 강하(河) 능금나무내(柰) 하내(Hanae)다. 흐르는 강물 가에 줄지어 늘어서서 바람과 햇빛에 영그는 능금나무처럼 곱고 풍요롭게 살라고 내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영혼이 햇살처럼 밝다.


하루가 시작되면 식구들은 제 할 일들로 모두 분주하다. 식구들이 나간 집안은 가벼워서 홀가분하고 한갓지다. 집에는 나와 반려견 테디랑 잠봉이가 남는다.


얘들은 내가 웃거나 화내거나 짜증 부리거나 개의치 않고 나를 따른다. 잠봉이는 내가 뭔가 마뜩잖거나 울적해 우두커니 앉아있으면 내 곁에 쪼그리고 앉아 근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눈망울이 순수하다. 세상 사람들 모두 이런 마음이라면 믿음이 넘쳐날 것이리라.


아니 벌써 70 중반이 된 마님은 골프 치러 갔다. 하늘이 심술 부리지 않는 한 일주일에 두 번은 골프 치러 간다. 즐거운 몸짓으로 골프 치러가는 모습에 나도 즐겁다. 허리나 두들기면서 삭신이 쑤신다고 끙끙대는 모습보다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른다.


나도 한때 미친 듯이 골프에 빠졌었는데, 걸어 다니는 것보다 날아다니고 싶어 한참 오래전부터 테니스 한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아직까진 잘 날아다닌다. 


함께 테니스 치는 사람들 중에는 스코어에 환장해 소리 지르는 한심하고 철딱서니 없고 덜떨어진 꼰대가 없어서인지 다투는 소리는 없고 굿 샷! 소리만 넘쳐난다.


밥솥에서 밥 한 그릇 푸고, 계란프라이 만들고 김치 감자볶음 시금치국으로 아점을 먹는다. 항상 혼밥으로 아점을 때우는데 이만하면 성찬이다. 오늘은 그래도 시금치국이 있어서 왔다다. 설거지를 야무지게 한 다음 인터넷을 열고 세상 소식을 넘나든다. 정치 경제 사회 어디든 즐거운 소식보다 우울한 소식들이 즐비하다. 끄자. 책 읽자. 


오늘은 연금 받는 날이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연금이 입금된 것을 확인할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다. 그러면서 뉴질랜드 정부에 고맙고 미안하다. 세금을 많이 낸 것도 아닌데, 오히려 절세 어쩌고 하면서 세금 덜 내려고 잔머리를 열심히 굴렸었는데, 이렇게 꼬박꼬박 받고 보니 좀 계면쩍다. 


냉정히 말하자면 남의 나라 백성 데려다가 제 나라 백성 삼아 노후까지 보살펴 주고 있으니 뉴질랜드가 복 받은 건지 내가 복 받은 건지 착잡하고 송구스럽다.


리커숍에서 와인 한 병 샀다. 평소엔 소주를 찾는데 연금이 들어오는 날엔 좀 우아해지고 싶어 와인을 찾는다. 와인을 마시는 것이 정말 우아한 것인지 여인네들의 꿈결 같은 자기만족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그렇다니까 그런가 보다 한다.


오늘은 화이트와인을 골랐다. 나는 와인 맛의 깊이를 잘 모른다. 가격이 저렴해서 고른 거다. 나 같은 기저층 민초가 언감생심 이건희가 마셨다는 혀끝에서 녹는다는 1천만원짜리 와인을 바랄 수야 있겠는가. 


마시면 무겁게 찌르지는 말고 조금 가벼워지면서 아, 편쿠나! 는 느낌이 들면 그걸로 행복이다. 사람은 만사 제 분수에 맞게 살아야 말썽이 없는 거다. 뱁새가 황새 흉내 내면 가랑이가 성치 않는 거다.


그랬다. 소소한 것 같은 나의 하루가 오늘도 언제나처럼 소소하게 흘러갔다.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이 모두 그렇게 하루에 있었다. 


우리네 삶은 소소한 하루하루가 포개지고 포개져 겹겹이 쌓이는 거다. 어느 하루가 반듯하지 못하면 포개지는 삶이 삐걱대고 각지고 역한 냄새를 피우는 거다. 


반듯한 하루는 사랑하고 아끼고, 배려하고, 숨 쉬는 것들과 교감하고, 믿음을 나누고, 즐거움을 즐기고, 흐름에 순응하고, 받는 것에 감사하고, 자신과 타인에게 겸허하게 살아가는 것 일터다.


나는 나이를 자꾸자꾸 먹어가면서 소소한 것 같은 하루의 삶이 매우 조심스럽다. 어느 하루가 삐끗 어긋나면 살아가야 할 남은 하루들이 사나운 냄새를 풍길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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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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