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정의 일상의 습작] 인간 예수 인류를 위한 마지막 간구

[그레이스 정의 일상의 습작] 인간 예수 인류를 위한 마지막 간구

뉴질랜드타임즈 댓글 0 조회 1951 추천 8


쿠메우의 여인, 그레이스 정의 ‘일상의 습작’(5) 


ad87bf223a2e34121d6d233d6a23e705_1586407040_1785.jpg
▲ 2013 유럽 여행 체코 프라하의 까를교에 있던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해 본의 아니게 은둔 자족을 체험하는 요즘! 달그락거리는 엄마의 아침 식사 준비 소리가 새들의 재잘거림과 함께 내 귓가를 간질인다.

나는 꿈속에서 또 꿈을 꾸듯 고교 시절 방학 때로 돌아간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다 엄마의 찌개 냄새와 달그락거리는 분주한 소리에 부스스 일어난다. 식탁으로 가던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더듬는다. 오늘 내게 허락된 또 하나의 아침을 맞이한다. 

 

밤새 차곡히 쌓인 카톡방의 소식을 본다. 늦잠을 자는 딸 아이의 방으로 간다. 딸 아이를 꼭 안으며 아이를 축복한다. 

 

늘 모닝커피로 단련된 뱃속에 엄마가 정성껏 준비해 준 황제의 아침 식단으로 잠자던 몸을 깨우며 하루를 새롭게 시작한다.

 

평생을 살며 느껴 보지 못했던 이 느낌, 이렇게 하는 일이 없이도 하루가 갈 수 있구나.

 

2주가 넘어서니 그 또한 적응이 된다. 미세한 자연과 사물의 움직임이 마음에 들어온다. 이스터(Easter, 부활주일)가 지나고 나면 가을이 훅 다가와 있겠지.

많은 이들이 지금의 상황도 우려하고 힘들어하지만, 이 이후의 여파를 더 많이 걱정하고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현실적으로 중·단기 계획을 세워야 할 때다.

 

이곳에 와서 IMF 20여 년 전에,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10여 년 전에 혹독하게 겪은 나로서도 현 코로나의 여파는 심상치 않다

 

IMF 때는 한국에서의 조달과 교류가 모두 끊어져 현지의 생활 전선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는 그동안 구축해 두었던 여러 기반이 흔들리며 내 삶을 총체적으로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나는 “시간이 흘러 이 시기를 뭐라 표현할 것인가하며 자문하고 있다.

 

2009년 서브 프라임 사태의 여파로 이민 1세대가 다 겪었을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나도 많은 타격이 있었다.

뉴마켓 요충지에 분양받은 펜트하우스 두 채와 아파트 세 채를 다 날려 보내야 했고 도산 위기의 비즈니스도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듯 넘기던 때였다.

 

남편의 오클랜드한인회장 출마와 낙선까지 덮쳐왔다. 나는 내 인생을 향해 거센 파도로 날 삼킬 듯이 다가오는 일생일대의 위기와 절망의 시간을 온몸으로 맞으며 무력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럴 즈음 난 기적과도 같이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 장옥윤 목사님의 예배 시간을 통해 새롭게 변했다. 나를 향해 우레와도 같은 목소리로 천지를 뒤흔드는 음성으로 내 지친 육신과 영혼을 파고드는 하나님의 선명한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내 딸아. 어찌 너 혼자 삶의 멍에를 다 지고 가려 하느냐? 네 어깨의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내 앞에 내려놓거라. 내가 너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너를 창조한 하나님이다.

 

설교 말씀과 전혀 상관없었던 이 우레와 같은 메시지. 처음에 나는 정신을 잃을 만큼의 충격으로, 나중에는 나의 신음에 구하지 않아도 안타까움으로 내게 다가오신 그 사랑에 감격하여 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전환점을 찍게 되었다.

 

그러면서 세상은 흘러가던 대로 풍랑과 회오리바람 속에서 흘러갔지만, 나는 2,000여 년 전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가장 잘 전달하고 완성하고자 보내주신 갈릴리의 청년 예수와 성경을 통해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청년 예수의 그 거침없는 말씀과 행동을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 앞에 나는 끝없는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고 당시 기득권층인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그 4차원적인 대답과 행동 앞에서는 실성한 여자처럼 웃을 수밖에 없었다.

40일을 광야에서 금식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인류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청년 예수의 모습에서는 그 고독함과 처연함에 내 영혼도 갈급함으로 타들어 가며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2,000년 전 광야로 가 있었다.

 

공생애의 첫 선포를 회당에서 이사야의 말씀으로 선포하는 장면에서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드러나 한없는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물 항아리를 술로 바꿔 주면서까지 흥이 넘쳤던 청년 예수!

 

거지와 고아와 삶의 낙오자들만을 떼로 끌고 다니며 하늘나라가 너희에게 먼저 와 있다는 선포로 소외된 그들을 향한 꿈과 소망을 버리지 않았던 청년 예수!

 

하나님을 목숨처럼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 외에는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다고 단호히 말씀하신 예수!

 

하지만 예수님의 선포를 각자의 방식으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끝끝내 죽음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성취할 수밖에 없었고 성전에 들어가 당시에 만연하던 부패와 부정을 폭로하며 의의 길, 죽음으로 가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청년 예수!

 

그렇다. 우린 이생의 제한된 삶이 끝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 영생(永生)이 있고 이 영생은 시간을 창조한 창조주의 권한 아래 있다. 그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해오나 우린 인간이라는 한계 안에서 그 뜻을 다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선별된 선지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셨고 급기야는 최후의 완성된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전해 주셨다.

 

오늘은 2,000여 년 전 이스라엘의 한 청년,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뜻이 온 인류에게 알려지고 성취됨을 기리는 부활절이다. 우리는 성경의 4 복음서를 통해 청년 예수의 하나님 뜻을 향한 고독했고 처절했던 구도와 공생애의 삶을 단편적이라도 함께 할 수 있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의 위협 속에 삶이 좌초되어 많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다. 이 시간만이라도 무릎 꿇고 신께 긍휼을 구해 보자. 2,000여 년 전 골고다에서 생을 마감하며 하나님께 구했던 청년 예수의 마지막 기도처럼.

 

주님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저들의 죄를 모르나이다.”

 

2020년 부활절을 맞으며 


ad87bf223a2e34121d6d233d6a23e705_1586407126_6594.jpg

ad87bf223a2e34121d6d233d6a23e705_1586407127_2234.jpg

▲ 2016 유럽 여행 당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있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사그라다 파밀리아( 가족 교회) 수난의 파사드 부분을 촬영한 사진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모습과 절규하는 마리아의 사진이 너무나 리얼하게 다가온다.




ad87bf223a2e34121d6d233d6a23e705_1586406552_9428.jpg 

그레이스 정 

- 뉴질랜드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 쿠메우 하코트 부동산 에이전트 



저작권자 © ‘뉴질랜드 정통 교민신문’ 뉴질랜드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게시글에 달린 댓글 총 0

애드 프라자